[이성필기자] 축구대표팀 분위기가 일순간 어수선해졌다. 태극마크의 가치가 흔들리고 있다는 우려섞인 시선이 쏟아지고 있다.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성장하고 있는 손흥민(19, 함부르크SV)의 아버지 손웅정 춘천FC 유소년클럽 감독은 지난 12일 아들이 출국한 인천국제공항에서 대표팀을 향해 거침없는 발언을 쏟아냈다.
손 씨는 "(손)흥민이는 대표팀에 들어올 수준은 아니라고 냉정하게 말할 수 있다. 소속팀에서 적응되고 좀 더 성숙해 즉시 전력감이 돼야 한다. 대표팀에서 시간적인 여유를 배려했으면 좋겠다. (대표차출 불만에 따르는 부정적 여론도) 감수하겠다"라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손흥민은 이번 대표팀의 폴란드, 아랍에미리트연합(UAE)과 2연전에서 교체멤버로 총 62분을 소화했다. 손 씨는 UAE전에서 손흥민이 후반 28분 지동원(선덜랜드)을 대신해 투입, 17분만 소화한 부분에 분노했다. 이것도 모자라 취재진이 보는 앞에서 대표팀 박태하 수석코치에게 전화를 걸어 설전을 벌이며 자신의 의견을 여과 없이 전했다.
손 씨의 행동은 아들을 아끼는 마음에서 나온 것 같지만 오히려 입장을 더 곤란하게 만들었다. 격앙된 손 씨 옆에서 어쩔 줄 몰라 하던 손흥민의 표정이 상황을 대변했다. 누리꾼들도 손 씨의 이번 폭탄 발언에 대해 찬반으로 나뉘어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국가대표 차출에 난색을 표하는 사례는 점점 많아지고 있다. 유럽 클럽들은 아프리카 국가대항전인 네이션스컵이 1월에 열리는 점에 반발하며 시기를 옮기라고 요구하는가 하면, A매치 빈도를 줄여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선수들도 여기 동조해 국가대표 차출에 불만을 터뜨리며 합류하지 않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이들의 목소리에는 클럽시스템의 경쟁력이 국가대표팀에 맞먹거나 넘어서는 경우가 기본으로 깔려있다. 선수들에게 엄청난 몸값을 지불하며 육성과 마케팅을 하는데 소득없는 국가대표팀에서 뛰다 부상이라도 당하고 올 경우 손해가 막심한데다 리그 운영에도 타격을 받는 이중고가 있다.
반면, 한국은 아직도 모든 힘이 A대표팀에 쏠려 있다. 국가대표에 대한 존중과 영광스러움, 희생이 녹아 있다. 국가대표 한 경기를 통해 이름을 알리며 스타로 떠오르는 경우가 K리그에서 한 시즌을 뛰며 득점왕에 오르는 것보다 어떤 면에서는 훨씬 더 낫다.
때문에 손 씨의 반발은 그동안 신성불가침으로 여겨졌던 영역에 대한 도전의 성격이 짙다. 동시에 똑같이 선발되고도 기회를 얻지 못한 다른 태극전사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는 부정적인 결과도 만들었다.
손 씨는 아들의 성장에서 함부르크와 인연을 맺기까지의 과정을 차근차근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손흥민은 2008년 대한축구협회의 우수선수 해외유학 프로그램에 선발돼 독일로 축구 유학을 떠나 함부르크와 인연을 맺게 됐다. 축구협회의 유망주 프로그램의 목적은 우수선수의 재능을 키워 향후 국가대표 경쟁력을 강화시킨다는 목표에 닿아 있다. 이런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이번 사태가 발생하는 과정에서 조광래 감독의 선수 선발 및 실전 투입 방법도 생각해봐야 한다. 조 감독은 한 번 믿음이 생기면 주변에서 어떤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고 뚝심으로 밀어붙이는 성격이다. 때문에 몇몇 선수들은 국가대표에서 떨어지면서 서운한 감정이 생겼다. 그들에게 특별한 위로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주는 조치는 없었다.
대표선수 대부분이 프로인 만큼 감정 다스리기도 자기 관리에 속한다. 그러나 한 번 쓰고 버릴 자원이 아니라면 마음에 상처를 입지 않게 배려해주는 세심함도 필요하다. 특히 일반적으로 '해외파', 그 중에서도 '유럽파'라고 하면 실력이 국내파보다 우월할 것이라는 고정화된 인식도 일부 있다. 유럽에서 장시간 비행기를 타고 귀국해 단 10분밖에 못 뛰고 다시 돌아간다면 허탈할 수밖에 없다. 경기 성격과 비중을 잘 따져 선발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제 월드컵 3차 예선인데, 이런 문제로 대표팀이 시끄러워지면 최종예선은 더 어려운 과정에서 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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