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기자] 메이저리그 탬파베이가 지난 2006년 신임 감독을 발표했을 때다. 조 매든이란 인물이 감독으로 선임되자 모두가 갸우뚱했다. 코치 경력은 풍부했지만 감독 경력은 전무한 '미지의 사령탑'이었다. 대부분이 그의 지도력을 의심했지만 매든은 최근 5년간 최고의 감독이자 '덕장'으로 꼽힌다.
두산 베어스가 지난달 김진욱 감독을 선임하자 야구계는 의아해 했다. 그다지 화려한 선수 생활을 보낸 것도, 지도자로 명성을 떨친 것도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그가 과거 OB 베어스 출신이란 점에서 너무 '순혈주의'를 고집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있었다.
그러나 김 감독은 확실한 자신만의 색깔을 가지고 있다. 프로야구는 결국 '프로 선수'들이 하는 것이고, 그렇다면 선수들도 '프로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김 감독은 '자율'을 강조한다. 초보 감독들이 흔히 그렇듯 '기강 확립'이란 명목으로 선수들을 다그치지 않는다.
자신의 방침이 서면 선수를 불러 최대한 설득한다. 선발로 전업한 이용찬이 마무리 복귀를 희망하자 "가급적 선발 마운드에서 오랜 이닝을 던져줄 투수가 필요하다. 나는 그게 바로 너라고 본다. 마무리보다는 선발로 등판했을 때 팀이 더 힘을 얻을 수 있다"며 설득해 마음을 되돌렸다.
하나의 예일 뿐이지만 김 감독의 이런 자세는 벌써부터 선수단 안팎에 신선한 바람을 몰고 있다. 마무리 훈련이 한창인 요즘 두산 선수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진지한 자세로 땀을 흘린다. 올 시즌 여러가지 시끄러운 일들이 있었고 팀 성적도 기대에 못미쳤지만 다 지나간 일로 여기는 분위기다.
구단도 전임 지도자가 남겨놓은 유산을 씻고 분위기를 전환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지난 13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곰들의 모임' 환담회에는 무려 6천명이 넘는 팬이 참가해 큰 성황을 이뤘다. 미국 출장을 떠났던 김승영 사장과 김태룡 단장도 급히 귀국해 이날 모임에 참석했다. 선수들과 프런트, 그리고 팬들이 하나가 돼 우울했던 기억을 지우고, 새로운 시즌을 희망차게 기약했다.
김 감독은 체질상 알코올을 한 방울도 입에 대지 못한다. 술 잘 먹고, 선수들 휘어잡는 기존의 '한국적 지도자상'과는 전혀 다르다.'두주불사'가 미덕(?)인 스포츠인으로서 그가 겪었을 고충은 충분히 짐작 가능하다. 현역 시절에는 선배들로부터 수난도 적지 않게 받았단다.
그래서일까. 두산 최고 지도자 자리에 오른 김 감독은 주위 사람들을 유독 배려한다. 자신 휘하의 코치들을 꼬박 "코치님"으로 부르는 것도 이런 배려심에서 나온 것이다. 내가 먼저 존중해줘야 남도 나를 존중해준다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매든 감독 부임 첫 2년간 탬파베이는 지구 최하위에 그쳤다. 그러나 이후 3년간 2차례나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며 기염을 토했다. 2008년에는 월드시리즈 무대까지 밟았다. 어느덧 뉴욕 양키스도 부럽지 않은 팀이 됐다. 굵직한 거물 영입 없이 내부에서 내실을 다져 이룬 쾌거다.
김진욱이란 새 수장을 만난 두산은 아직 미지의 팀이다. 우승권에 근접했지만 확실한 우승후보라고 꼽기에는 뭔가 부족한 게 사실이다. 그러나 김 감독은 확실한 포부를 드러냈다.
"우리의 목표는 언제나 우승입니다. 한국시리즈 우승은 결코 포기할 수 없습니다. 외부에선 이런저런 말들이 있지만 지금 전력으로도 우승을 노리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봅니다."
'김진욱호' 두산이 힘차게 돛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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