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영기자] '나는 가수다' 출연 소식이 알려지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았던 무명 가수가 며칠 내내 포털 사이트 검색어를 장악했다. 방송도 나가기 전에 수십만의 안티들이 생겼고, 인터넷에서는 확인되지 않은 루머들이 끝없이 확산됐다.
그리고 또 한 번의 반전. '나는 가수다' 첫 경연에서 쟁쟁한 가수들을 제치고 2위에 올랐다. 단지 목소리만으로 사람들의 감성을 울리며 찬사를 받고 있는 주인공, 가수 적우를 지난 25일 이태원의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적우는 인터넷에서 떠도는 루머에 대한 이야기부터 노래 하나만 의지하고 살아온 음악인생, '나는 가수다' 무대에 오른 소감 등을 털어놓으며 웃고 울었다.
◆"가족 생계 위해 유흥업소서 노래했다"
적우는 올해 마흔 한 살의 가수. '솔직한' 소개를 부탁하니 "소개할 것이 없다. 이 나이에 예쁘다고 할 수도 없고, 내세울 것이 없다"고 웃는다. 그러고는 찬찬히 자신의 인생과 음악 여정을 털어놓았다.
"유복하지 못한 집안 환경 탓에 음악을 제대로 배우지는 못했어오. 그래도 노래하고 싶다는 꿈은 포기할 수 없었죠. 술집이나 업소를 전전하며 노래를 불렀고, 돈을 벌었어요."
적우의 노래 실력은 서서히 입소문이 났다. 1990년대 초반, 유명 프로듀서 신철 등 많은 가요 관계자들로부터 가수 데뷔를 제안 받기도 했다. 여성 3명으로 이뤄진 댄스 그룹 준비를 하기도 했으나 결국 거절했다. 적우는 춤추는 댄스 가수가 아닌, 록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적우는 "그 시절의 난 김현식이나 이승철 같은 가수가 되고 싶었다"고 회상했다.
'미국 유학을 떠나서 본격적으로 음악 공부를 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달콤한 제안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기 때문에 그 역시 거절할 수 밖에 없었다.
"제가 지켜야 할 가족들이 있는데 어떻게 가나요. 그래서 보류를 했지만 음악의 꿈은 절대 안 놓았어요. 노래를 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갔어요. 클럽에서도 유흥업소에서도 노래를 하고, 시멘트 바닥에서도 노래를 한 적이 있어요. 하고 싶은 것을 못했기에 행복한 건 아니었어요. 그래도 가족은 안 굶겼다는 것, 그것 때문에 괜찮았어요."
적우는 2004년 가수 데뷔를 했다. 당시 30대 중반. 어머니의 죽음이 다시 한 번 가수에 도전할 수 있게 된 계기가 됐다며 끝내 눈시울을 붉혔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생을 놓으려고까지 했어요. 그 때 어머니가 심장이 안 좋았는데 제가 외출 중이었거든요. 집에만 있었다면, 그래서 빨리 응급차를 부르거나 인공호흡을 했으면 살 수도 있었는데…. 한동안 저를 자학하고 죄책감에 시달렸어요. 6개월 동안 집에만 갇혀 음악만 들었는데 그 때 가수 제안이 왔어요. '난 세상에 혼자다. 이제는 굶어죽는 한이 있어도 음악을 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 때부터 밑바닥으로 내려가서 음악에 묻혀 살았죠. 지금은 어머니가 하늘에서 장하다고 해주실 것 같아요."
◆"'나가수' 섭외와 루머에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적우에게 '나가수'는 꿈의 무대였다. 시청자로서 봤던 무대에 자신이 설 수 있을 것이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섭외 소식이 날아들었다.
"설레고 기쁘고, 소풍 가는 아이가 된 기분이었어요. 좋은 음향과 무대, 구경이라도 한 번 해봤으면 하는 무대에 내가 서보는 구나. 며칠 동안 날개를 달고 날아다녔어요."
그러나 행복한 설렘은 오래가지 않았다. '나가수' 출연 소식이 알려지면서 적우라는 가수에 대한 관심은 뜨거웠고, 각종 루머들이 확대되고 재생산됐다. 그는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진 것 같았다"고 말했다.
"나도 모르는 나에 대해 퍼지더라구요. 기사 제목은 독하고, 사람들은 재미로 퍼다 나르고 입에 담기조차 싫은 악플이 달리고. 대중들이 나를 몰랐던 거니까 이해를 해요. 전 그저 소속사가 없어서 잔잔하게 공연하고 활동하던 사람이었으니까요."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던 '룸살롱 마담설'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꺼냈다. 생계를 위해 유흥업소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던 것은 사실이지만 적우는 "2004년 가수로 데뷔를 한 이후로는 업소에서 돈을 받고 아르바이트 한 적은 없다. 내가 나한테 책임을 져야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래 부를 자리가 없어서, 혹은 가족들의 삶을 위해서 지금도 그 곳에서 노래하는 무명 가수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진하게 배어나왔다.
"설자리 없는 무명가수가 술집에서 노래를 하는 것을 나쁘게 보지 말아줬으면 좋겠어요. 앨범 내서도 여전히 무명인 사람들이 노래할 수 있는 장소가 많이 없어요. 그 곳이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것처럼 무시무시하지는 않은데 그 쪽으로만 몰아붙이는 게 안타까워요. 절박해서 노래하는 사람도 있고, 식구들이 아파서 수술비 마련을 위해 그 곳에서 연주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나가수' 무대, 관객들 기립박수에 눈물이 펑펑"
그동안 숱한 공연 무대에 오르면서도 떨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나가수' 무대에서는 달랐다. 긴장하고 또 긴장했다. 적우는 "자격지심 때문이었는지, 청중들의 눈빛이 '할테면 해봐'라고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무대에 오른 5분.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몰랐다. 적우는 "본능적으로 노래를 물렀다. 무대에서의 내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캄캄했던 무대가 밝아졌고, 관객들의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그 때의 환희를 잊을 수 없다. 생애 최고의 감격이었다.
"노래가 끝날 즈음부터 북받치는 감정을 참으면서 노래를 했는데 관객들이 서서 박수치는 것을 보고 그냥 고마워서 눈물이 터졌어요. '내 진심이 조금은 통했구나' 생각했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겠어요. 관객들의 눈빛이, 어렸을 적 시장통에서 잃어버린 엄마가 저를 찾아줬을 때의 그 눈빛 같았어요. 너무 따뜻했어요."
그날 관객들은 적우에 2위라는 점수를 줬다. 적우는 "'나가수' 무대에 선 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이었다. 무대에 올라가기 전 6위만 해도 기적일 거라고 생각했다"며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제 탈락한다고 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아요. 지금부터는 마음의 짐을 모두 벗어던지고 내 모습을 보여주자는 생각 밖에 없어요. 연출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자연스럽게 나와요. 신들린 것처럼 무의식중에 나오는 순간이 있어요. 탈락 전에 나를 넘어선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조이뉴스24 이미영기자 mycuzmy@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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