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기자] 2008년 최강희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던 전북 현대는 정규리그 개막 후 5경기에서 1무4패로 극도의 부진에 시달렸다. 전북 팬들은 최 감독에게 거친 말을 내뱉으며 '퇴진'까지 거론했다.
당시 전북은 창단 후 영입 선수 중 가장 이름값이 있었던 조재진을 보유해 다크호스로 꼽혔다. 수도권 밖 구단으로 대형 선수가 잘 오지 않던 상황에서의 스타 영입이라 더욱 주목받았다.
하지만 조재진을 중심으로 빠른 패스 축구를 구사하려던 최 감독의 계획이 초반부터 틀어졌고 비난에 시달렸다. 그 전 해인 2007년 8위로 시즌을 마쳐 불안감은 더욱 커졌다.
전북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최 감독의 추구하는 전술과 조재진을 믿고 지켜보는 것이 전부였다. 인내했던 전북에 조재진은 시즌 개막 후 40여일이 지난 4월 19일 광주 상무전에서 두 골을 넣으며 첫 승을 안겨줬다.
이후 전북은 서서히 정상 궤도를 찾아갔고 성적이 상승해 극적으로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성과를 얻었다. 인내를 통해 나름대로 즐거움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조재진도 10골을 터뜨리며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고, 이듬해 이동국이라는 대형 스타가 전북 유니폼을 입는데도 큰 영향을 미쳤다. 전북도 최 감독의 고집을 믿고 갔더니 첫 통합우승이라는 귀한 선물을 받았다.
2012년의 전북. 내용은 다르지만 상황은 2008년과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다. 정규리그 3라운드까지 2승1무로 무난한 출발을 하는가 했지만 1-5로 대패했던 광저우 헝다(중국)와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1차전에서 조성환, 임유환 등이 줄부상으로 이탈하는 악재가 생겼다. 조직력이 흔들린 가운데 심우연, 이강진까지 부상자 명단에 포함되며 경험 있는 수비 자원들이 모두 사라졌다.
이후 가시와 레이솔(일본)전 1-5 패, FC서울전 1-2 패, 대구FC전 2-3 패배로 전북의 분위기는 더욱 가라앉았다. 가시와전 후 이흥실 감독대행의 퇴진론이 피어오르는 등 어지러운 상황이 이어졌다. 공격수 정성훈을 수비로 돌리는 궁여지책까지 써봤으나 흐트러진 조직력이 잘 수습되지 않았다.
대구전에서는 그나마 희망을 찾을 수 있었다. 지난해 수준의 경기력을 회복하며 대구를 압도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불운은 전북을 떠나지 않았고, 후반 14분 김정우가 오른쪽 발목에 이상을 호소해 교체한 뒤 대구의 빠른 공격을 막지 못하며 무너졌다.
이흥실 대행은 입을 꾹 다물며 "모든 게 내 책임이다"라고 정리했다. 선수들보다 자신의 지도력이 부족해 패했다는 것이다. 대구의 빠른 역습을 대처하지 못했다고 솔직하게 인정했다.
이 대행에게는 보이지 않는 압박이 있다. 2013년 6월 2014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이 끝나면 대표팀에 가 있던 최강희 감독이 복귀한다. 수석코치였던 그가 '감독대행'으로 뭔가를 해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최 감독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이를 모를 리 없는 이 대행은 알게 모르게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스스로 고독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힐 수 있다. '선수단이 감독을 믿지 않는다', '임시직이라 한계가 있다'는 등의 주변의 소문과 지적에 흔들리지 않으려 애쓰고 있지만 마음을 다스리기가 쉽지 않다.
전북은 다시 한 번 '인내'하기로 했다. 이철근 단장은 "아직 일정이 많다. 이 대행의 스타일이 충분히 나올 것으로 믿는다. 일부에서 주장하는 경질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함께 고통을 감내하겠다고 전했다.
이 단장은 "질 수도 있다. 몇 경기 못했다고 바로 문책하는 것은 명문 구단을 지향하는 전북에 맞지 않다. 충분히 시간이 있다. 부상자들이 복귀하면 정상적으로 경기를 할 수 있다"라고 이 대행에 힘을 실어줬다.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A선수는 "표현하기 어렵지만 선수들의 분위기가 처진 게 사실이다. 그러나 감독님 잘못보다는 우리가 못한 게 크다. 감독 대행이라고 신뢰를 보여주지 않는 것은 프로가 아니다. 그런 일도 없다"라고 강조했다.
'잔인한 3월' 보내며 디펜딩 챔피언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전북. 4월이 시작됐고, 전북에 봄은 올 것인가?
조이뉴스24 /전주=이성필기자 elephant1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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