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기자] 전북 현대의 브라질 출신 외국인 미드필더 에닝요를 두고 다른 구단 관계자들은 "전북 전력의 절반"이라는 표현을 하곤 한다. 경기 흐름을 반전시키는 골을 자주 넣고 프리킥 등 세트피스 키커 능력이 뛰어난 것을 높게 평가한 것이다.
그런 에닝요가 지난 시즌부터 초반 부진이라는 이상한 징크스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해 정규리그 개막 후 6경기 동안 무득점에 그치던 에닝요는 인천 유나이티드전에서 골맛을 보며 겨우 살아났다.
올해도 마찬가지, 성남 일화와 개막전에서 골맛을 본 뒤 내리 7경기를 침묵했다. 그 사이 전북은 선수들의 부상이 겹치면서 힘겹게 경기를 치렀다. 특히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에서 에닝요는 제 몫을 해내지 못해 전북이 가시밭길을 걷는 것을 힘없이 지켜봐야 했다.
에닝요의 습성을 잘 아는 전북 차종복 스카우트는 "에닝요는 날이 더워지는 5월부터 기량이 몰라보게 좋아진다. 초반 부진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몸 상태 등 모든 것이 좋다"라고 전했다.
이흥실 감독대행도 마찬가지 반응. 지난 27일 광주FC와의 K리그 10라운드를 앞두고 만난 이 대행은 "올 시즌 마음은 정말 편하다. 골이 들어가지 않아 은근히 부담이 있겠지만 광주전에서 (골을) 넣으면 다 털어내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에닝요는 이날 광주전에서 후반 8분 이승현과 교체 투입됐다. 5월 1일 광저우 헝다(중국)와 챔피언스리그 5차전 원정 경기를 앞두고 체력 안배를 위해서였다.
골욕심에 불탄 에닝요에게 절호의 기회가 왔다. 25분 김정우가 광주 정우인에게 걸려 넘어지며 페널티킥을 얻어낸 것이다. 지체없이 에닝요가 키커로 나섰고, 박호진 골키퍼가 몸을 날려도 소용없을 정도로 힘있는 킥으로 골망을 흔들었다.
신난 에닝요는 왼쪽 코너 부근으로 뛰어가 유니폼 상의를 들어올리는 세리머니를 펼쳤다. 상의 속 흰색 언더셔츠에는 한글로 '내가 바로 전북의 에이스 에닝요!'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마치 그간의 부진을 털어내기 위해 에닝요가 직접 한글로 써서 준비한 것 같은 세리머니였다.
그런데 이 세리머니에는 숨은 사연이 있었다. 전북의 서포터 'M.G.B'의 소모임 '유니디노'는 지난 4일 부리람 유나이티드(태국)와 챔피언스리그 3차전 원정을 앞두고 에닝요가 동료들에게 직접 편지를 써서 승리의 기운을 불어넣었던 것에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이들은 언더셔츠 앞면에 '내가 바로 전북의 에이스 에닝요다!', 뒷면에 한자로 '必勝(필승)'을 프린팅해 지난 26일 완주군 봉동읍 율소리 훈련장을 찾아 에닝요에게 직접 전달했다.
에닝요는 팬들에게 고마워하며 광주전에 착용하고 나가 꼭 골을 넣겠다고 다짐했지만 문제가 발생했다. 언더셔츠가 작아 에닝요에게 맞지 않은 것이다. 당황한 유니디노에서는 큰 사이즈를 구매한 뒤 급한 대로 매직으로 하나하나 글자를 새겨 넣었다. 필승을 한자로 쓰기에는 복잡해 한글로 필승을 그려 넣었고 경기 직전 에닝요에게 전달했다. 그리고 기대대로 에닝요는 골이라는 결실을 맺었다.
신난 에닝요였지만 서포터들에게는 뒷면의 '필승'만 보여줬다. 에이스라는 문구의 뜻을 전해들은 뒤 자신의 실력에 비해 너무 과분한 칭찬이라며 뒷면을 보여준 것이다. 오히려 서포터스석 반대편에 위치한 본부석의 관중들은 언더셔츠 앞면에 적힌 '에이스 에닝요'를 보는 행운을 누렸다. 그야말로 팬들의 정성이 부담 가득했던 에닝요를 일으켜세운 셈이다.
조이뉴스24 전주=이성필기자 elephant1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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