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혜림기자]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 영화 선정을 담당한 전찬일 프로그래머는 "한국영화 프로그래머는 무척 어려운 자리"라는 말로 숱한 고민을 함축했다. 한국영화 상영작은 해외 상영작과 비교해 국내외로부터 훨씬 넓고 깊은 관심을 얻어 온 탓이다. 그만큼 프로그램에 대해 불만과 아쉬움이 섞인 반응도 많을 터. 영화제가 중반에 접어든 지난 10일, 부산 영화의 전당 BIFF힐에서 전찬일 프로그래머를 만났다.
평론가로 활약하다 부산국제영화제의 한국 영화 담당 프로그래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로부터 상영작 선정 배경은 물론 갈라 프리젠테이션 프로그램을 향한 일각의 아쉬움 섞인 반응에 대해서도 속시원한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전찬일 프로그래머는 "논쟁적인 시각과 시의성"을 이번 영화제 상영작 선정의 주요 기준으로 삼았다. 오픈시네마 부문에서 상영된 '돈 크라이 마미'나 '늑대소년'은 그런 전찬일 프로그래머의 시각이 반영된 상영작들이다. 특히 성폭력 문제를 다룬 '돈 크라이 마미'는 톱스타가 출연한 영화도 아닌데다 신인 감독의 작품이었지만 "영화적 힘" 덕분에 오픈시네마 부문에서 관객을 만날 수 있었다.
전찬일 프로그래머는 "고민 끝에 '돈 크라이 마미'를 선정한 이유는 우리시대에 적합한 시의성을 지녔기 때문"이라고 선정 배경을 알렸다. "오락과 재미, 시의성을 다 가지고 간다는 점에서 '도가니'의 연장선상"이라고도 표현했다.
그러나 첫 상영 전까지, 관객 반응을 예측할 수 없는 전 프로그래머의 가슴은 조마조마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조금 휑한 느낌이 들면 어쩌나 생각했는데 완벽하게 터졌다(관객이 많이 들었다)"며 "6천~7천 명이 왔으니, 우측 일부 빼고는 좌석이 다 차서 주연 배우 유선이 감격의 눈물을 보였을 정도"라고 말했다.
지난 10일 언론배급 스크리닝을 통해 공개된 오픈시네마 상영작 '늑대소년'은 송중기와 박보영이라는 청춘 스타를 제외하고도 충분히 이야깃거리가 될 만한 영화라는 호응을 얻었다. 전 프로그래머 역시 "늑대소년을 보살피는 가족의 모습은 물론, 영화가 그려낸 당시 시대적 배경도 주목할 만하다"며 영화 선정 까닭을 알렸다.
갈라 프리젠테이션의 경우 오랜 기간 활동해 온 감독에 대한 예우를 최우선으로 여겼다. 갈라로 상영된 정지영 감독의 '남영동 1985'나 박철수 감독의 'B.E.D', 김성홍 감독의 '닥터', 전수일 감독의 '콘돌은 날아간다' 등은 그런 그의 기준에 의해 이번 영화제에서 빛을 봤다.
정지영 감독이 지난 2011년 '부러진 화살'의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을 시작으로 재기에 성공한 것은 전찬일 프로그래머에게 큰 힘이 됐다. 그는 "우리 환경에서 60대에 현역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라며 "젊은 감독들 뿐 아니라 세월과 연륜으로 영화를 만드는 거장들을 성원하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그는 "나이 오십을 넘다 보니 나이듦을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40대에는 의식하지 못할 어떤 것을 느끼며 살다보니 나보다 나이가 많은 선배들의 작업에 대해 더 각별한 관심을 갖게 되더라"는 감상을 전하기도 했다. 이어 "외연이란 내포 못지 않게 중요하다"며 "생물학적인 나이듦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도 마찬가지의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만장일치로 걸작이라 평할만한 웰메이드 영화가 아니어도 논쟁적 시각을 품고 있는 작품이라면 전찬일 프로그래머에게는 상영 가치가 충분한 작품이 된다.
영화제 상영 후 양 극단에 가까운 반응을 얻고 있는 박철수 감독의 'B.E.D'나 김성홍 감독의 '닥터' 역시 전찬일 프로그래머에겐 이유 있는 상영작이었다. 그는 "비판을 하기 어려워서 그렇지, 논쟁적 영화가 좋다"며 "갈라 프리젠테이션에서도 전수일 감독의 '콘돌은 날아간다'와 정지영 감독의 '남영동 1985'가 호응을 얻고 다른 영화들은 다소 논쟁적인 반응을 얻을 것을 예상했었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4일 개막한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는 오는 13일까지 부산 영화의 전당과 해운대, 남포동 일대에서 열린다.
조이뉴스24 /부산=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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