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혜림기자] 한국 영화 검진 다큐멘터리 '영화판'은 충무로 명감독과 톱배우들의 가감 없는 발언들이 시선을 끄는 영화다. '부러진 화살'에 이어 '남영동 1985'로 돌아온 정지영 감독, 배우 윤진서가 인터뷰어로 등장해 영화계 인사들을 만나고 한국 영화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고민한다.
영화는 달라진 한국 영화 제작 환경을 비롯, 다양한 이슈들을 둘러싸고 충무로 영화인들의 솔직 담백한 인터뷰를 담았다. 오랜 기간 충무로를 지켜온 감독과 배우, 제작자와 평론가 등은 뼈아픈 자기 반성으로 '영화판'의 서사를 완성한다.
톱배우들의 특권을 대변하는 밴 차량에 대한 감독들의 허심탄회한 감상은 그 중에서도 눈길을 끈다. "밴 좀 없었으면 좋겠다"고 토로하는 이명세 감독과 "밴은 마치 외계인들의 비행접시 같다. (밴을 타는 배우들은) 우리와 같은 사람 같지가 않다"고 말한 이창동 감독의 이야기가 그것. 배우 박중훈 역시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선민 의식이 있는 배우들이 있다"고 일침했다.
그런가 하면 배우 김혜수는 충무로에서 꾸준히 지켜온 자신의 입지를 빗대 "영화계의 김종필 같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많이 웃었다"고 말해 눈길을 모았다. 정권 교체에도 기나긴 정치 인생을 살아온 김종필 전 총리를 충무로의 환경 변화에도 변함 없이 연기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김혜수에 비유한 우스개소리인 셈이다. 이는 다양한 고민과 변화를 거치며 오늘에 이른 한국 영화계를 파란만장한 정치사에 빗댄 이야기이기도 하다.
2000년대, 거대 자본의 본격적인 영화 시장 진출은 충무로의 생태계를 완전히 뒤바꿨다. 중견·노장 감독들은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한국 영화판이 대기업의 수직 계열화 시스템에 잠식되며 새로운 고민을 겪게 됐음을 비판적으로 지적하기도 했다. 정지영 감독은 노장 감독으로서 고충을 고백하며 "자본이 권력이라면, 나이가 들수록 권력과 만나는 기회가 적어졌다"며 "경원시 당한 셈"이라고 회고했다.
정지영 감독은 2012년 '부러진 화살'로 13년 간의 침묵을 깨고 화려하게 컴백했다. 그러나 영화가 촬영되던 지난 2009년까지만 해도 정 감독은 노장 감독을 향한 불신과 투자 상 마찰 등으로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영화에서 그는 중견 이상의 감독들이 겪고 있는 제작 환경의 어려움과 소외감을 담담하게 고백한다. 지난 2010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곽지균 감독을 떠올리면서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꽃잎' '거짓말' '너에게 나를 보낸다' 등 문제작 영화들을 연출했던 장선우 감독은 2002년 흥행 실패작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작업 당시를 회고하며 스스로를 반성해 눈길을 모았다. 그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때는 내가 관객을 심판한다는 생각을 했었다"며 "오만했다"고 회고했다.
여배우로서 정체성을 고민하며 노출 연기에 대한 복잡한 심경을 드러낸 윤진서의 이야기도 시선을 끈다. 그는 과거 한 감독으로부터 "격정 멜로라고 써 있지 않냐. 젖꼭지 정도는 나와야 격정 멜로지"라는 말을 듣고 상처를 받았다고 털어놨다. '영화판'은 배우 김혜수와 문소리 등의 입을 통해서도 극 중 여배우의 노출에 대한 이중적 시선을 지적한다.
자본 시스템에 잠식된 충무로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지, 할리우드 시스템이 과연 최고의 대안이 될 수 있는지 등 영화판의 미래에 대한 고민도 다큐멘터리의 주된 줄기다. 강우석 감독은 자신이 만든 제작사 시네마서비스와 대기업 CJ의 관계를 설명하며 "자본이 (영화계를) 할퀴었다"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이창동 감독 역시 투심에서부터 대기업 투자배급사의 검열을 받게 된 상황을 가리켜 "이제 정치가 아닌 상업적 검열의 시대가 됐다"고 일갈한다.
영화는 충무로가 과거 조직 폭력배들과 긴밀한 관계에 있었던 사연을 비롯, '라인'을 중시하는 영화 연출부의 뒷이야기, 한국 영화계를 뒤흔들었던 스크린쿼터 이슈 등도 관계자들의 실제 이야기를 통해 생생하게 전달한다. 허철 감독이 연출을 맡았으며 오는 12월6일 개봉한다.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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