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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년 '레바논 킬러' 하석주가 기억하는 '베이루트의 긴장감'


20년 전 하석주 결승골로 한국 레바논 원정서 1-0 승리

[최용재기자] 1993년 5월11일.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1994 미국월드컵 예선경기를 치르기 위해 레바논 원정을 떠났다.

당시 레바논은 내전이 막 끝난 상태였다. 하지만 정세 불안은 여전했다. 혹시나 모를 전쟁의 후폭풍을 겪을 수도 있었다. 한국 대표팀은 레바논 원정을 제대로 치를 수 있을지 고민했지만 FIFA(국제축구연맹)는 레바논에 평화가 정착됐다며 경기를 치러도 무방하다는 통보를 했다.

그래서 떠난 레바논 원정. 하지만 레바논 현지의 상황은 상상 이상이었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사태의 심각성을 알 수 있었다. 레바논 베이루트는 폐허 그 자체였다. 길거리에는 전쟁의 잔해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건물은 곳곳에 구멍이 뚫려 있고 추락한 비행기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또 가는 곳마다 수많은 군인들이 총을 들고 있었다.

대표선수들은 호텔에 가서 탄산음료를 샀는데 먼지가 너무 쌓여있어 먹지 못할 정도였다. 경기장 그라운드는 그라운드라고 할 수도 없는 상태였다. 잔디가 아니라 잡초였다. 그것도 아주 질이 나쁜 잡초였다. 경기장은 장갑차와 탱크로 둘러싸였고, 경기가 열리는 날 경기장 지붕에는 군인들이 배치돼 총을 겨누고 있었다.

하석주 전남 드래곤즈 감독의 기억이다. 20년 전 월드컵 예선 베이루크 원정에 대한 기억이다. 하 감독은 당시 선제 결승골을 넣으며 한국의 1-0 승리를 이끌었다. 이어 6월7일 한국에서 열린 홈경기에서도 결승골을 넣으며 2-1 승리를 이끈 하석주. 20년 전 당시 '레바논 킬러'는 하석주였다.

하 감독이 20년 전 기억을 떠올린 이유는 오는 5일(한국시간) 한국 대표팀이 레바논 원정 경기를 치르기 때문이다. 2014 브라질월드컵 최종예선 6차전 한국-레바논전이다. 지금 레바논의 정세도 좋지 않다. 이번에도 FIFA는 안전에 문제가 없다며 레바논에서의 경기를 강행하기로 했다. 여러 가지 정황상 20년 전과 비슷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하 감독은 "당시 살아서 돌아갈 수 있겠는가라고 생각할 정도로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또 골을 넣고 이기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주변의 환경이 긴장감을 갖게 만들기에 충분했다"며 당시의 긴박한 상황을 전했다.

그렇지만 하 감독은 현 대표팀 선수들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잘 해낼 수 있으리라 믿었다. 20년 전과 같이, 전쟁의 공포를 느낄 수 있는 원정 경기에서 멋진 승리를 안고 돌아올 것이라 확신했다.

하 감독은 "이번 경기에도 군인들과 장갑차가 배치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 대표팀 선수들이 정상적인 경기를 펼친다면 분명 좋은 결과를 얻을 것"이라며 20년 전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또 다른 '레바논 킬러'의 등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조이뉴스24 최용재기자 indig80@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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