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기자] 월드컵 3차예선이 진행중이던 2011년 12월 조광래 감독을 전격 경질한 대한축구협회는 새 사령탑 찾기에 나섰지만 적임자가 없어 애를 먹었다. 국내 지도자들 중 그 누구도 선뜻 대표팀 지휘봉을 잡겠다는 감독이 나오지 않았다.
외국인 지도자를 살펴보라는 여론이 들끓었지만 행정 난맥상을 겪고 있던 당시 축구협회 집행부에서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마침 유럽에서는 한창 겨울 시즌이라 영입 가능한 지도자도 많지 않았다. 당연히 가장 쉽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국내 지도자였다.
당시 조중연 축구협회장은 K리그 정규리그 우승을 이끈 전북 현대 최강희 감독에게 시선을 돌렸다. 과거 현대 감독 시절 최 감독과 사제의 연을 맺었던 인연으로 개인적으로 만나 오이소주를 마시며 설득을 했다. 최 감독은 완강하게 사양했지만 한국 축구가 위기인데 뒤에서 보고만 있을 것이냐며 설득을 거듭해 허락을 얻어냈다.
어렵게 대표팀 사령탑으로 선임된 최 감독은 취임 기자회견에서 폭탄 발언을 했다. 자신의 임기는 월드컵 본선이 아닌 최종예선까지라는 것이다. 이 발언에 축구협회는 "정확한 계약기간을 알려줄 수 없다"라며 상황을 애매모호하게 만들었다.
어수선한 상황에서 지휘봉을 잡은 최 감독은 잘 알려진 대로 공부하는 지도자 중 한 명이었다. 2005년 네덜란드 20세 이하(U-20) 월드컵을 관전하다 전북의 요청으로 감독을 맡았던 그는 세계 축구 흐름을 따라가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공부를 통해 준비된 지도자의 역량을 갖춘 최 감독은 몇 년의 시행착오를 거쳐 전북의 '닥치고 공격(닥공)'이라는 브랜드를 확립하며 명장의 반열로 나아갔다.
최 감독이 이끈 전북이 두 번이나 정규리그 우승을 한 것은 짧은 패스와 빠른 돌파가 어우러진 것이었다. 당연히 대표팀에서도 최강희표 닥공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다. 최 감독은 단판 승부가 많은 대표팀의 특성을 고려해 닥공보다는 보다 안정적인 경기 운영을 하겠다고 선언했지만 공격력 극대화를 위한 노력은 꾸준히 계속됐다.
지난해 2월 우즈베키스탄과 평가전 4-2 승리 때만 해도 느낌이 좋았다. 이동국(전북 현대)과 김치우(FC서울)가 각각 두 골씩 넣으며 시원하게 최강희호의 출항을 알렸고, 3차 예선 최대 고비였던 최종전에서 쿠웨이트를 맞아 이동국, 이근호(상주 상무)의 골로 2-0으로 이기면서 최종예선 진출에 성공했다.
이후 5월 스페인과 평가전에서 1-4로 패했지만 틀을 잡아가는 과정이어서 나쁘지 않았다는 평가다. 곧바로 이어진 카타르, 레바논과의 최종예선 2연전에서 7골을 터뜨리며 국가대표식 닥공이 위력을 발휘하는 듯했다.
하지만, 이 때부터 최강희 감독의 새로운 고민은 시작됐다. 196㎝의 장신 공격수 김신욱을 활용하는 것이었다. 장신 공격수가 앞에 있으면 고공 축구를 구사하고 싶은 유혹이 생긴다. 세밀한 패스로 안정적인 공격 전개를 하던 기존의 스타일과는 다른 상황이 펼쳐지는 것이다. 최 감독은 이동국을 원톱에 놓고 후반에 김신욱을 교체 투입하는 카드를 꺼내 보이는 등 나름 지혜를 짰다.
김신욱을 활용하면 할수록 뻥축구 논란은 커졌다. 최 감독의 자존심에 상처를 내는 논란이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최 감독은 선수들에게 '뻥축구'를 지시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초 감독은 "나는 선수들에게 늘 미드필드를 거치는 플레이를 주문했다"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일선 지도자들은 "전방에 높이가 있는 공격수가 있을 경우 선수들 스스로 긴 패스와 가로지르기를 하는 경우가 있다"라며 의도하지 않은 습관적인 플레이가 나올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이동국도 문제였다. 결정적인 순간 슈팅이 빗나가는 이동국으로 인해 비난이 들끓었다. 전북 시절 이동국을 화려하게 재기시킨 최 감독이 너무 편애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쏟아졌다. 결국, 이동국 논란은 어렵게 본선 진출에 성공한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최 감독에 대한 오해는 유럽파 홀대설에서 절정에 이른다. 이번 최종예선 마지막 3연전에서 기성용(스완지시티), 구자철(볼프스부르크), 박주영(셀타 비고)을 과감히 대표 제외한 것과 지동원(선덜랜드), 박주호(FC바젤)를 적은 시간 출전시킨 것 때문이다. 한동안 손흥민(함부르크)에게 출전 기회를 많이 주지 않은 것도 포함된다.
팀의 전체적인 움직임을 중요시 여기는 최 감독은 분위기 정립 차원에서 기성용과 구자철은 제외한 것이라며 말을 아꼈지만 의혹은 증폭됐다. 결국, 대표팀 내 파벌 논란까지 터지면서 최 감독의 팀 장악력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으로 이어졌다. '노장' 김남일(인천 유나이티드)을 다시 대표팀에 호출한 것은 결과적으로 젊은 해외파 선수들과 융화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유럽 무대를 경험하며 자유로운 축구 문화를 접한 젊은 선수들과 한국적인 위계서열 문화가 제대로 섞이지 못한 것으로 볼 수도 있는 문제였다.
최강희 감독의 지도력을 평가할 여러 상황이 있었지만 최종예선을 아름답게 마무리짓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최 감독이 대표팀을 8회 연속 월드컵 본선에 올려놓고서도 박수를 받지 못한 것은 18일 이란과의 최종전에서 맥없이 0-1로 패한 것이 결정적이다.
앞으로 대표팀 앞에 던져진 과제는 가라앉은 대표팀 분위기를 살려내고 얼마나 변화하고 발전된 모습으로 월드컵 본선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느냐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후임 감독의 몫이 됐다.
조이뉴스24 /울산=이성필기자 elephant14@joynews24.com 사진 박영태기자 ds3fan@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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