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기자]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수원 삼성에 '영원한 캡틴' 박지성(32, 퀸즈 파크 레인저스)의 영입을 부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원 삼성 리호승 사무국장은 21일 "프로연맹이 박지성의 영입을 검토해달라고 한 것이 맞다"라고 밝혔다.
박지성은 굳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한국 축구의 한 시대를 상징하는 아이콘이다. 그는 K리그를 거치지 않고 일본과 유럽 무대에서 뛰며 그만의 대기록을 쌓았다. 수원공고 시절 체격이 왜소하다는 이유로 수원 삼성 2군 입단 테스트에서 탈락했을 정도로 별로 주목받지 못했지만 이후 피나는 노력으로 성공신화를 썼다.
박지성은 수원이 낳은 스타다. 수원 세류초-화성 안용중-수원공고에서 유소년 시절을 보냈다. 또, 박지성 축구센터도 수원에 위치해 있다. 지난 2009년 7월에는 수원 클럽하우스에서 1주일간 수원 선수단과 훈련을 한 적이 있다. 수원시에서는 '박지성로'를 만들어 지역 출신 스타가 이룬 업적을 기념했다.
물론 수원 삼성 구단도 박지성에 대해서는 호감을 갖고 있지만 영입은 별개라는 입장이다. 리호승 사무국장은 "구단에서는 난색을 표시했다.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힘들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수원 관계자는 "프로연맹의 제안 자체가 갑작스러워서 당황했다"라고 전했다.
올 시즌 수원의 사정을 살피면 박지성 영입은 꿈에 가깝다. 수원은 외부 영입보다는 유소년 출신을 중용하는 등 미래를 위한 정책 전환을 시도 중이다. 고액 선수의 무리한 영입보다는 젊은 선수를 육성해 수원의 미래로 키우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서정원 감독도 가능성 있는 신인들을 과감하게 중용하는 등 구단의 정책을 뒷받침하고 있다.
수원은 프로연맹이 추진한 전체 평균 연봉 공개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끝까지 표시했지만 결국 받아들였다. 당시 수원은 '연맹의 수원 죽이기'라며 강하게 반발했지만 어쩔 수 없이 연맹의 밀어붙이기 여론을 수용해야 했다. 반발하는 수원이 구단 이기주의로 비춰지기도 했다. 돈 많은 모기업(삼성전자)이 있는데 왜 불만을 터뜨리냐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프로연맹은 선수들의 세부 연봉까지 공개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수원은 전북 현대와 함께 강력 반발하고 있는 대표적인 구단이다. 세부 연봉을 공개하는 로컬 종목의 프로야구와는 달리 프로축구 선수들은 뛸 수 있는 시장이 넓고 갈수록 국내 선수들을 거액에 영입하려는 중국, 일본 구단의 공세가 거세다. 이렇게 해외 구단들이 무리한 액수를 제시하며 주요 선수를 붙잡고 있는 상황에서 K리그의 세부 연봉 공개는 구단의 존립 자체를 흔들 수 있다는 주장이다. 좋은 선수가 해외로 나가면 국내 축구의 질은 떨어지고 되고 경기력 저하로 팬들이 찾지 않게 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팍팍한 살림살이 속에서 박지성을 영입해 달라는 프로연맹의 제안은 그야말로 코미디에 가깝다. 박지성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퀸즈 파크 레인저스(QPR)로 이적하면서 70억원(추정치)의 연봉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QPR 내에서도 3위권의 고액 연봉자다. 이 정도 금액이면 수원 구단 1년 운영비의 4분의1에 가까운 수준이다. 또, 팀 최고 연봉자의 6~7배나 된다.
K리그 각 구단들은 전체 운영비의 80% 가까이를 선수단 임금으로 사용하고 있다. 정상적인 구단 운영이 되지 않아 적자가 누적되고 있다. 여기저기서 경고 메시지가 뜨고 있다. 지난 2009년 프로연맹은 각 구단이 적자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을 구단들과 논의했고 선수단에 승리수당, 골 수당 등 보너스 지급을 하지 않기로 했다. 또 시즌 중 원정 이동의 경우 버스나 기차를 이용하고, 원정 숙소 호텔 등급을 낮추는 등 비용절감 대책을 세우기도 했다.
이런 국내 현실에서 거액의 연봉자인 박지성을 아무리 수원 삼성이라고 해도 영입할 수 있을까, 프로연맹이 제시한 경영합리화 대책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프로축구연맹은 흥행의 폭발성이 보장되는 박지성이라는 거물 스타를 이용해 손 안대고 코를 풀겠다는 심보인 것처럼 보인다.
형평성도 문제다. 수원이 박지성 영입을 하게 될 경우 전폭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는데, 타구단과의 형평성에 분명 어긋난다.
프로축구연맹 고위 관계자는 "수원에 그러한 제안을 한 것은 모기업이 든든하고 그간 대형 선수 영입을 자주 해왔던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라며 나름의 이유를 제시했지만 소가 웃을 일이다.
박지성의 소속팀 QPR이 과연 손해를 보고 박지성을 보내줄까, 어림없는 일이다. 2부 리그로 내려가 재정적인 어려움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한 푼이라도 벌어야 하는 처지다. 프로연맹이 박지성 측이나 수원 대신 "국내리그로 돌아가니 이적료를 깎아 달라"라며 QPR 구단에 호소라도 하겠다는 것인가, QPR 이적 당시 박지성의 이적료는 500만 파운드(약 88억 원)였고, 계약 기간 1년이 남아 있다. 프로연맹이 그럴 능력이 있다면 대신 나서서 해결하는 수완을 발휘해보라고 하고 싶다.
박지성은 유럽 내 이적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겠다고 했다. 물론 언젠가 K리그에 와서 뛸 수도 있겠지만 지난 시즌 사실상 실패한 것을 생각하면 유럽 무대에서의 명예회복이 필요한 상황이다.
프로연맹이 구단과 구단끼리 하는 선수 이적에 개입하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된다. 수원이 영입하면 프로연맹이 연봉 일부를 보전이라도 해주겠다는 것처럼 해석될 수도 있다. 만약 수원이 박지성을 영입한 뒤 "박지성의 명예를 위해 연봉 공개를 하지 않겠다"라고 주장하면 그 때 프로연맹은 어떻게 할 것인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K리그는 미래를 지향하고 있다. 새로운 선수를 키워 한국 축구를 발전시키는 각 구단을 도와주는 것이 프로연맹이 우선적으로 할 일이다. 박지성을 국내로 불러들여 그에게 기대 마케팅을 해보려는 발상 자체가 프로연맹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미 21일 K리그 올스타전 관중 동원 능력에서 증명되지 않았는가, 박지성을 불러 관중들에게 인사 시키고, 주요 해외파 선수들을 올스타전에 뛰게 했지만 슬프게도 관중석은 빈곳이 넘쳐났다.
열심히 노력하는 K리그 22개 구단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열정에 찬물을 끼얹지는 말았으면 한다. 특정 구단에 박지성 영입을 부탁하기 전에 내실부터 다져놓기를 바란다.
조이뉴스24 /이성필기자 elephant1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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