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기자] "그저 팀에 도움이 되는 선수가 되고 싶을 뿐이에요. 출전 기회가 주어진다면 말이지요."
오재일(27, 두산)은 멋쩍게 웃었다. 187㎝ 95㎏의 거구인 그는 필드에서 단연 눈에 띈다. 우람한 체격만 봐도 실력이 만만치 않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외모에서 주는 위압감과 달리 그는 인터뷰를 꽤 쑥스러워 한다. 경험이 많지 않아서일 게다.
오재일은 오랫동안 미완의 대기였다. 야탑고를 졸업하고 지난 2005년 2차 3라운드로 현대 유니콘스에 입단할 때만 해도 미래가 밝아 보였다. 그러나 경기에선 좀처럼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이렇다 할 기회도 없었다. 상무를 제대하고 2009년 히어로즈에 합류한 뒤 지난 시즌 넥센에서 46경기 100타수에 들어선 게 가장 많은 타격 기회였다. 특히 2011년 박병호가 LG에서 이적한 뒤로는 주전 경쟁에서 완전히 밀렸다.
타율 2할3푼 1홈런 11타점을 기록하자 7월9일 소속팀을 옮겼다. 역시 두산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던 이성열과 맞트레이드됐다. 이적이 야구 인생에서 반전의 계기가 되지는 못했다. 1루수인 그의 포지션은 두산에서 가장 경쟁이 치열한 곳이다. 지난 시즌 두산 유니폼을 입은 뒤 87경기서 개인 최다인 8홈런을 친 그는 올 시즌 내내 2군에서만 와신상담했다.
퓨처스리그에선 적수가 없었다. 32경기서 타율 3할8푼3리 8홈런 27타점을 기록하며 '2군 배리 본즈'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정교함과 장타력을 겸비한 그가 뛰기에 2군 무대는 너무 좁았다.
하지만 그는 불평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기회가 올 것으로 믿었다. 나 자신에게만 충실하자는 생각 뿐이었다"며 "경기 전후 연습을 열심히 했다. 언젠간 찾아올 기회를 위해 이를 악물었다"고 그는 말했다.
애타게 바라던 기회는 결국 다가왔다. 지난 12일 1군으로 전격 승격되며 향상된 자신을 보여줄 찬스를 잡았다. 바라던 대로 그는 서서히 자기 기량을 과시하고 있다. 19일 잠실 롯데전에서 시원한 2루타로 마수걸이 안타를 신고하더니 21일 잠실 한화전에선 3-2로 앞선 5회말 장쾌한 투런홈런을 터뜨렸다. 그리고 22일 같은 팀을 상대로 7-7로 승부를 알 수 없던 연장 10회말 무사 만루에서 대타로 등장, 한화 마지막 투수 정대훈의 3구째를 잡아당겨 끝내기 우전안타를 때려낸 것.
불이 붙은 오재일의 방망이는 23일에도 멈추지 않았다. 역시 잠실 한화전 1회초 1사 2루서 좌익수 옆 2루타로 선취 타점을 올리더니 3-0으로 앞선 5회 무사 1루에서도 우중간을 완전히 가르는 2루타로 장타력을 과시했다. 이날 기록은 4타수 2안타 1타점. 3경기 연속안타에 5경기 연속 타점 행진 중이다.
덕분에 타율 3할1푼3리 1홈런 8타점으로 1군 성적이 향상됐다. 이제 8경기 16타수 출전에 불과하지만 경기를 치를수록 눈에 띄는 활약이 이어지고 있다. 김진욱 두산 감독은 오재일에 대해 " 선발출전 경험이 많지 않다보니 한 번 부진하면 빨리 정상 페이스를 찾지 못할 수도 있다. 실력은 충분하다. 다만 좀 더 적응이 필요할 뿐이다. 앞으로도 상황에 따라서 선발 출전 기회를 줄 계획"이라고 말했다.
타격능력에 더해 유연한 1루 수비는 그의 또 다른 장점이다. 오재일은 "수비는 자신 있다. 타구 처리가 어렵게 느껴지지 않는다"며 "공격이든 수비이든 팀에 도움이 되고 싶은 생각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단점으로 "타석에서 급한 편이다. 침착하게 공을 골라야 하는데, 그러지 못할 때가 많다"고 했다.
이름도 비슷한 팀동료 오재원의 야탑고 2년 후배인 오재일은 팀을 위한 밀알이 되겠다는 자세를 유독 강조한다. "1군에서 어떤 성적을 내겠다는 생각 같은 건 없다. 그저 출전 기회를 잡으면 팀이 이길 수 있도록 모든 것을 불사를 생각"이라며 각오를 다졌다. 새로 1군에 합류한 '중고 거포'가 두산의 재도약을 견인할 태세다.
조이뉴스24 김형태기자 tam@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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