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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년 강타자' 김기태가 밝힌 전격 은퇴의 비밀


"무릎 받쳐주지 못하자 은퇴 결심"

[김형태기자] 김기태 LG 트윈스 감독은 현역시절 대단한 강타자였다. 대구에 양준혁이 있다면 전주에는 김기태가 있다는 말이 있을 만큼 한 시대를 풍미한 좌타자였다. 광주일고를 거쳐 1991년 인하대를 졸업한 그는 대학 시절 국가대표 부동의 1루수 겸 4번타자로 맹활약했다.

당시 대표팀 내야는 1루수 김기태-2루수 박정태-유격수 이종범-3루수 유지현 등으로, 사상 최강의 내야로 불렸다. 우완 정민태와 좌완 구대성이 이끄는 투수진까지 더해지며 한때는 콜드게임패가 당연하게 여겨졌던 아마야구 최강 쿠바를 상대로 경기 후반까지 접전을 벌이기도 했다.

1991년 쌍방울에 입단한 김 감독은 삼성을 거쳐 2005년 SK에서 은퇴할 때까지 15년간 타율 2할9푼4리 249홈런 923타점을 기록했다. 역대 홈런 부문 12위, 타점 13위에 이름이 올라 있다.

그는 파워히터이면서도 타석에서 대단한 인내심을 발휘했다. 통산 4천975타수 동안 볼넷을 948개나 얻었다. 타수당 볼넷 비율이 19.1%에 달한다. '선구의 화신'으로 불리는 양준혁(17%, 7천332타수 1천278볼넷), 장성호(16%, 6천834타수 1천62볼넷)보다 뛰어난 기록이다.

김 감독의 은퇴 뒤에는 약간의 미스터리가 있었다. SK 유니폼을 입던 2004년 126경기에 출전한 그는 타율 3할2푼 10홈런 67타점으로 전성기 못지 않은 활약을 펼쳤다. 93경기에 나선 직전 시즌(타율 0.292 3홈런 18타점)보다 월등한 성적을 올리며 '한물 갔다'는 평가를 불식시켰다.

35세의 나이에 새 전성기를 맞은 그는 그러나 이듬해 갑자기 성적이 곤두박질쳤다. 54경기에서 홈런 없이 타율 2할5리 11타점에 그치면서 은퇴를 결심했다. 웬만하면 '명예회복'을 외치며 옷벗을 시기를 미룰 만도 했지만 그는 미련 없이 현역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갑작스런 은퇴의 미스터리가 3일 풀렸다. 이날 잠실 한화전에 앞서 김 감독은 "싱커를 칠 수 없다고 판단되자 은퇴를 결심했다"며 "한 번은 2루 땅볼만 3번을 치기도 했다. 컨디션이 꽤 좋았는데도 못치니 무척 화가 났다. 상대 투수는 정확히 기억 안 나는데, 기교파 투수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투수들의 구종이 다변화되고 점점 치기 어려운 구질이 개발되면서 이제 옷을 벗을 때가 됐다고 판단을 굳혔다는 얘기였다. 김 감독은 "공 밑을 때려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았다. 무릎을 낮춰서 자세를 낮게 가져가려 했지만 무릎이 받쳐주질 못했다. 결국 몸이 마음먹은 대로 따라주지 못하자 더는 힘들다고 생각했다"며 은퇴의 배경을 설명했다.

요즘 투수들은 여러가지 변형 패스트볼을 구사한다. 싱커는 물론 투심에 스플리터, 커터 등 '변화구 같은 직구'로 무장했다. 점점 타격 기술이 정교해지는 타자들을 잡아내기 위한 연구의 결과다.

김 감독은 LG 타자들 가운데 이른바 변형 패스트볼에 가장 강한 타자로 이진영을 꼽았다. 그는 "이진영의 가장 큰 강점은 임팩트 순간 버티는 힘에 있다"며 "그래서 묵직하게 날아오는 낮은 공에도 큰 강점을 가지고 있다"며 칭찬했다. 이진영의 올해 나이는 33세. 김 감독의 지론에 따르면 이진영은 떨어지는 공에 힘을 실어 칠 수 있는 능력을 유지할 경우 롱런이 가능할 전망이다.

공료롭게도 이진영은 이날 8-8 동점이던 7회말 2사 1,3루에서 대타로 나와 천금같은 결승타를 때려냈다. 상대 마무리 송창식의 떨어지는 공을 제대로 잡아당긴 타격의 결과였다. 김 감독이 칭찬한 그만의 강점이 확실하게 발휘된 순간이었다. 덕분에 LG는 짜릿한 역전 드라마를 완성할 수 있었다.

조이뉴스24 김형태기자 tam@joynews24.com 사진 조성우기자 xconfind@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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