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한준기자] 푸른색 삼성화재 트레이닝 복이 아니었다. 흰색과 검은색이 들어간 현대캐피탈 트레이닝복을 입고 나타난 여오현. 어딘가 좀 낯설다. 그도 그런 기분을 느꼈는지 멋쩍게 웃는다.
삼성화재 유니폼이 익숙하던 여오현은 2012-13시즌이 끝난 뒤 자유계약선수(FA) 자격으로 현대캐피탈과 계약했다. 홍익대 졸업 후 10년 넘게 입었던 삼성화재 유니폼을 벗고 팀을 옮겼다. 그런 여오현을 3일 현대캐피탈 선수단 숙소가 있는 경기도 용인에서 만났다.
여오현은 "나를 필요로 했던 팀에 왔다"고 이적 소감을 밝혔다. 이제는 친정팀이 된 삼성화재도 그를 필요로 한 건 마찬가지다. 여오현은 "선수생활을 오래 하다보니 한 번쯤은 변화를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마침 FA 자격도 얻었고 그래서 내 가치를 확인해보고 싶었다"고 이적 결정을 내린 배경에 대해 얘기했다.
배구선수로는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지만 리베로라는 포지션 특성상 그리고 여전히 녹슬지 않은 기량 때문에 여오현은 이번 FA 시장에서 블루칩 중 한 명으로 꼽혔다. 특히 오프시즌 동안 서브 리시브와 수비를 보강하려는 팀들은 눈독을 들일 만했다. 국가대표팀을 넘어 '월드 리베로'로 꼽히는 여오현이기 때문이다.
그의 장점은 수비실력 뿐 아니다. 코트에서 항상 파이팅을 외치며 동료들을 독려하는 부분도 여오현이 지닌 장점 중 하나다. 삼성화재 신치용 감독도 "고참으로서 (여)오현이와 고희진이 코트에서 힘을 내는 부분이 우리 팀이 갖고 있는 강점"이라고 강조했었다. 현대캐피탈도 바로 그런 부분에 초점을 맞춰 여오현을 영입했다.
현대캐피탈과 계약을 맺은 뒤 여오현은 곧바로 팀에 합류하진 않았다. 교생실습 일정 때문에 한 달 동안 학생들과 시간을 보낸 뒤 6월 초, 이제는 라이벌이 아니라 한솥밥을 먹게 된 현대캐피탈 선수들과 만났다.
여오현은 "낯설지는 않다"고 했다. 대표팀 동료로 오랜 기간 손발을 맞춘 권영민, 윤봉우, 문성민 등이 현대캐피탈에 있었다. 그리고 삼성화재에서 함께 우승컵을 들어올린 경험이 있는 최태웅도 있기 때문이다. 여오현은 "젊은 선수들이 좀 어려워 하더라"고 웃었다.
유니폼과 팀 숙소 그리고 주변 환경이 바뀌었지만 여오현은 변함이 없다. 코트 안팎에서 항상 동료들을 독려하느라 크게 소리를 질러 쉰 목소리도 여전하다. 그는 "이제 이게 내 목소리가 돼버렸다"고 했다.
여오현의 목표는 분명하다. 삼성화재 시절도 그랬다. 코트에서 최선을 다해 운동을 하고 우승을 차지하는 일이다. 여오현은 "역시 우승컵을 품에 안았을 때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삼성화재가 실업시절과 V리그에서 달성한 수많은 우승 DNA를 고스란히 간직한 선수다웠다. 여오현 영입으로 현대캐피탈이 변한 건 선수들의 하루 훈련 횟수다.
이전까지 오전, 오후 두 차례 나눠 훈련했다. 야간 운동은 자율적으로 실시했는데 이제는 선수들이 알아서 세 차례 훈련에 꼬박꼬박 참가한다. 선, 후배 모두 예외는 없다. 대표팀에서 무릎 인대를 다치는 바람에 수술 후 재활을 하고 있는 문성민만 여기에서 빠졌다.
여오현은 이적 후 삼성화재 선수들은 한 번 만났다. 지난주 있었던 구단 회식 때다. 이적선수들의 송별회와 새로 팀에 합류한 선수들의 환영식을 겸한 자리였다. 여오현은 "솔직히 기분이 이상했다"며 "왠지 미안하기도 했고 자리가 난처하더라"고 웃었다. 옛 동료들과 신 감독은 '가서 더 열심히 뛰라'고 덕담을 건넸다. 여오현도 그래서 오히려 부담을 조금은 더 느낀다. 새 소속팀 현대캐피탈이 무엇을 원해 자신을 영입했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여오현과 관련해 한 가지 더 어색한 부분을 발견했다. 바로 등번호다. 삼성화재와 대표팀에서 그는 항상 5번을 사용했다. 5번 유니폼 하면 여오현이 떠오를 정도로 익숙하다. 현대캐피탈에 와서는 은퇴한 후인정이 달던 9번을 배정받았다. 5번은 기존에 뛰고 있던 박종영이 달고 있다.
여오현은 "번호까지 달라고 하면 너무한 것 같다"고 웃었다. 그러나 곧 5번을 단 그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KOVO(한국배구연맹) 컵대회까지 여오현은 9번을 사용한다. 선수등록이 그렇게 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3-14시즌 개막을 앞두고 등번호 조정이 있을 예정이다. 여오현은 "그 때가 되면 (박)종영이에게 한 번 부탁해보겠다"며 "등번호를 양보해준다면 당연히 보답하겠다"고 다시 한 번 환하게 웃었다.
조이뉴스24 용인=류한준기자 hantaeng@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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