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기자]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 파문'을 일으켰던 기성용(스완지시티)에 대한 대한축구협회의 최종 결정은 '혐의 없음'이었다. 기성용이 사과와 반성의 뜻을 밝혔고 국가대표팀에 대한 공헌과 업적을 고려해 '엄중 경고' 조치한다는 결정이었다.
축구협회 부회장단과 분과위원들이 모인 임원회의에서 내린 이번 결정의 반응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축구계 내부에서는 지도자들이 그나마 '미래를 위해서' 합리적 결정이라는 평가를 내렸지만 팬심(心)은 싸늘했다. 축구협회 홈페이지에는 축구팬들의 항의 글이 쉼없이 올라왔다.
눈에 띄는 글의 요지는 '유전무죄 무전유죄'에 빗대 비판한 것이었다. 실력만 있으면 모든 게 용서 되느냐는 말이었다. 또, 기성용의 부친 기영옥 씨가 광주광역시 축구협회 회장이니 축구협회의 무징계 결정에 영향을 주지 않았겠느냐는 추측성 글까지 쏟아졌다. 이번 결정이 앞으로 다른 분야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걱정하는 글도 보였다.
기성용 파문에 대해 '엄중경고' 결정이 이미 내려진 마당에 실질적인 징계를 왜 주지 않았느냐고 따지는 것은 무의미한 상황이 됐다. 결정 주체였던 허정무 축구협회 부회장도 10일 FA컵 16강전 성남 일화-포항 스틸러스전이 열린 탄천종합운동장을 찾아 "경고 조치에 대한 철회는 없다"라며 확실하게 못을 박았다. 11일 홍명보 신임 국가대표팀 감독이 동아시안컵 명단을 발표할 예정이어서 그 전에 기성용 건을 매듭짓는 게 낫겠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몇 가지 따져 볼 것들이 있다. 과연 기성용 징계 논의 과정에서 어떤 철학을 가지고 '엄중경고'라는 판단을 내렸는지, 여론을 의식은 했는지, 국가대표 신분으로 사용했던 SNS에 대한 성격 규정을 명확히 했는지, 축구협회 내 의결 기구의 정당한 절차를 밟았는지 등이다.
임원회의는 세 시간 정도를 했고 그 안에서 모든 결론이 나왔다. 협회 내 성인 부문을 담당하는 허정무 부회장은 터키에서 20세 이하(U-20) 축구대표팀과 함께 9일 귀국한 뒤 다음날 오전 기성용 문제를 처음으로 다뤘다. 사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심도있게 논의할 시간이 부족할 수밖에 없던 것은 당연했다.
과연 얼마나 심도있게 논의가 오갔을까, 조이뉴스24는 임원회의에 참석했던 허정무 부회장을 비롯해 참석 인사들과 통화를 시도했고 대부분은 받지 않았다. 겨우 한 인사와 전화통화가 됐고 이 인사는 짧게나마 분위기를 알려줬다. 그는 "고민 끝에 엄중경고라는 결론을 내렸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한 명의 국가대표를 육성하기가 어렵고 모욕의 당사자였던 최강희 감독도 사과를 받아준 것으로 확인됐으니 경고 수준으로 끝냈다"라고 말했다.
다양한 관점에서의 사태에 대한 분석과 판단은 있었는지 묻자 "그럴 여유는 없었다. 축구계에서 첫 사례라 조심스럽게 판단했고 대부분의 참석자가 빠른 수습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라며 사건의 파장이 더 커지지 않기를 바랐다. 이번 사건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자료가 있었느냐는 질문에는 "잘 모르겠다. 언론 보도만 참고했다"라고만 전했다.
시간에 쫓긴 듯 서둘러 사태를 봉합한 임원들의 결정은 큰 아쉬움을 남긴다. 국가대표로서 SNS라는 수단을 이용해 대표팀 수장에게 위계질서를 흐트러뜨리는 발언을 했다는 특이한 사례라는 점에서 축구계 내부 결정으로만 논의를 일단락 짓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SNS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를 바탕으로 자세한 경위를 분석할 필요가 있었지만 임원들은 기성용이 올렸던 글과 사과에 대해서만 초점을 맞췄을 뿐이다. 임원들 대부분이 SNS 사용자가 아니라는 점도 문제에 대한 이해를 떨어트리는 한 요인이었다.
현대적인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연구하는 학계에서는 SNS에 대한 성격 규정을 다양하게 하고 있다. 여러 관련 연구자들에게 이번 사건과 관련해 SNS의 성격에 대해 묻기도 하고 연구 논문을 찾아보니 '사적 도구의 관점'으로 보는가 하면 '공적 도구'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었다. 2000년대 열풍을 일으켰던 원조 SNS 싸이월드의 미니홈피가 개인적인 통신 수단이냐 아니냐를 놓고 논쟁을 벌였던 것이 그대로 트위터와 페이스북으로 옮겨 온 셈이다.
그러나 지인들과 연결이 되어 있고 자신의 생각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는다는 점에서 '공론의 장', 즉 공적인 성격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 학자들의 판단이다. SNS 자체가 외부로 열려있게 된 시스템이고, 공인이라 할 수 있는 국가대표선수가 이 도구를 사용했으며, 다수의 대중이 팔로잉하고 연결이 됐다면, 공적 커뮤니케이션 도구의 성격이 더 짙어지게 되는 것이다. 갈수록 SNS 활용이 빈번해지는 시대의 흐름도 무시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축구협회는 커뮤니케이션이나 사이버 윤리 등을 연구하는 학자, 전문가들을 참여시켜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노력을 했어야 했다. 축구인들의 판단 자체는 존중 받아야 하지만 일반 선수가 아니라 국가대표 선수가 관련된 일이기 때문에 야구, 농구, 배구 등 다른 스포츠나 혹은 국가를 대표하는 성격을 띠고 활동하는 다른 분야에도 충분히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처럼 보였다.
한국에서 국가대표는 '불행하게도' 하나의 상징으로 굳어진 지 오래됐다. 이들의 언행과 행동 하나하나가 큰 파급효과를 내는 존재라는 점에서 일부분 개인 자유가 제한받고 위축된 부분도 있다. 하지만, 국민적 관심사가 큰 문제였다는 점에서 심도 있는 논의 없이 사태를 종결지으려 했다는 점은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게 될 것이다. 타 분야의 비슷한 사례를 확인 후 처리 과정이 어땠는지 살펴보는 절차가 필요했지만 이 역시 거치지 않았다.
또, 기성용의 발언이 나오게 된 배경과 과정도 조사해야 했다. 물론 기성용은 최 감독 건 이전에도 미니홈피에서 대중을 상대로 거친 언사를 쏟아낸 전례가 있다. 하지만, 대표팀에서 뛰는 동안 '시한부' 감독이었던 최강희 감독과 어떤 문제가 없었는지, 다른 선수들과는 어떤 문제가 없었는지 등도 따졌어야 했다. 문제가 된 대부분의 글들이 최 감독이 재임하는 시기에 작성됐기 때문이다(외부로 노출이 된 것만).
대표팀에서 발생한 일이라 최 감독의 리더십 문제를 제쳐놓고 갈 수 없기 때문에 기성용의 소명을 듣는 절차가 필요했다. 전지훈련지에서 에이전트를 통해 사과문을 보낼 정도면 소명을 듣는 것은 큰 어려움이 없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같은 시기 대표팀에 차출돼 함께 활동했던 선수들의 증언 청취도 당연히 있어야 했다.
여론이 '빨리 빨리 결론을 내라'고 재촉을 해도 조금만 더 시간을 달라며 양해를 구한 뒤 확인했어야 했다. 사례 연구를 통해 자연스럽게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이런 절차를 놓친 축구협회는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의 뼈대는 고사하고 그저 '대표 선수로서의 책임과 소임을 다하도록 교육을 강화하고 대표팀 운영 규정을 보완하겠다'는 추상적인 말만 내놓았다. 징계와 대책은 함께 나와야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마지막으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왜 임원 회의에서 이번 사건에 대한 결론이 났는지다. 허 부회장이 성인을 담당하는 부회장이라고는 하지만 축구협회에는 이사회 아래 징계분과위원회가 존재한다. 아래서부터 논의되고 내린 결정이 위로 올라가 결론을 도출해야 하는데 위에서 찍어 누른 격이 됐다. 이미 축구협회는 이런 식의 의사 결정으로 비판을 수없이 받아왔다. 스스로 절차를 무시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정당한 과정과 철학 없는 결정이 얼마나 의미 없는 소모전만 만들었는지, 축구협회가 모를 리 없다. 큰 공부를 했다며 손을 털 것이 아니라 받아든 숙제를 풀기 위해 머리를 싸매야 한다.
조이뉴스24 이성필기자 elephant1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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