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한준기자] 막내구단 NC 다이노스는 후반기 순위경쟁에 중요한 존재가 됐다. 4강을 노리고 있는 팀들의 발목을 연달아 잡아채는 등 고춧가루 부대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NC는 전반기 동안 신생팀이라는 꼬리표에 어울리는 성적을 냈다. 투타에선 엇박자가 나기 일쑤였고 어이없는 실책으로 상대팀에게 경기를 내준 적이 많았다. 그러나 올스타 휴식기가 끝난 뒤 후반기 일정이 시작되자 전혀 다른 팀이 됐다. 투타 그리고 수비력이 안정을 찾으면서 만만치 않은 실력으로 성공적인 1군리그 데뷔 시즌을 보내고 있다.
9승에 평균자책점 2.53으로 부문 1위에 올라 있는 에이스 찰리 쉬렉과 함께 이재학(7승 5패 평균자책점 3.46) 등이 이끌고 있는 선발 투수진은 상대팀이 공략하기 쉽지 않다. 여기에 베테랑 이호준이 버티고 있는 타선도 매섭다.
16홈런 75타점을 기록하고 있는 이호준을 비롯해 NC는 두자릿수 홈런을 기록한 선수가 모두 4명이나 된다. 여기에 보호선수 외 특별지명으로 SK 와이번스에서 NC로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모창민(타율 3할 10홈런 41타점 13도루), 이재학과 함께 올 시즌 신인왕 후보로 꼽히는 나성범(타율 2할6푼 10홈런 50타점 10도루)까지 만만하게 볼 수 없는 타자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리고 또 한 명이 있다. 모창민과 같은 특별지명 케이스로 지난해 11월 NC로 온 조영훈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는 26일 현재 96경기에 출전해 308타수 92안타 타율 2할9푼9리 5홈런 34타점을 기록하고 있다. 어느 팀에 데려다놓아도 주전으로 나설 만한 성적을 내고 있다.
▲지나가버린 옛 시절, 그리고 '제2의 이승엽'
조영훈은 프로무대에서 몇 안되는 강원도 출신 선수다. 그는 설악중과 속초상고를 거쳐 건국대를 나왔다. 고교 졸업반 때인 2001년 신인 2차지명에서 2라운드 11순위로 삼성 라이온즈가 지명했다. 대학 졸업 후 2005년 삼성 유니폼을 입고 프로선수가 됐다.
입단 당시 그는 '제2의 이승엽'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당시 삼성은 일본으로 진출한 이승엽의 빈자리를 메울 수 있는 좌타자가 부족했다. 양준혁(현 SBS ESPN 해설위원)과 박한이 등이 있었지만 아무래도 허전했다. 당시 삼성 2군 인스트럭터로 활동하고 있던 김성근 고양 원더스 감독이 조영훈에게 후한 평가를 내렸다. 김 감독은 조영훈의 부드러운 스윙을 보고 난 뒤 이승엽의 자리를 이어받을 수 있는 재목이라고 평가했다.
조영훈은 신인이던 2005년 7경기 출전에 그쳤다. 그러나 2006년 88경기에 나와 2할8푼3리 2홈런 26타점 9도루를 기록하며 가능성을 보였다. 홈런 숫자는 적었지만 중장거리 타자로 이점이 있었다. 하지만 이 때 문제가 생겼다.
조영훈은 "눈에 문제가 있다는 걸 그 때 알았다"고 했다. 타석에서 어이없는 공에 방망이를 휘두르거나 수비에서 타구를 놓치는 일이 늘어났다. 훈련을 할 때도 그랬다. 당시 팀 지휘봉을 잡고 있던 선동열 감독(현 KIA 타이거즈 감독)이 조영훈을 불러 "시력검사를 해보라"고 했다.
조영훈은 "난시가 심했다"고 했다. 낮경기에선 그런 일이 거의 없었지만 야간경기가 문제였다. 중고교 그리고 대학시절 야간경기를 치른 경험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조영훈 스스로도 난시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타석에 서면 투수가 던진 공에 잔상이 생겼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그래서 안경을 착용했다. 시력 교정 수술을 받으라는 권유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진 않았다. 몸에 칼을 댄다는 사실 자체가 꺼림직했고 부모님도 수술을 반대했었다.
조영훈은 "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 때 수술을 하는 게 나을 뻔했다"고 말했다. 안경을 착용한 뒤 앞이 더 잘 보였고 잔상도 없었다. 편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운동을 하는데 불편했다. 어릴 때부터 안경을 쓰지 않아서인지 적응에 힘이 들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몰라도 마음먹은 대로 방망이가 돌지 않았다. 경기 출전 횟수도 눈에 띄게 줄었다. 팀내에서는 같은 1루 자리에서 선발 경쟁을 했던 채태인에게 점점 밀렸다. 2007년 66경기에 나와 타율 1할6푼8리로 부진하자 군입대를 결정했다. 경찰청으로 입대한 조영훈은 퓨처스(2군)리그 북부리그에서 홈런왕을 차지하는등 매서운 방망이 실력을 보였다. 경찰청에서 꽃을 피워 삼성의 간판타자로 발돋움한 팀 선배 최형우의 뒤를 그대로 밟고 있었다.
그러나 삼성에서 입지는 좁았다. 대타나 대수비 요원으로 경기에 출전하는 경우가 많았다. 전역 후 팀에 복귀한 2010시즌 67경기에 출전, 타율 2할7푼5리 6홈런 17타점으로 쏠쏠한 활약을 했지만 주전자리는 조영훈의 몫이 아니었다.
▲트레이드 그리고 비난, 제3의 출발
조영훈은 결국 지난해 미운정 고운정이 모두 들었던 삼성을 떠났다. 투수 김희걸과 맞교환돼 KIA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게 됐다. 조영훈은 "두 번째 기회였던 셈"이라고 했다. 첫 번째 기회는 이승엽이라는 거목이 떠났던 신인시절 삼성이었다. 그리고 자신을 필요로 했던 KIA행이 두 번째였다.
그러나 새로운 팀에 적응하기도 바빴던 조영훈은 팬들로부터 큰 비난을 받게 됐다. 지난해 9월 8일과 9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와 경기였다. 당시 1루수로 선발출전했던 그는 두 경기에서 연속 실책을 범했다. 조영훈의 실책이 상대의 끝내기 점수나 결승점으로 연결되진 않았지만 당시 4강 순위 경쟁을 하고 있던 KIA는 LG에게 두 번 모두 역전패했고 가을야구에 대한 꿈을 접었다.
조영훈은 "그 때 정말 힘이 들었다"고 말했다. 칭찬을 받거나 팬들로부터 응원을 많이 받던 선수는 아니었지만 비난과도 거리가 멀었던 그였기에 당시 경험은 충격적이었다. 조영훈은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당시 생각을 하면 정말 기분이 그랬다"고 말끝을 흐렸다.
부각된 실책 탓일까. 조영훈은 KIA에서도 자리를 잡지 못했다. 6홈런과 36타점을 기록하며 프로 데뷔 후 두 부문에서 개인 최고 성적을 냈지만 타율은 2할로 떨어졌다. 2007년 이후 가장 좋지 않았다. 조영훈은 "막막했었다"며 "삼성에 이어 KIA에서도 이렇게 끝나는가 싶었다"고 힘들었던 당시를 기억했다.
어느덧 프로 8년차였다. 제2의 이승엽이라는 말을 들었던 유망주 시절도 이젠 옛일이 됐다. 결혼도 해 가장이 됐지만 보이는 건 불투명한 미래였다. 이런 가운데 조영훈에게 세 번째 기회가 찾아왔다. 생각하지도 않았던 일이었다.
제9구단 NC의 특별지명을 앞두고 KIA는 보호선수 20명 명단에서 그를 제외했다. NC는 조영훈을 지명했고 그래서 광주구장을 떠나 마산구장으로 오게 됐다. 조영훈은 "당시 주변에 여러 선수들이 NC행에 대해 관심을 보였다"고 했다. 주로 1군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던 1.5군으로 분류되던 선수들이거나 2군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던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주전도 아니고 확실한 조커로 분류되지도 않아 어정쩡한 포지션이던 조영훈도 내심 NC 유니폼을 입기를 바랐다. 그렇다고 해도 현실로 다가올 줄은 몰랐다.
그는 "NC가 나를 지명했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 놀랐었다"며 "기존 팀이던 KIA보다는 아무래도 신생팀이 내가 뛰기엔 여러모로 나았다"고 했다. 조영훈은 세 번째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신생팀이었지만 미디어와 팬들의 관심은 많았다. 프로 9년차로 현역선수 연장이냐 아니면 은퇴냐 기로에 서 있던 그에게 NC행은 한 줄기 빛이나 마찬가지였다.
조영훈은 NC 타선에서 튀지는 않는다. 그러나 소리없이 강하다. 시즌 성적이 이를 말해준다. 프로 데뷔 후 처음 규정타석(316타석)에 들었다. 하지만 넘어서야 할 벽은 있다. 그도 잘 알고 있다. 삼성 시절 팬들은 조영훈에게 '여름 사나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기온이 오르기 시작하는 6월만 되면 그는 매섭게 방망이를 돌렸다. 그런데 본격적인 더위와 장마가 시작되는 7월부터 또 타격 성적이 곤두박질쳤다.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매번 그랬다. 여름 사나이라는 말은 오히려 '왜 6월에만 반짝 하느냐'는 팬들의 불만이 들어가 있는 별명이었던 셈이다.
조영훈은 "체력적으로 힘든 건 아닌데 유독 장마철에 컨디션을 못 챙겼다"고 했다. 올 시즌에도 슬럼프가 찾아오긴 했다. 하지만 길지는 않았다. 한 가지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꾸준한 경기 출전 덕분이다. 조영훈은 "방망이가 맞지 않았지만 빠졌던 경기가 얼마 되지 않았다"고 NC에서 달라진 위상을 설명했다. 순위경쟁에서 한 발 물러나 있는 신생팀 NC가 갖고 있는 특수성이 조영훈에게 꾸준한 출전 기회를 준 것이다.
그는 올 시즌 더 이상의 욕심이나 미련은 없다고 했다. 그저 경기에 선발로 출전하고 규정타석을 채우는 자신이 신기하기까지 하다. 팀이 선전해 올 시즌을 잘 마무리하는 게 우선 과제다. 조영훈은 "남은 경기를 잘 치러서 팀이 7위로 올라섰으면 좋겠다"며 "이를 돕는 게 내가 할 일"이라고 말했다.
물론 개인적인 목표는 있다. 바로 프로 데뷔 후 첫 3할 타율과 두자릿수 홈런이다. 홈런 숫자는 아직 멀어보이지만 3할까지는 딱 1리 남았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선 상대 투수의 변화구 공략이 필수다. 조영훈은 자신의 약점이 변화구에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3할 타자 그리고 주전과 비주전을 가르는 차이가 어떻게 보면 크지 않다. 이런 작은 부분 하나가 중요하다.
NC는 27일과 28일 대구구장에서 삼성과 원정 2연전을 치른다. 조영훈은 친정팀 삼성을 상대로 타율 3할 진입에 도전한다. 홈런까지 더해진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한편, 조영훈은 안경과 작별했다. KIA 시절 눈 수술을 받았고 이제는 맨눈으로 그라운드에 나선다.
조이뉴스24 류한준기자 hantaeng@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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