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숙기자] 재기를 노리는 이들이 모인 국내 최초의 독립야구단 고양 원더스. 선수들의 경력과 실력 모두 천차만별이다. 이 중 눈에 띄는 선수가 있다. 청각 장애인 투수 박병우(20)다. 제물포고 시절 훈련 중인 박병우를 보고 김성근 감독이 먼저 입단을 제안했다. 김 감독은 "몸이 불편하더라. 우리 팀 색깔과 맞는다고 생각해 기회를 주고 싶었다"고 그를 지도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박병우의 성실함은 유명하다. 숙소 생활을 하지 않아 야간 훈련에 불참해도 되지만, 그는 늘 오후 10시까지 남아 공을 던진다. 프로 구단 입단이라는, 간절한 목표가 힘든 훈련을 버티게 하는 원동력이다.
청각 장애인 선수도 프로 입단을 꿈꾸는 곳. 김성근 감독은 '박병우가 프로에 입단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그럼. 그건 본인 노력에 달린 문제다. (가능성이) 없다고 단정지을 수 있나? 이 팀에 있는 선수들 모두 처음에는 가능성 없다고 버려진 선수들이었다"고 단언했다.
원더스 창단 감독으로 팀을 맡은 첫 해 김 감독은 "한 명이라도 프로에 진출하는 선수를 만들겠다"고 했다. 첫 트라이아웃 때만 해도 이름도 낯선 독립구단에서 야구를 하겠다고 모여든 선수들은 말 그대로 오합지졸. 당시 김 감독은 "쓸 만한 선수가 아직 보이지 않는다"며 근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원더스는 지난해 5명, 올해 10명이나 프로팀에 입단하는 선수를 배출했다. 원더스의 경기장에 프로팀 관계자가 찾는 일도 늘었다. 누구도 알지 못했던 국내 첫 독립구단의 한계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김 감독의 다음 시즌 목표는 무엇일까. 김 감독은 "내년은 아직 모르겠다. 그러나 단 하나, 프로에서 뛸 수 있는 선수를 만들고 싶다"며 눈빛을 반짝였다. 후보에 머무는 선수가 아닌, 1군 무대에서 당당히 실력을 겨룰 선수를 발굴하는 게 김 감독의 마음속 숙제다.
원더스는 올 시즌 퓨처스리그 교류경기 48경기에서 27승 6무 15패, 승률 6할4푼2리의 성적을 기록했다. 이는 기존 주전으로 뛰던 멤버가 빠져나간 가운데 이뤄낸 놀라운 성과다. 원더스는 지난 5월, 6명의 선수를 프로에 보냈다. 투수 김용성, 포수 이승재, 외야수 윤병호 이원재가 NC에, 외야수 송주호가 한화에 입단했고, 이어 내야수 김정록도 넥센 유니폼을 입었다.
1번부터 6번까지의 선수 중 5명이 한꺼번에 빠져나갔다. 당장 경기 운영이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김성근 감독은 다시 새 얼굴을 찾아냈다. 그리고 원더스는 7월까지 전반기 성적 11승 2무 11패로 5할을 맞췄다. 이후에도 4명의 선수가 KT와 LG에 추가 입단했다.
"그게 사람의 잠재력이다. 주전 선수 6명을 보내고 4일 만에 팀을 바꿨다. 1번부터 다 새로운 선수로 채웠다. 대신 훈련 시간은 더 길어졌다. 선수층이 좋은 게 아니라 새로 만들어낸 거다. 스스로 한계를 설정하지 않는 이상, 사람은 바뀐다."
원더스는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 "당시 나흘 동안 비가 왔다. 비가 오면 실내 훈련만 하고 말지만, 우리는 비를 맞으면서 훈련을 모두 소화했다. 경기가 열리지 않은 나흘 동안의 비가 기회가 된 것이다. 만약 단순한 비로 끝났으면 원더스는 살아나지 못했을 것이다." 김 감독이 어떻게 팀을 꾸려가고 선수들의 실력을 이끌어내는지 알 수 있는 설명이다.
그저 묵묵히 지켜보고, 길을 제시하는 게 김 감독의 주요 역할이다. 김 감독은 "시작부터 김광현, 최정이 된다는 보장은 없었다. '하다 보니' 선수가 스스로 자라더라. 원더스 역시 그런 팀"이라고 말했다.
사명감. 고령의 김 감독이 여전히 그라운드를 지키는 이유다. "지도자는 사명감이 있어야 한다. 선수 인생의 한 페이지를 허무하게 보내면 안 된다. 훈련 당시는 힘들지만 돌아보면 후회는 없다. 선수가 두 번, 세 번 도전했을 때 지도자가 길을 알려주면 된다. 그게 우리가 할 일이고, 고양 원더스다."
프로에 입단하는 선수도, 도중에 포기하는 선수도 마음은 같다. 김 감독은 "선수들이 내 품을 떠날 때 '야구도 배웠지만, 인생을 배우고 갑니다'라고 한다. '원더스를 원망스럽게 생각하지 않는구나' 싶다"며 환하게 웃었다.
조이뉴스24 한상숙기자 sky@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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