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한준기자] 짜릿한 승리였다. 마지막까지 경기 결과는 안갯속이었다. 5세트까지 간 접전에서, 그것도 듀스 상황에서 팀 승리를 결정하는 블로킹을 잡아냈을 때 흥국생명 세터 조송화는 한 손을 번쩍 치켜 들었다. 21일 열린 경기에서 그렇게 흥국생명은 현대건설을 물리쳤다.
조송화는 일신여상 졸업반 때인 지난 2011년 프로배구 여자부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4순위로 흥국생명에 뽑혔다. 상위 지명 선수였지만 출전 기회는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넘기 힘든 산과 같은 김사니(현 로코모티브 바쿠)가 같은 포지션에서 뛰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송화도 자신이 주전세터로 코트에 나간다는 걸 쉽게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오프시즌 동안 김사니가 아제르바이잔리그로 떠나면서 덜컥 기회가 왔다. 흥국생명 류화석 감독은 기존 백업세터로 뛰었던 우주리 대신 조송화를 주전세터로 기용하기로 했다.
높이가 이유였다. 7년차 시즌을 맞는 우주리가 경험에서는 조송화를 앞서지만 단신 세터였다. 반면 조송화는 신장이 176cm다. 안그래도 높이가 열세인 팀 사정상 전위에 우주리가 서면 사이드 블로킹의 높이가 더 낮아진다.
하지만 조송화는 그렇게 뛰고 싶었던 코트에 막상 들어가자 제 역할을 못했다. 오른쪽 어깨를 다친 탓도 있지만 여린 성격도 한몫 거들었다. 어린 선수라 실수를 하는 게 당연했지만 이를 반복하다보니 자신감이 뚝 떨어졌다.
토스를 한 뒤 벤치를 쳐다보는 횟수도 늘어났다. 그럴 때마다 동료들과 손발이 맞지 않았다. 류 감독은 이런 조송화에게 쓴소리도 했다. 경기가 시작되면 코트에서는 세터가 감독 역할을 해야 한다. 세터가 흔들리면 그만큼 팀 전체 전력이 불안해지기 때문이다.
류 감독은 조송화에게 자신감을 불어넣기 위해 '메모'를 이용했다. 메모에는 상대팀 공격 루트, 공격수 위치, 볼이 떨어지는 예상 지점 등이 간략하게 정리됐다. 일종의 간이 전술 가이드라 볼 수 있다. 류 감독은 조송화에게 이를 숙지하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경기 시작 직전 라커룸에서 간단한 미팅을 가졌다.
마음이 여린 조송화는 눈물을 자주 흘렸다. 마음먹은 대로 경기가 풀리지 않아 자책하는 경우가 많았다. 류 감독은 조송화에게 시간을 주기로 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조금씩 나오고 있다.
21일 수원체육관에서 열린 현대건설전이 끝나고 조송화는 난생 처음 공식 인터뷰에 나섰다. 팀 승리 수훈선수 자격으로 참가했다. 그는 "처음이라 긴장된다"며 연신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그러나 젊은 선수답게 당당한 모습도 내비쳤다.
조송화는 "주전 세터로 뛴다는 부분이 부담이 가는 건 사실"이라고 했다. 팀은 최근 실업팀인 포항시청에서 뛰고 있던 베테랑 세터 이미현을 긴급 수혈했다. 조송화는 "포지션 경쟁에서 밀려난나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오히려 우주리 언니와 함께 지원군이 생기는 것 같아 든든하다"고 했다.
류 감독은 "현대건설전만 놓고 본다면 (조)송화는 충분히 제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이날 흥국생명은 외국인선수 바실레바(불가리아)에게만 공격이 집중되지 않았다. 류 감독은 "바실레바를 포함해 세 선수가 두 자릿수 득점에 성공하면 팀이 승리를 한다"고 조송화에게 강조했다. 이날 흥국생명은 바실레바가 32점을 올렸고 김혜진과 박성희가 각각 14, 12점을, 주예나와 정시영도 각각 10점을 보태는 등 고르게 활약했다.
네 선수의 공격점유율은 적절히 분산됐다. 바실레바가 39%를 기록했고 나머지 선수들이 각각 24~12%대 점유율을 나타냈다. 조송화의 토스 배분이 비교적 고르게 갔다는 의미다.
조금씩 주전으로 나아가는 조송화는 "일단은 부상 회복이 우선"이라고 했다. 코트에 나서고 있지만 아직 오른쪽 어깨 상태가 100%는 아니다. 계속 병원을 다니며 치료를 하고 재활을 하고 있다.
조송화가 컨디션을 찾아가면서 팀도 상승세를 타고 있다. 올시즌 개막 후 흥국생명은 2연패에 빠졌다. 하지만 이후 치른 3경기에서 2승 1패를 기록했다. 특히 5세트 접전에서 2승을 모두 챙겼다. 뒷심이 있다는 증거이며, 중위권 순위 경쟁에서 앞으로 흥국생명을 지켜봐야 할 이유다.
조이뉴스24 /수원=류한준기자 hantaeng@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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