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기자] 울산 현대 김호곤(62) 감독은 23일 수원 삼성과의 K리그 클래식 38라운드를 앞두고 장신 공격수 김신욱을 교체 명단에 넣느냐 마느냐를 머리 아프게 고민했다.
대표팀에 차출됐던 김신욱은 지난 20일 러시아와의 평가전에서 1골을 기록한 뒤 전반이 끝나고 벤치로 물러났다. 15일 스위스전에서 좋은 플레이를 펼치며 원톱 역할을 성공적으로 해낸데다 러시아전 전반서는 골까지 터뜨려 홍명보 감독으로부터 검증이 끝난 것으로 생각됐다. 그런데 알고보니 왼쪽 발목 부상을 당해 더 뛰지 못한 것이었다.
러시아전을 주의깊게 지켜본 김호곤 감독도 처음에는 김신욱의 교체를 그런 뜻으로 생각했다. 김 감독은 "전반전이 끝나고 김신욱을 교체하는 것을 보고 홍 감독이 '그 정도면 됐다'라고 생각해서 뺀 줄 알았다. 그런데 팀에 돌아와서 발목을 보고 정말 깜짝 놀랐다. 복숭아 뼈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부어서 너무나 걱정이 되더라"라고 말했다.
김신욱의 부상 상태를 두고 고심하던 김 감독은 이번 수원 원정길에 김신욱과 대체 요원인 호베르또를 동행시켰다. 출전 엔트리에 들어가는 18명에서 1명을 더 추가했다. 자신이 감독을 하면서 추가 인원을 데리고 원정에 나선 것은 처음이이었다.
누군가가 출전 엔트리에서 빠지게 되면 기분 나쁘게 되는 상황이었지만 우승 경쟁의 막바지에 와 있는 울산으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김 감독은 "어떤 전술로 나서야 할 지 밤새 고민을 했다. 경기 당일 점심을 먹고 난 뒤 호베르또를 불러서 미안하다고 전했다. 원정지까지 와서 선수를 뺀다는 것이 얼마나 기분 나쁜 일인가. 그렇지만 팀 전술이 (김)신욱이를 중심으로 돌아가니 어쩔 수 없다고, 마음 상하지 않게 설명했더니 알아 듣더라"라며 김신욱의 엔트리 포함 결정이 힘겹게 이뤄졌음을 토로했다.
울산 관계자도 "수원전이 정말 큰 고비였는데 (김)신욱이 다쳐서 와서 다들 놀랐다. 감독님도 고민에 밤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라며 결정을 내리기까지 적잖이 마음고생을 했음을 강조했다.
김 감독의 치열한 고민은 결국 수원전 2-1 승리를 제조했다. 승점 73점이 된 울산은 남은 두 경기에서 2무승부만 해도 정규리그 우승이 확정되는 유리한 고지에 올랐다. 스플릿 라운드 들어 8승1무1패로 호성적을 질주해온 울산이다.
선수들과의 밀고 당기기는 김 감독의 주특기다. 수원전을 앞두고 "이 경기는 결승전이나 다름없다. 이겨라"라며 선수들에게 적절한 자극을 가했다. 우승이라는 공통된 목표가 눈앞에 와 있음을 선수들에게 일깨워준 것이다.
올 시즌 내내 김 감독은 수많은 변수에 애를 먹었다. 지난 시즌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정상을 이끌었던 주축 자원들이 대거 빠져나갔다. 곽태휘(알 샤밥)는 중동으로 이적했고 이근호, 이호(이상 상주 상무)는 입대했다. 중원의 핵이었던 에스티벤도 일본으로 갔다. 척추라인이 한 번에 무너져 울산은 초비상이었다. 지난 3일 인천 유나이티드전에서는 왼쪽 풀백 김영삼이 부상으로 잔여 경기를 뛸 수 없는 등 이탈자도 발생했다.
그렇지만 김 감독은 늘 냉철했다. 김성환, 한상운, 마스다로 팀을 떠난 이들의 공백을 메웠고 중앙 수비수 강민수를 풀백으로 돌리는 대안을 마련했다. 절묘하게도 김 감독의 모든 선택은 퍼즐처럼 맞춰졌고 울산은 고비고비를 넘어 정상 문턱까지 다다랐다.
이제 울산 앞에 남은 것은 남은 두 경기를 잘 마무리해 우승이라는 정점에 오르는 것이다. K리그 최고령 감독의 지략이 진한 향기를 내뿜고 있는 시즌이다.
조이뉴스24 수원=이성필기자 elephant1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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