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기자] '피겨 여왕' 김연아(24)의 스케이트 인생을 대표하는 것 중 하나는 바로 변신의 달인이라는 점이다.
김연아는 2006년 시니어 무대에 데뷔한 이후 다양한 모습을 보여줬다. 여린 소녀에서 어느새 성숙한 여인으로 변해 있었고 섹시함까지 갖춰 '팔색조'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다양한 연기를 보여줬다.
2006~2007 시즌 김연아의 첫 쇼트프로그램과 프리스케이팅은 '록산느의 탱고'와 '종달새의 비상'이었다. 두 프로그램은 상반된 이미지였다는 점에서 놀라움 그 자체였다. 영화 물랑루즈의 삽입곡이기도 한 '록산느의 탱고'에서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줬던 김연아는 '종달새의 비상'에서는 하늘색 의상으로 귀여운 종달새를 마음껏 표현했다.
김연아 특유의 표현력은 서서히 익어갔다. 2007~2008 시즌에는 쇼트 '박쥐 서곡'과 프리 '미스 사이공'을 들고 나왔다. 두 프로그램을 통해 김연아는 '표현력의 대가'라는 극찬을 받기 시작했다. 박쥐 서곡의 귀여움과 미스 사이공의 애절함은 김연아가 아니면 보여줄 수 없는 것들이었다.
자신감을 얻은 김연아는 2008~2009 시즌 본격 변신을 꾀한다. 쇼트 '죽음의 무도'와 프리 '세헤라자데'였다. 죽음의 무도에서는 검은색 의상에 스모키 화장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손짓에는 카리스마가 묻어 나왔다. 붉은색 드레스를 입고 나선 세헤라자데에서는 근엄하면서도 아름다운 왕비로 변신해 팬들을 또 놀라게 했다.
변신의 절정은 2009~2010 시즌이었다. 쇼트 '007 메들리'를 앞세워 본드걸로 등장하더니 프리스케이팅에서는 '피아노 협주곡 바장조'로 또다른 캐릭터를 뽐냈다.
본드걸은 김연아 역대 최고의 캐릭터 중 하나로 꼽혔다. 목을 감싸는 드레스에 검은색 매니큐어로 강인하면서도 섹시한 여전사 이미지를 구축했다. 특히 연기가 끝나면서 총쏘는 동작은 매번 기립박수를 이끌어냈다. 2010 밴쿠버 올림픽 금메달은 절정으로 치달은 김연아에게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2010~2011 시즌에는 그동안 국민의 성원에 보답하는 의미에서 쇼트 '지젤'과 함께 프리 '오마주 투 코리아'를 들고 나왔다. 지젤에서는 비련의 여주인공으로 슬픔을 절제하며 표현했고 오마주 투 코리아에서는 아리랑 등 한국 전통음악을 편곡해 사용했다. 김연아는 수묵화를 연상시키는 의상으로 한국적인 미를 발산했다. 역시 김연아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이후 현역 연장을 두고 고민하며 20개월 정도 공백을 가졌던 김연아는 복귀를 결심하며 2012~2013 시즌 쇼트 '뱀파이어의 키스'와 프리스케이팅 '레미제라블'을 들고 나왔다. 어둡고 우울하지만 뱀파이어에 빠진 주인공으로 변신하더니 레미제라블에서는 프랑스 시민혁명기 민중의 삶을 그대로 살려냈다. 살아있는 표현력으로 또 한 번 '역시 김연아'라는 탄성을 자아냈다.
김연아는 현역 마지막 시즌이 된 이번 2013~2014시즌 쇼트 '어릿광대를 보내주오'와 프리 '아디오스 노니노'를 선보였다. 과거 자신을 사랑했던 남자에게 고백했다 거절당하는 캐릭터를 무난하게 표현하며 소치 올림픽 쇼트 1위의 성과를 냈다.
프리 아디오스 노니노는 아르헨티나 탱고의 거장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작품으로 아버지를 여읜 뒤 만든 곡이어서인지 정열적인 분위기의 탱고와는 조금 다른 무거운 정서가 묻어 나왔다.
시니어 연기 활동을 탱고로 시작해 탱고로 끝내는 절묘한 선택을 한 김연아는 마지막 무대가 된 21일 소치올림픽 프리스케이팅에서 거침없이 점프를 시도하며 마지막 땀을 빙판 위에 쏟았다. 검은색과 보라색이 섞인 드레스는 우아한 연기와 어우러져 기품이 묻어 나왔다. 표정에서는 기쁨은 물론 슬픔, 분노, 즐거움 등 '피겨여왕'으로 살아온 그의 모든 감정들이 섞여 있는 듯했다.
변신의 끝이 모두 마무리 되는 순간, 김연아는 여왕의 왕관을 조용히 내려놓고 캐릭터가 아닌 '인간' 김연아로 돌아왔다. 러시아의 홈텃세로 금메달을 아델리나 소트니코바에게 내주고 은메달에 맞만족해야 했지만 김연아는 김연아다운 현역 마무리를 했다.
조이뉴스24 이성필기자 elephant14@joynews24.com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