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혜림기자] '머지 않아 나오겠지' 했지만 이렇게 돌아올 줄은 몰랐다. '영원한 처녀' 은교는 2년 만에 '몬스터' 속 살인마를 찾아 헤매는 동네 미친 여자가 됐다.
때로 강렬한 변신은 조급한 인상을 준다. 하지만 배우 김고은의 경우는 달랐다. '은교' 이후 2년 간 스크린에서 그를 볼 수 없었다. 타올랐던 관심이 꺼질까 조바심을 내기보다, 저벅 저벅 제 갈 길을 갔다. 눈부신 스포트라이트에 눈 멀지 않았다. 조급했던 건 김고은이 아니라, 그의 컴백을 애타게 기다린 관객들의 마음이었다.
영화 속 김고은이 연기한 복순은 7세 지능을 가진 20대 여인이다. 생각나는대로 말하고, 표정도 감추지 않는다. 복순은 유일한 가족인 동생 은정(김보라 분)을 살인마 태수(이민기 분)에게 잃고 복수를 다짐한다. 태수에 언니를 잃은 소녀 나리(안서현 분)와 합세해 산골 마을에서 서울까지, 먼 여정을 떠난다.
영화의 개봉을 맞아 조이뉴스24가 김고은을 만났다. 지난 2012년 '은교' 개봉 당시 이후 두 번째 만남이었다. 앳된 이목구비와 환한 미소는 그대로였지만, 2년 전보다 한층 더 여유로워진 모습이었다.
"'은교'라는 작품에 출연했을 때 주셨던 기대와 관심을 이어가기 위해 다른 작품을 하는 느낌은 싫었어요. 사사로운 욕심이라고 표현해야 하나? 그런 것이 제게 있었다면 다 사라진 상태에서 다음 작품을 시작하고 싶었죠. 배우라는 직업에 간절함이 있었기 때문에 '은교'를 행복하게 촬영했고, 감사함도 너무 컸어요. 이런 좋은 배우들과 감독이 있는 환경에서 내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것. 그 때 그 마인드를 잃고 싶지 않았죠. 다음 작품을 잘 골라야 한다는 부담감에 작품을 하지 않은 건 절대 아니에요."
그간 김고은은 휴학 중이던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복학했고 연극을 한 편 올렸다. 단편 영화도 촬영했다. 그는 "학교에서 열정적으로 연기를 공부하는 사람들과 함께 작업을 하면 정말 즐겁다"며 "그러고 나니 즐길 준비가 된 것 같더라. 그 시기 봤던 시나리오가 '몬스터'였고 '협녀:칼의 기억'이었다"고 알렸다.
말을 건넬 때마다 김고은 특유의 조근조근한 말씨 사이에 능청스러운 장난기가 묻어났다. 영화가 지닌 에너지가 배우에게 그대로 전해진 모양새였다. 작은 이야기에도 크게 웃음을 터뜨렸고 소소한 장난도 늘었다. 극 중 복순의 말씨가 눈 앞 김고은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섞여나왔다. 마치 조금쯤 성장한 복순을 스크린 밖에서 만나는 기분이었다.
"촬영 전에 복순의 말씨를 굉장히 많이 상상했어요. 그래서인지 어느 순간 그렇게 돼 있더라고요. 전작도 그랬고 '몬스터'도 그랬고 영화를 촬영하기 전의 고민과 상상 때문에 인물화가 돼 있곤 하는데, 주변 사람들은 '이상해졌다'고 말해요. 촬영 기간이 길다 보니 계속 그렇게 지내는 거죠. 그러다보면 측근들도 그 모습에 적응하고요. 그래서 사람들은 '은교'때도 '딱 너다'라고, '몬스터'를 보고도 '딱 너'라고 이야기해줬어요.(웃음)"
애초 '몬스터'는 충무로 흥행 다크호스 이민기의 연기 변신, 반짝이는 신예 김고은의 컴백으로 기대를 모은 바 있다. 극의 후반부, 두 사람의 에너지가 제대로 맞부딪히는 액션 신은 영화의 클라이막스이기도 하다. 김고은은 "이민기 선배가 새로운 연기로 대중 앞에 서는 중요한 작품에 함께 참여하게 돼 행운"이라고 말했다.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이민기 선배가 스릴러 영화에서 또 언제 여배우와 그렇게 살벌하게 연기를 할 수 있겠어요.(웃음) 스릴러 영화에서 만난 게 특별하게 다가왔죠. 마주치는 장면이 많지 않았는데도 호흡이 좋았던 것 같아요. 선배가 많이 배려해주신 덕분이겠죠. 워낙 힘들 수밖에 없는 장면이었는데 의연하게 해주셨어요. 힘든 장면이라기보다 함께 연기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죠."
영화를 보는 또 하나의 재미는 구멍 없는 조연 캐릭터들이다. 김뢰하·김부선·박병은·배성우 등 베테랑 배우들에 아역 안서현까지, 꼬집을 곳 없는 앙상블을 이뤘다. 김고은은 "캐릭터 하나 하나가 기억에 남는다"며 "제가 현장에 없었던 장면들을 영화로 보며 덩달아 기분이 좋았었다"고 돌이켰다.
김고은의 차기작은 박흥식 감독의 무협 영화 '협녀:칼의 기억'이다. 이병헌·전도연이라는 걸출한 두 배우와 호흡을 맞췄다. 현재 촬영을 모두 마친 상태로, 후반 작업을 거쳐 올해 안에 개봉할 예정이다. "정말 사랑하는 배우"라는 선배 전도연과 모녀로 분했다. 촬영 후일담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힘들었는데, 정말 재밌었어요.(웃음) 힘들었던 것이 다 흐릿해질 만큼 즐거웠죠. 선배들이 너무 멋졌고 함께 연기하는 것만으로도 흥분됐으니까요. 설레는 작업이었던 것 같아요. 무술을 연기하고 와이어를 타는 게 힘들긴 했지만 나름대로 해냈을 때 성취감도 있었고요. 전도연 선배는 워낙 잘해주셨어요. 제가 너무나 사랑하는 배우였지만 사람으로서 만난 적이 없었는데 뵙고 나서는 존경심이 더 커졌죠. 프로페셔널한데다 현장을 유쾌하게 이끌어주시는 모습을 보며 '나도 나중에 저런 선배가 돼야지' 생각했어요."
이제껏 함께 연기해 온 선배 배우들을 언급하며 김고은은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손 하트를 그렸다. 그는 "내가 후배일 때 이렇게 운 좋게, 행복하게 작업했는데 선배로서 좋은 사람이 되지 않는다면 벌을 받아야 한다"고 웃으며 말했다.
표정은 밝았지만 농담으로 들리진 않았다. 이런 마음가짐이라면 누구도 그에게 벌, 그 비슷한 것도 내릴 수 없겠다. 첫 만남 때처럼, 김고은과 만남 뒤엔 일렁이는 기대감이 남았다. 2년 전 기대했던 것이 '혜성' 김고은의 차기작이었다면 이제 10년 뒤, 20년 뒤 그의 모습까지 내다보고 싶어졌다.
'몬스터'는 영화 '오싹한 연애'를 연출하고 '두 얼굴의 여친' '시실리 2km' 등의 각본을 담당한 황인호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지난 13일 개봉해 상영 중이다.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사진 정소희기자 ss082@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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