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혜림기자] 첫 방송부터 탄탄했다. 드라마 1화가 캐릭터를 이토록 설득력있게 그려낼 수 있다니, 감탄이 아깝지 않다.
지난 17일 JTBC 새 월화드라마 '밀회'가 베일을 벗었다. 20세 어린 남성에게 위험한 설렘을 느끼는 여인의 이야기다. 첫 방송은 세련된 커리어우먼으로 살아 온 오혜원(김희애 분)과 재능을 모르고 평범하게 살아온 천재 피아니스트 이선재(유아인 분)가 처음으로 대면하며 마무리됐다.
1화는 오혜원의 일상을 담담히 비추며 시작했다. 그의 일터, 그가 지닌 사회적 지위, 주변 인물들을 관조하듯 비췄다. 겉으론 마냥 우아하고 평온해 보이지만, 매일을 전쟁터에서 살아남듯 고군분투해온 혜원의 감정선을 차분히 따라갔다. 어떤 상황에서도 프로페셔널한 표정을 지켜 온 그의 마음에 어떤 균열이 일게 될지, 금세 몰입감을 안겼다. 군더더기 없는 전개였다.
서한예술재단 기획실장인 오혜원은 재단 이사장 한성숙(심혜진 분)은 물론, 학창시절 친구이자 재단 산하 아트센터 대표인 서영우(김혜은 분)까지 보필한다. 한성숙은 서한그룹 회장 서필원(김용건 분)의 딸로, 영우의 새어머니이기도 하다. 두 사람의 신경전에 혜원까지 불똥을 맞기 일쑤다.
영우는 학창 시절부터 혜원을 시녀 다루듯 해왔다. 이날 영우의 불륜 현장을 목격하고 도덕적인 삶을 살라며 조언하던 혜원은 거세게 날아 온 따귀까지 얹어맞았다. 그 뿐이랴. 머리채를 잡고 싸우는 성숙과 영우를 뜯어 말리는 일도, 두 사람의 불화를 서 회장 모르게 감추는 일도 모두 '의전과 처세의 달인' 오혜원의 몫이었다.
서한음대 피아노과 교수인 남편 강준형(박혁권 분)은 똑 부러지는 아내 혜원의 덕을 볼 순간만 기다린다. 동료 교수 조인서(박종훈 분)의 유망주 제자 지민우(신지호 분)를 보며 샘을 내고, 비슷한 아이라도 찾으려 클래식 사이트 동영상 게시판을 뒤진다.
그런 준형을 가리켜 '허당'이라고 깎아내린 서영우는 혜원에게 "네가 사는 집도 우리 것, 차도 우리 것, 가정부도 우리 것"이라며 그에게 과연 '진짜'가 있는지 캐묻는다. 틀린 말도 아니다. 게다가 근사해보이는 그 모든 것들이 오혜원에겐 그리 의미있어 보이지 않는다.
오혜원의 결핍은 더 큰 사건을 위한 일종의 복선이었다. 신분을 감추고 우연히 선재와 채팅을 하던 혜원이 "난 본명도 가짜"라고 자조하는 모습은 그가 처음으로 속내를 드러낸 장면이다. 진짜 없이 살아 온 오혜원이 처음으로 진짜 감정을 껴안는다. 하필 그게 20세 어린, 남편의 제자가 될 이선재다.
선재는 어린 시절 이사간 집에 있던 낡은 피아노를 만나며 연주에 빠진 가난한 인물이다. 퀵서비스 배달원이고, 자신의 실력을 잘은 모른다. 이제 혜원은 젊고 매력적이고 천재적 재능까지 갖춘 선재에게 설렘을 느끼게 된다. 쉽게 떠오른 마음은 아닐 것이다. 혜원이 얼마나 많은 감정을 억누르며 살아왔는지, 첫 화가 이미 모든 것을 설명했다. 변명은 충분하다.
하지만 비리와 스캔들, 추문이 난무하는 극 중 예술계에선 두 사람의 인연이 녹록지 않다. 불륜을 저지른 서영우에게 윤리와 도덕을 훈계하던 오혜원이 하필 이선재와 엮인다. 겉보기에 모두의 신임을 얻는듯 하지만 진정한 제 편은 단 한 명도 없어 보이는 오혜원이 얼마나 잔혹한 추문에 휘말리게 될지, '밀회'는 첫 방송만으로 무수한 궁금증을 낳았다.
속도감 넘치는 전개를 비롯해 빼놓을 수 없는 미덕은 배우들의 활약이다. 김희애는 우아함과 성실함 모두를 지닌 오혜원 역에 적격이었다. 종종 흔들리는 눈빛, 특유의 음성이 캐릭터의 매력을 배가했다. 반항기를 벗고 조용한 청년으로 분한 유아인도 새로운 얼굴을 드러내는 데 성공했다.
머리채를 휘어잡고 욕설도 서슴지 않던 심혜진과 김혜은의 육탄전, 질투와 시샘에 조급해하는 박혁권의 눈빛, 서한음대 학장 민용기 역을 맡아 또 한 번 의뭉스러운 캐릭터로 분한 김창완, 겉으론 화통하게 웃지만 누구도 믿지 않는 재벌 역의 김용건 등 구멍 없는 조연진도 완성도를 높였다.
몰입감을 위해 실제 피아니스트들을 배우로 기용한 제작진의 선택도 빛을 봤다. 피아니스트 신지호와 박종훈은 각각 제자와 교수로 분해 슈베르트의 '환타지아'를 협주했다. 음악 드라마로서 어디 내놔도 뒤처지지 않을 '때깔 좋은' 연주 장면이 첫 화부터 안방을 놀라게 했다.
'밀회'는 애초 JTBC '아내의 자격' 안판석 감독과 정성주 작가, 김희애가 다시 뭉쳐 기대를 높인 바 있다. 안판석 감독은 '밀회'를 통해 전할 메시지를 묻자 "적당히 나이를 먹어 가고 안전하게 살아 온 우리 자신의 자화상"이라고 답한 바 있다. 첫 방송, '밀회'는 벌써 하고 싶은 말의 개요를 모두 풀어놨다. 기대를 배반하지 않은 수작이 첫 발을 뗐다.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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