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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회', 그래서 당신은 박혁권을 연민하는가


김희애·유아인 만남 눈치챈 박혁권, 침묵을 깨다

[권혜림기자] 제자와 아내의 '밀회'를 직감한 남자의 자존심이 처참히 구겨졌다. 그러나 남자가 잃은 것은 아내의 사랑이라기보다 성공의 동반자에 대한 신뢰였다. 비굴함을 무릅쓴 남자는 아내 오혜원의 배신을 말하기에 앞서 재단 기획실장 오혜원의 책무를 외쳤다.

지난 15일 방영된 JTBC 드라마 '밀회' 10화는 또 한 번 오혜원(김희애 분)과 이선재(유아인 분)의 비밀스런 만남을 그렸다. 이선재는 부조니 콩쿨을 대비한 시뮬레이션 겸 예심에 낼 DVD 제작을 위해 실황 분위기에 맞춰 오케스트라와 협연했다. 서한음대 관련 인물들이 객석을 채웠고, 선재는 훌륭히 연주를 마쳤다.

아트센터 대표인 서영우(김혜은 분)를 비롯해 교수들과 재단 직원들이 뒷풀이에 한창일 때, 혜원은 선재와 연주 영상을 함께 봤다. 빈 사무실의 소파에 나란히 앉아 영상에 심취했다. 손을 잡고, 웃고, 애정어린 시선을 교환했다. 그 때 혜원의 남편이자 선재의 담당 교수 강준형(박혁권 분)이 혜원을 찾아나섰다. 사무실엔 영상이 재생 중인 노트북만 덩그란히 남아있었다. 의심은 직감이 됐다.

선재와 혜원은 아트센터 강당 무대의 뒷편, CCTV의 사각지대로 움직였다. 감시의 시선이 미치지 않는 적막한 공간, 남녀는 과감해졌다. 키스를 나누고, 급하게 몸을 눕혔다. 강준형도 강당에 들어섰다. 선재와 혜원의 움직임이 물건을 떨어뜨렸고 준형은 이들의 존재를 눈치챘다. 하지만 침묵했다. 서한그룹의 검찰 조사 문제로 오혜원이 필요하다는 서영우의 문자메시지를 보기 전까지는.

혜원을 부르면 그의 외도를 통째로 인정하는 꼴이 된다. 그토록 탐냈던 제자와 최고의 지원군을 동시에 잃을 수 있다. 성공에 목마른 그의 불안한 입지는 거대한 굴욕을 한 순간에 뒤집어쓰게 만들었다. 강준형은 목 높여 오혜원을 불렀다. 텅 빈 강당에 소리가 퍼져나갔다. "오혜원! 빨리 한남동 가. 검찰에서 나왔대. 당신 찾는대. 제발 가!"

추문의 싹을 애써 외면해 왔던 강준형이 입을 연 것은 자신과 혜원의 성공에 직결된 그룹의 위기 때문이었다. 강준형이 호명한 것은 아내 오혜원이 아닌 서한예술재단 기획실장 오혜원의 이름이었던 셈이다.

돌이켜보면 오혜원과 강준형의 부부 관계는 '밀회'의 관심사였던 적이 없다. 부부의 침실은 개인의 갈등을 비추는 공간이었다. 이선재와 오혜원의 연탄을 선재의 연습 소리로 오인하는 강준형의 얼굴, 선재를 생각하며 복잡한 마음을 거두지 못한 오혜원의 고뇌가 침대 위 이들의 표정이었다. 쇼윈도 부부라는 콘셉트는 오 실장과 강 교수의 매끄러운 협업으로 그려졌다.

철부지인 남편을 혜원은 어르고 달래 왔다. '더러운 것' 상대하는 일을 전공으로 삼아 온 오혜원을 통해, 강준형은 한성숙(심혜진 분)과 서영우, 서필원(김용건 분) 못지 않은 편의를 누렸을 수 있다.

강준형에게 오혜원은 아내인 동시에 출세의 필요충분조건이었다. 빛나는 처세술과 인재를 알아보는 남다른 눈을 지닌 여인. 사주엔 관이 4개, 그것도 다 벼슬이란다. 잃고 싶을리 없다. 혜원에게 극도로 분노한 강준형이 할 수 있는 일은 사실 관계를 가리는 것이 아닌, 고작 잔을 집어던지는 행동이다.

등장 인물들을 훔쳐 보는듯한 카메라 앵글로 긴장감을 안겨 온 '밀회'는 이날 방송된 10화에서도 관음적 시선을 차용했다. 사무실에서, 주차장에서, 집 안에서, 천천히 벽을 훑고 인물들을 비췄다. 무대 뒤 혜원과 선재의 만남에선 정점에 달했다. 그들을 뒤쫓던 준형의 시각이 자연스레 스며들었다.

얼핏 준형은 혜원에게 가장 배신감을 느낄 법한 사람이다. 하지만 이제껏 폭발한 적은 없었다. 혜원을 향한 일말의 애정이 남아있을 수도, 아내의 외도가 알려져 자신의 평판이 지저분해질까 우려하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강 교수가 침묵했던 이유는 그게 다가 아닐 것이다. 그는 아내에게 너무 많은 역할을 맡겨왔다.

이날 방송에서 오혜원과 이선재의 밀회는 아름답지 않았다. 격정적이었지만 조급했고 초라했다. 불륜을 미화하려면 조심스러움을 그 조건으로 삼아야 한다. 그래야 연민을 끌어낸다. 풍파에 지쳐 서로 마음을 뉘일 수밖에 없던 남녀의 사정을 최대한 염치 있게 그려야 한다.

그러나 '밀회'는 쉽고 뻔한 길을 택하는 대신 파격을 노렸다. 지난 두 화에서 이어 온 감추기 식 애정신의 법칙을 깼다. 감시의 사각지대, 어두컴컴한 무대 뒤에서 욕정에 불을 피웠다. 뭇 시청자들은 거부감을 느꼈을 것이다. '아름답지 않은 이들의 사랑을 보라. 그래서 당신은 강준형을 연민하는가?'라고 묻는 것도 같다. '밀회'가 시청자를 매혹하는 방식이다.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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