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영기자] 배우 지창욱에 대한 평가는 '기황후' 전과 후가 180도 달라졌을 듯 하다. '기황후'에 캐스팅 됐을 때만 해도 반신반의 했지만,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며 전성기를 맞았다. 이제는 믿고 볼 수 있는 20대 대표 남자배우로 거듭났다.
최근 종영한 MBC 월화드라마 '기황후'의 지창욱은 지난 9개월 간 원나라의 황태제 타환으로 살며 시청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지창욱은 "타환을 정리하고 있는 중이다. 후유증은 없는데 조금 허전하긴 하다"며 "방송할 때는 사람들을 잘 만나지 못해 인기를 실감 못 했는데 요즘 만나는 사람들마다 '드라마 잘 봤다'고 한다"고 말했다.
드라마 방영 내내 뜨거운 호평을 받았던 그는 "주변 선배들이 많이 도와줘서 연기 할 때 편하게 했던 것 같다"며 "호평들이 기분은 좋지만 아직은 많이 부끄럽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부담으로 돌아왔다"고 쑥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는 "'기황후' 시작할 때는 타환이라는 인물을 잘 만들어보는 것이 목표였다. 어느 정도 성취를 했지만 아쉬운 점도 많다. 그래도 많이 즐겁게 작업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사실 지창욱은 '기황후'에 가장 늦게 합류한 배우다. '기황후' 역에 많은 남자 배우들이 거론됐고, 다른 배우가 낙점되기도 했다. 이른바 대타였던 그가 대박을 낸 셈이지만, 첫 촬영 당시만 해도 부담감이 컸다.
"배우들이 타환이 나오는 장면만 빼놓고 촬영을 진행하고 있었고, 저는 의상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가 바로 합류했죠. 걱정이 된다기보다 '감독님과 작가님이 나를 믿을 수 있을까' 생각했어요. 최선을 다해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죠. 방송이 나가고 난 뒤 작가님이 전화가 와서 '걱정 많이 했는데 잘 표현을 해줘서 고맙다'고 했어요. 그 때부터 더 의견 표출도 하고, 많은 걸 보여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타환은 기황후만큼이나 변신의 폭이 넓은 캐릭터였다. 황태제의 신분임에도 황위를 동생에게 빼앗기고 고려로 유배를 떠나는 등 힘든 유년시절을 보냈고, 황제가 되고서도 자신을 위협하던 인물에 맞서 싸워야 했다.
"아마 '기황후'에서 변화가 제일 많은 캐릭터가 아닐까 싶어요. 그 흐름이나 리듬을 놓치지 않고 어떻게 연결을 시키느냐, 고민스러웠죠. 한 회 안에 웃다가 두려워하다가 모든 감정기복이 다 들어가 있잖아요. 대본을 굉장히 많이 보고, 어떻게 계산해서 연기를 해야할지 생각했죠."
지창욱은 극 초반 유약한 황태제의 모습을 사랑스럽게 승화 시켰고, 능청스러운 연기는 매회 뜨거운 호평을 이끌어냈다. 승냥(하지원 분)을 향한 순애보는 시청자들을 사로잡았으며, 황제가 되면서 그 존재감은 날로 빛을 발했다. 위엄과 카리스마 넘치는 황제로, 사랑하는 여인에 대한 애틋하고도 처절한 사랑을 하는 남자로 브라운관을 강렬하게 사로잡았다. 지창욱은 분노와 괴로움, 애틋함, 광기를 오기는 다채로운 감정 연기로 시청자들을 매료시켰다.
"흔히 왕이라면 카리스마 있고 위엄있는 모습을 떠올리잖아요. 저는 황제나 왕으로서의 타환보다 인물 타환을 많이 생각했어요. 앉을 때 털석 주저앉기도 하고 편하게 행동하기도 하고 골타와 있는 장면에서는 어리광도 부리고. '왕도 사람인데 실생활에서는 그러지 않았을까' 그런 상상을 많이 했어요. 고증이라고는 하나 추측일 뿐이지, 실제로 못 봤기 때문에 가능한 것 같아요. 저는 사극이라는 장르가 판타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상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극 후반부 광기 어린 타환을 연기하며 지창욱의 연기는 '물 올랐다'는 평가를 들었다. 타환에 대한 진심 어린 접근이 있었기에 가능한 연기였다.
"흔히 타환을 '미쳤다'고 하는데 두루뭉실이 아닌, 명확하게 표현하고 싶었어요. 살인마 혹은 사이코패스라고 볼 수도 있지만 밑도 끝도 없는 인물이 아니라 미친 와중에도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그런 것을 내 스스로 알고 가야하지 않을까 싶었죠."
하지원과의 멜로 연기를 빼놓을 수도 없다. 타환은 기승냥만을 지고지순하게 바라보는 외로운 캐릭터. 마지막회에서는 기승냥의 품 안에서 '사랑한다'는 고백을 들으며 죽는, 해피엔딩 아닌 해피엔딩을 맞았다.
"타환은 많이 외로웠고 참 많이 울었죠. '내가 왕이 되었건만 외로운 이유가 무엇이냐'는 대사가 이해가 갔어요. 서서히 나도 모르게 모든 사람을 배척하는 장면에서 고독해지는 왕의 느낌을 받았어요. 안쓰럽기도 하고."
"마지막회 51부 대본을 받고 난 후 마음이 그랬어요. 제가 생각하는 타환은 승냥만 바라보고 승냥만 바라보는 사람이었는데, '타환이를 사랑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그 끈을 놓고 세상을 떠나는 것이 짠했어요. 마음이 많이 아팠죠."
지창욱은 타환과 같은 순애보적인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좋아하는 여자가 있으면 다른 것은 안 보이지만 사실 드라마에 나오는 사랑은 쉽지 않다. 타환이처럼 죽을 때까지 피드백 없는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싶다. 드라마이기 때문에 판타지가 있는 것 같다"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기황후'라는 긴 드라마를 성공리에 마쳤고, '대세 20대 남자배우'라는 호평도 얻었지만 지창욱은 들뜨지 않고 차분했다. 주변의 평가에는 쉽게 휘둘리지 않는 성격이라고.
"저는 댓글도 안 봐요. 실수로 클릭하게 되면 판도라의 상자처럼 헤어나올 수 없더라고요(웃음). 안 보려고 노력하는 편이예요. 호평도 쑥스럽죠. 공연에서 커튼콜 할 때 '박수소리에 속지말라'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어요. 칭찬은 감사하지만 거기에 속으면 헤어나올 수 있을까 싶어서 휘둘리지 않으려고 해요. 이 상황에 주저앉고, 편한 것만 찾게 될까봐요."
'기황후'를 마친 지창욱은 여전히 바쁘다. 지난 주말 일본 팬미팅을 소화했고, 설경구와 함께 출연하는 강우석 감독의 영화 '두포졸' 촬영을 앞두고 있다. "촬영이 너무 재미있을 것 같다. 설경구 선배님과의 케미도 기대가 된다"고 두 눈을 반짝였다.
조이뉴스24 이미영기자 mycuzmy@joynews24.com 사진 조성우기자 xconfind@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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