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기자] "대한축구협회가 이렇게 사람을 아끼는 조직인지 몰랐다."
월드컵에서 실패한 홍명보 축구대표팀 감독의 재신임을 두고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는 다양한 댓글이 오가고 있다. 그 중에서도 재치있는 댓글을 보자면 '책임을 지겠다는 사람은 없네. 그럼 월드컵은 누가 나간 건가'라든가, '요즘은 재신임이 유행인가 봅니다'라며 비꼬는 흐름이 주류다.
물론 인터넷상의 반응이 여론을 완벽하게 대변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길가던 사람에게 이번 월드컵에서 대표팀이 거둔 성적에 대해 물어보면 긍정적인 답변은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도 눈 감고, 귀 막고, 입 닫았다는 표현이 딱 맞을 정도로 축구협회의 지금 행보는 일방통행이다.
시간을 거슬러 지난해 1월 말, 정몽규 회장은 취임 후 회장 경선을 벌였던 각 캠프의 목소리를 듣는 시늉을 했다. 가장 강력한 경쟁자 중 한 명이었던 허승표 피플웍스 회장 선거캠프의 사령관이었던 이용수 세종대 교수를 미래전력기획단장으로 끌어들이는 등 혁신적인 움직임을 보여줬다.
그러나 그 와중에서도 내칠 사람은 내쳤다. 대표적인 예가 김주성 전 사무총장을 들 수 있다. 김 전 총장은 국제축구연맹(FIFA) 마스터코스 행정가 교육을 이수하는 등 집행부와 상관없이 협회가 전략적으로 키우고 있던 인재였다.
그런데 정 회장 취임 후 김 전 총장은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다. 그에게 유일하게 붙어 있는 직함이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사무총장직이었다. 이마저도 지난해 7월 대회를 치르면서 사실상 힘이 없어졌다.
김 전 총장이 조용히 뒤로 사라진 데는 전임 집행부 인물이라는 이유가 컸다. 임기가 만료되면서 협회를 떠난 측면도 있지만 전임 집행부의 그림자를 지우겠다는 점이 크게 고려됐다. 김 전 총장이 물러난 뒤 후임자를 뽑지 않고 있다가 전무이사의 권한을 강화해 안기헌 전 수원 삼성 단장을 선임한 것이 이를 증명했다.
심판계에서 국제적인 인맥을 자랑했던 권종철 전 축구협회 심판위원장도 비슷한 사례다. 권 전 위원장은 국제축구연맹(FIFA) 심판 감독관, 아시아축구연맹(AFC) 심판 강사 등을 역임 중이다. 그런데 현 정몽규 회장 체제에서는 야인이다. 조중연 전 회장 사람이었다는 이유로 정 회장 집행부에 부담을 주지 않겠다며 그만두는 것을 아무도 잡지 않았다.
권 전 위원장은 한국에서 A매치를 치르기 위해 국제심판을 초청하면 심판진이 축구협회에 들러 반드시 인사를 하고 갈 정도로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었다. 국내 심판들의 국제심판 양성에도 열을 올리는 등 한우물만 팠다.
공교롭게도 권 전 위원장이 물러난 뒤 축구협회가 임명했던 심판위원장은 사적인 문제로 옷을 벗는 등 홍역을 치렀다. 축구계에서는 부적격자가 심판위원장이 된 뒤 문제를 일으켰다는 말이 많았다. 결국, 정해성 위원장에게 심판위원장을 맡기는 등 고육지책으로 버텨야 했다.
국제적인 인맥을 갖춘 두 사람이 일선에서 물러난 뒤 한국 축구의 국제 외교는 고립 그 자체였다. 정 회장 원톱으로 뛰었지만 한계는 명확했다. 오죽하면 축구협회 노조에서 전임 집행부와 현 집행부 사이의 업무 인수 인계가 잘 되지 않아 힘들다고 하는 말이 나왔을까.
굳이 이 두 명 뿐만 아니라 실무진 중에도 유능한 인물들이 축구협회의 불통을 견디지 못하고 떠나는 경우도 많았다. 능력자를 한직으로 내치는 경우도 있었다.
사람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던 현 축구협회 집행부가 홍명보 감독 사태에는 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마치 위기의 한국 축구를 구해줄 인재는 홍 감독뿐이라고 여기는 것처럼 보인다. 홍 감독의 실패를 교훈으로 삼겠다며 거센 경질 여론을 적극 방어하고 나서 유임을 결정했다. 참 묘한 일이다.
조이뉴스24 이성필기자 elephant14@joynews24.com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