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혜림기자] 매력만점 패널들의 활약으로 연일 화제를 뿌렸던 JTBC '비정상회담'이 궤도를 이탈했다. '행복을 갈구하는 이 시대 청춘들에게 보다 명확하고 색깔있는 미래의 답을 제시한다'던 기획 의도가 생경해졌다. '비정상'이라는 표현의 부정적 쓰임을 전복해 신선한 감흥을 안겼던 이 프로그램이 스스로 내세웠던 방향점을 잃은듯 보인다.
지난 11일 방영된 '비정상회담' 6회는 개그맨 조세호를 게스트로 초대해 그의 고민을 안건으로 상정했다. '대인관계가 점점 어려워지는 나, 정상인가? VS 비정상인가?'를 주제로 한 이날 토론에서는 다수의 한국 직장인들이 겪는 고충에 대해서도 각국 비정상들의 주장이 부딪쳤다.
터키의 에네스와 이탈리아의 알베르토, 독일의 다니엘은 한국에서 기업 문화를 직접 체감한 만큼 경험에 바탕해 생각을 밝혔다. 이들은 한국 직장인들 특유의 회식 문화와 예고되지 않은 야근 등 때로 개인의 희생이 뒤따르는 한국 조직 문화의 긍정적인 이면을 강조했다. "돈보다 사람을 버는 것이 중요하다"는 에네스의 발언, "(과거와는 생각이 바뀌어) 나라를 위해 일하는 것이라 생각한다"는 다니엘의 말 등이 주목받았다.
한국과 비교적 가까운 문화권인 중국의 장위안은 '한강의 기적'을 언급하며 한국 기업 문화의 가치를 인정하는 발언을 했다. 일본의 타쿠야 역시 한국과 비슷한 자국 회식 문화를 언급했다.
그러나 프랑스의 로빈과 벨기에의 줄리안은 때로 부하 직원들에 사적인 심부름을 시키기도 한다는 한국 상사의 사례, 원치 않는 회식에도 참석해야 마땅하다는 타국 패널들의 주장에 당혹스런 기색을 표했다. 로빈은 "(회식 자리에 꼭 참석해야 한다는 생각은) 문화의 차이다. (프랑스 상사는 부하 직원의) 연락처도 모른다"고 강조했다.
줄리안은 일부 한국 기업의 유니폼 문화와 가족주의적 기업 문화를 정면으로 꼬집었다. "사업을 하고 있는 형의 경우 주말도 없이 일하지만, 사장과 직원은 다르다"고 일갈했다. 영민하게 논지를 잡아가던 에네스와 팽팽히 맞서며 두 패널 특유의 불꽃 튀는 논쟁이 오갔다.
문제는 중심을 잃은 MC들과 이에 편승한듯 보이는 편집이었다. "한국의 발전은 오로지 사람들의 힘이었다"는 장위안의 발언 직후, 웃음을 머금고 그를 바라보는 유세윤의 얼굴에 '흐뭇'이라는 자막이 덧씌워졌다.
아무리 예능 프로그램이라지만 정상회담의 포맷을 취한 이 프로그램에서 유세윤의 역할은 사무총장이다. 토론이 과열되면 테마곡 '손에 손 잡고'를 부르자고 권해야 할 자리다. 하지만 두 글자의 자막이 일순간 균형을 깼다. 맥락 상 장위안의 주장은 한국의 기업 문화와 그에 복무한 사람들이 경제 발전을 이뤘다는 이야기였다. 치열하게 논쟁하던 패널들은 아랑곳없이 한 컷의 편집으로 논쟁의 정답을 정해버린 꼴과 같았다. 김이 빠질만했다.
'비정상회담'의 의장으로 자리를 지킨 성시경은 유럽 선진 국가들과 비교해 뒤늦게 경제 발전을 이룬 한국의 역사적 특수성을 언급했다. 여유있게 자기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유럽과는 기업과 노동의 문화가 다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였다. 이 역시 맥락 상 산업 발전의 역군이었던 과거 청년 세대에 대한 존중보다는 여전히 잔존하는 한국식 기업 문화에 대한 변론에 가까워보였다. 자본과 노동 사이 태생적 다름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밝혔던 줄리안의 발언은 성시경의 이같은 말을 반박하며 나왔다.
MC들은 역할을 간과한듯 편향된 중재, 중재 아닌 중재를 이어갔다. 한국 문화를 체화하지 않은 비정상들을 가르치려는듯한 태도도 몇 차례 관찰됐다. 사무총장 혹은 의장의 역할을 부여받은 MC들에게 기대할만한 역량은 아니었다. 이방인의 현지인화에 초점을 맞추곤 했던 비슷한 포맷의 프로그램 KBS 2TV '미녀들의 수다'가 종종 범했던 오류를 답습하는듯 보였다.
그간 '비정상회담' 3개 회 에피소드의 주제가 성과 관련됐다는 사실(2회 주제:결혼 전 동거를 하는 청년! 정상인가? VS 비정상인가?, 4회 주제:남자를 모르는 여자, 정상인가? VS 비정상인가?, 5회 주제:성교육을 필수과목으로 주장하는 나, 정상인가? VS 비정상인가?)을 떠올릴 때, 6회의 주제는 보다 넓은 방향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씨앗이었다.
대인 관계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해 한국의 회식 문화로, 절친한 친구에 대한 에네스의 가슴 찡한 사연으로까지 그 외연이 확장됐다. 일본의 타쿠야와 호주의 다니엘, 프랑스의 로빈 등이 타 비정상들에 비해 적은 분량 등장했지만 이는 비단 6회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재미를 좇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분량의 절대적 균등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하지만 MC들의 역할과 제작진의 편집 방향은 다른 문제다. 방영 이래 패널들은 각자 개성있는 캐릭터를 구축하며 인기몰이를 시작했다. 매회 논리를 잃지 않고 보수적 주장을 이어 온 에네스, '벨기에 전현무'라는 별명처럼 거침없는 언변을 자랑한 줄리안, '알차장'답게 한국 문화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보인 알베르토, 해맑은 허풍쟁이 샘 오취리, 풍부한 지식을 지닌 타일러 등 각국 11인 비정상들이 체감 인기 뿐 아니라 높은 시청률도 이끌었다.
토론은 때로 한국 거주 기간 동안 이 나라의 가치를 체화한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 간의 논쟁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획일적인 토론 구도는 아니었다. 한국의 문화를 이해하면서도 자국에서 학습한 문화와 상식을 보다 옳은 정치적 가치로 바라본 경우 역시 심심치않았다. 혼전 동거를 보는 시선, 자녀의 독립 시기에 대한 토론이 그 예였다. '비정상회담'의 재미는 한국 대 다국이 아닌 다국 대 다국의 가치 논쟁에서 생산됐다.
'기성세대의 멘탈을 흔드는 비정상적이고 재기발랄한 세계의 젊은 시선'을 주목하겠다던 '비정상회담'이다. '비정상'을 향한 편견을 전복하려면 '비정상회담'에 결코 정상은 없어야 한다. 그러나 6화에서 한국의 기업 문화는 보이지 않는 주체에 의해 정상으로 상정됐다. 이날 방송이 위험했던 이유다.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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