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기자] A대표팀이 소집된 뒤 첫 훈련을 가진 2일 파주 축구국가대표팀트레이닝센터(파주 NFC)에는 어색한 기운이 감돌았다. 감독이 공석이다보니 신태용 코치를 중심으로 박건하 코치와 김봉수 골키퍼 코치가 각자 역할을 나눴지만 어수선함을 피하기는 어려웠다.
신 코치와 현역 시절 함께 뛰었던 전경준 유소년 전임지도자가 지원을 나와 피지컬 훈련을 돕는 등 대표팀은 나름대로의 틀을 만드는데 주력했지만 초반 흐트러짐이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신 코치가 차기 외국인 감독을 보좌하는 반면 박건하, 김봉수 코치는 홍명보 전 감독이 사퇴한 뒤에도 계약 기간을 지키기 위해 현 대표팀과 함께 하고 있기 때문에 부조화스러운 것은 당연했다.
훈련 시작 전 선수들에게 정신 무장을 강조하던 신 코치는 "파이팅 한 번 하고 시작할까"라며 목소리를 높였지만 다들 어색했는지 별다른 행동 없이 훈련에 들어갈 정도로 다소 경직된 분위기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대표팀 분위기는 몰라보게 좋아졌다. 신 코치가 선수들에게 침묵을 깨고 떠들라고 강력하게 주문하면서부터다. 대화를 좋아하는 신 코치 특유의 넉살이 성남 일화 감독 시절보다는 다소 무게감 있게 발휘된 것이다. 말투만 대표팀에 맞게 맞춰졌을 뿐이다.
성남 시절 선수들과 편하게 소통하는 '형님 리더십'으로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등 유연한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줬던 신 코치는 베네수엘라, 우루과이와의 2연전 컨셉트를 '희생'으로 잡았다. 모두가 희생해야 브라질월드컵에서의 부진으로 실망한 국민들의 마음을 돌릴 수 있다는 것이다. 희생의 시점을 자신으로 설정하고 특별한 인연이 없는 일부 대표 선수들과의 심리적 거리감 줄이기에 나섰다.
신 코치는 "서로의 이름을 부르면서 움직여"라며 선수들간 친밀도를 높이기 위해 애썼다. 훈련 막판에는 측면 크로스를 발리슈팅해 누가 더 많이 골로 연결하는지를 놓고 음료수 내기를 시도했다. 경기를 준비하고 조직력을 다지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조금이라도 줄여보자는 의도였다. 성남 시절에도 자주 시도해 효과를 봤던 훈련 프로그램이었다.
이런 의도를 가장 빨리 알아챈 이들은 이동국(전북 현대)과 차두리(FC서울) 두 최고참이었다. 이들은 대표팀 합류시 권위보다는 먼저 선수들에게 다가서며 나이 차이라는 거대한 벽을 깨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훈련장에서 이들의 희생 효과는 곧바로 드러났다. 후배들이 웃고 떠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동국은 패싱게임에서 후배들이 실패하자 "뭐야~"라며 장난스럽게 소리쳤다. 최선참이 먼저 말을 꺼내니 후배들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동국아!"라는 외침이 나왔다. 자신에게 왜 볼을 안주느냐는 애교스러운 반응이었다.
긍정과 유쾌함의 대명사인 차두리는 손흥민(레버쿠젠), 기성용(스완지시티)과 현란한 몸싸움을 벌이는 등 그야말로 막 굴렀다. 볼을 놓친 뒤에는 그라운드에 나뒹구며 한탄하는 행동을 취하기도 했다. 선배라는 위엄을 앞세우기보다는 스스로 무너지며 모두의 웃음폭탄을 유도해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옆집 형처럼 움직이니 누구 하나 벽을 느끼지 못하고 신나게 뛰었다.
이동국은 "과거처럼 나이를 앞세우는 시대는 지났다. 먼저 말을 걸면서 후배들을 편안하게 해주겠다"라며 단시간에 화합을 이끌어내기 위해 애쓰겠다고 선언했다. 신 코치는 "이동국과 차두리가 솔선수범해줘야 한다"라고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권위를 내세우지 않은 형님들 효과가 사령탑 공석이라는 대표팀의 난감한 현재 상황을 적절하게 메우고 있는 셈이다.
조이뉴스24 /이성필기자 elephant1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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