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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성과주의'에서 벗어나고 있는 한국 스포츠


금메달 올인 문화에서 은, 동메달도 인정 받는 문화 확산

[이성필기자] 패배에 좌절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선언하는 문화가 한국 스포츠계에 퍼지고 있다.

한국 스포츠는 지독한 성과주의에 사로잡혀 있었다. 금메달이 아니면 좀처럼 웃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은, 동메달을 목에 걸어도 기뻐하는 다른 많은 나라 선수들과 극명하게 비교되곤 했다.

금메달 기대주로 꼽히다 은이나 동메달을 따고 나면 "죄송하다", "다 내 탓이다"라며 고개를 숙이는 장면이 일반화되어 있었다. 그런데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내며 자책하는 선수들의 수명은 대개 오래가지 못했다. 실패의 트라우마가 드리워지면서 다음 도전을 저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는 금메달을 획득하지 못해도 다음을 기약하며 새로운 도전을 선언하는 문화가 꽃피고 있다. 팬들도 노력하는 모습에 박수를 보내고 도전 정신에 따뜻한 격려를 보낸다.

한 번 실패가 전부는 아니다. 올림픽도 있고 다음 아시안게임도 있고 언제든지 만회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자신의 실력을 인정하며 기량 발전의 계기로 삼으려는 선수들도 많아졌다.

대표적인 이가 '1초의 눈물'로 잘 알려진 여자 펜싱의 신아람(28, 계룡시청)이다. 신아람은 2012 런던올림픽에서 브리타 하이데만(독일)과의 4강전에서 심판의 이해할 수 없는 판정으로 결승 진출이 좌절됐다. 결국 3-4위전에서도 져 노메달로 올림픽을 마친 불운의 아이콘이었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도 금메달은 그녀를 빗겨갔다. 펜싱 에페 개인, 단체전 모두 은메달을 획득했다.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금메달과는 인연을 맺지 못하고 말았다.

하지만, 신아람은 2016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루 올림픽을 이야기했다. 그는 "다음 아시안게임에서는 33살이라 출전이 어려울 것이다"라며 자신을 냉정하게 평가한 뒤 "(2년 뒤) 올림픽 금메달을 위해 다시 준비하겠다"라며 새로운 도전을 이야기했다.

갑상선암을 극복하며 감동을 선사한 사격의 정미라(27, 화성시청)도 마찬가지, 지난 24일 여자 50m 소총 복사 단체전 금메달을 획득한 뒤 26일 50m 소총 3자세에서 금메달을 목전에 두고 마지막 한 발이 삐끗하며 은메달에 그쳤다.

그렇지만 정미라는 좌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부족했다. 브라질(2016 리우 올림픽)에 한 번 더 도전하라는 뜻인 것 같다"라며 올림픽에 대한 동기부여를 스스로 했다. 한 번의 좌절로 흔들리기보다는 새로운 목표를 위해 자신을 바로잡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이번 대회 내내 가장 성과에 대해 큰 압박을 받았던 '마린보이' 박태환(25, 인천시청)은 시종일관 웃으며 라이벌 쑨양(중국)과의 겨루기를 즐겼다. 홈팬들의 열광적인 응원에도 불구하고 금메달 없이 은메달 1개, 동메달 5개를 얻었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얼굴을 찡그리지 않았다.

이번 대회에서 메달 6개를 보태 아시안게임 통산 20개의 최다 메달 기록을 세운 박태환은 "기분이 좋다. 1천500m에서 메달을 땄다면 더 좋았겠지만 미흡했던 경기라 아쉽다. 값진 성적으로 이름을 남겼다. 만약 (아시안게임을) 또 나가게 된다면 메달을 더 딸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며 끊임없는 도전을 선언했다. 비록 기대했던 금메달은 하나도 못 땄지만 열심히 노력한 데 따른 성과면 충분하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여전히 목표 메달 수와 순위에 집착하는 이들에게 조용히 던치는 충고나 다름없어 보인다.

팬들의 성숙한 응원도 선수들의 부담을 줄여주고 있다. 은, 동메달이 나오거나 아쉽게 탈락을 해도 비난하지 않는다. 이전에 큰 성과를 냈던 선수라도 바로 눈 앞의 성과를 그르치면 원색적인 비난이 쏟아지곤 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유연하게 활용하는 선수들이 늘어나면서 더 부담을 받을 수 있는 환경에 노출됐지만 분위기는 많이 달라졌다. 팬들은 최대한 격려하며 패자에게도 새로운 다짐을 할 수 있는 여유를 만들어주고 있다. 비정상이었던 한국 스포츠가 서서히 정상으로 돌아가고 있는 느낌이다.

조이뉴스24 인천=이성필기자 elephant1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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