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근기자] 사람을 잃었고 사랑을 얻었다. 그리고 지워지지 않을 것 같았던 '상처'를 겨우 '배설'해냈다. 이제야 몸과 마음이 좀 가볍다.
MC스나이퍼는 지난 2년간 늪에서 살았다. 허우적댈수록 더 깊이 빠져들 듯, 이겨내려 할수록 상처는 더 곪았다. 최근 발표한 미니 앨범 '비카이트1'(B-Kite 1)은 그를 상처의 늪에서 꺼내준 동아줄이다. 그 대가로 "뼈만 남기고 살은 다 도려냈다". 대신 그 뼈대에 다시 가지를 치고 살 찌울 마음이 생겼다.
'비카이트1'에는 늪에 빠져있던 MC스나이퍼의 삶이 녹아 있다. '나는 지금 만신창이 병실에만 누워 있어. 밤부터 아침까지 이런 가사만 적고 있어'('5번 트랙 '린포체(Rinpoche)' 中)이라는 가사처럼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썼고, 상처와 희망을 토해냈다.
◆"관 짜놨으니 자러 가자"
MC스나이퍼는 현재 아웃사이더와 소송 중이다. 스나이퍼 사운드 소속이던 아웃사이더는 지난해 7월경 전속계약 해지 소송을 제기했고, MC스나이퍼 측은 활동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다. 2번 트랙 '자러가자'(Feat. BK)는 그 상처를 떠오르게 한다.
'내 취향은 디스(Diss)보다는 비프(Beef)/관 짜놨으니 자러 가자 재워줄게 불 꺼' 등 분노는 극에 달하고, '넌 못 풀어 이게 진짜 계약해지 답장/읽어보니 쓰긴 잘 썼더라 가사 말고 기사'처럼 신랄한 비판이 더해졌다. '가짜 다 타파. 묻어줄게 땅 파. 환생한 투팍(2pac)의 총소리는 팍팍' 같은 경고도 있다.
"전 만남보다 어떻게 헤어지는지에 더 가치를 두고 살아왔어요. 있겠다고 하면 챙겨주고 나간다고 하면 잡지 않아요. 지금껏 그래왔는데, 이 친구가 찾아와 눈물을 흘렸을 때 손을 잡아줬고 이 친구 목소리 하나 감정 하나까지 잡아내려고 24시간 같이 지냈어요. 사랑한 만큼 상처가 왔고 극복하기가 힘들었어요"
이번 앨범에 수록된 곡들은 모두 그가 늪에 빠져있을 때 써놨다가 쓰레기통에 버려버린 곡들이다. 그걸 아내의 조언을 듣고 다시 끄집어내 다듬어 발표하기로 했다. MC스나이퍼는 "꺼내놓고 나니까 홀가분해졌다"고 했다.
"아내가 큰 힘이 됐어요(2013년 11월 결혼) 이겨내려고 발악을 하다 보니까 더 힘들었는데 '이겨내려고 하지 말고 받아들이라'는 말에 끄집어 내버리니 홀가분하네요. 이젠 지든 이기든 상관없어요. 이 앨범으로 다 해소됐으니까요"
◆"멈출 수 없어 갈래 펼쳐진 꿈의 행진"
앨범 전체에 상처가 묻어나 있지만 '다시 뛰는 맥박'은 '멈출 수 없어 갈래 펼쳐진 꿈의 행진'등의 가사처럼 이겨내고자 하는 '의지'도 담겨 있다. 그 꿈이란 것이 MC스나이퍼가 설립한 레이블 '비카이트'다.
MC스나이퍼는 자신이 설립한 회사 스나이퍼사운드에서 한 발 물러나 레이블 비카이트를 만들었다. "다시 음악을 못 할 줄 알았다"는 MC스나이퍼에게 '비카이트1'은 "생명줄 같은 앨범"이고 레이블 비카이트는 또 다른 시작이다.
"스나이퍼 사운드가 음악인생 1기라면 이번에는 아예 환골탈태에요. 뼈만 남겨놓고 살을 도려냈다고 봐도 될 것 같아요. 기획사는 이미지가 뭔가 키워야 하고 갑이 되는 이미지잖아요. 비카이트는 그냥 그냥 음악으로 어울리는 '놀이'고 대화를 통해 서로 뭔가를 느끼고 얻는 '창의'죠. 제겐 '자가치료' 같은 존재고요"
"살갑게 어울리고 싶지 대표라는 감투는 너무 힘들었다"는 MC스나이퍼는 남자의 큰 무기라고 생각했던 책임감을 다 내려놓고 음악 그 자체를 즐기고 싶어 했다. 앞으로는 좀 더 많은 음악을 들어볼 수 있겠다는 기대감도 들었다.
◆"풀어헤친 상투 끈 난 술에 취한 소리꾼"
MC스나이퍼는 그간 'BK Love', '봄이여 오라'와 같은 서정적인 멜로디와 가사로 음유시인 이라는 칭호를 얻어왔다. 또 마니아들에게는 특유의 직설적이고 말초적인 메타포와 격정적인 라이브로 마초적인 모습으로 각인됐다.
MC스나이퍼가 들려줄 음악도 그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 같다. "사색과 스스로를 돌아보고 마음을 들여다보는 걸 가장 중요시 하는" 성격의 MC스나이퍼는 앞으로도 '뼈만 남긴 채 거죽 다 도려내 뼈를 판 환골탈태 난 노래하는 소리개/풀어헤친 상투 끈 난 술에 취한 소리꾼'(1번 트랙 '작두' 中)이다.
"뮤지션과 팬의 수준은 동일하다고 생각해요. 뮤지션이 가벼운 주제를 노래하면 그러고 싶은 팬들이 생기고, 성찰하는 뮤지션은 그런 팬들이 생기고..전 인생을 깊이 있게 들여다 보는 사람들과 교감하고 싶어요. '곡이 왜이래' 그런 게 아니라 '하는 얘기가 좀 다르네' 그런 얘기를 듣고 싶어요"
MC스나이퍼는 특정한 사물이나 현상에 삶이 빠져들지 않고 자신의 세상에서 그걸 바라보는 뮤지션이다. 또 랩을 어떻게 쪼개는지에 연연해하기보다 삶을 바라보고 그걸 담아낼 줄 아는 뮤지션이다. 인생 2막을 연 MC스나이퍼의 음악이 그래서 궁금하다.
조이뉴스24 정병근기자 kafka@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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