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재기자] 울리 슈틸리케 감독의 한국대표팀 사령탑 데뷔전이 끝났다.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대표팀은 10일 천안종합운동장에서 펼쳐진 파라과이와의 친선경기에서 2-0으로 화끈하게 승리했다.
슈틸리케 감독의 데뷔전은 승리로 화려하게 장식됐다. 슈틸리케 감독은 이날 손흥민, 이동국 등 간판 공격수들을 선발에서 제외하는 파격적인 선발 라인업을 꾸렸다. 조영철, 남태희, 김기희, 홍철 등 그동안 A매치에서 자주 볼 수 없었던 선수들이 선발로 나섰다.
결과보다는 실험에 집중된 경기였다. 슈틸리케 감독은 데뷔전 승리라는 달콤함보다는 미래의 한국 축구를 위해 기본을 단단하게 만드는 과정에 중점을 뒀다. 어떻게 보면 승리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제로베이스에서, 하얀 백지에서 처음부터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도 슈틸리케 감독은 화끈한 승리 약속을 지켰다.
그리고 슈틸리케 감독의 데뷔전에는 승리보다 더욱 '강렬한 장면'이 있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이전 감독들과는 다른 모습, 감독으로서는 이례적인 모습을 보이며 한국 축구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훈련을 할 때 직접 훈련 도구들을 나르고 챙기는 모습에서 이미 슈틸리케 감독의 스타일을 조금은 읽을 수 있었다. 권위를 버린, 자율성을 강조하는 '따뜻한 리더십'이었다. 이런 리더십은 경기장 안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선수들이 경기장에 입장할 때 대부분의 감독, 아니 모든 감독들은 벤치에 가서 지켜본다. 그런데 슈틸리케 감독은 달랐다. 그라운드로 나서는 선수들을 직접 맞이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선수들이 입장하는 길목에 서서 11명의 선수 모두와 손을 마주쳤다. 감독으로서는 이례적인 모습이었다. 슈틸리케 감독의 따뜻함, 선수들에 대한 애정, 그리고 믿음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경기가 시작되자 슈틸리케 감독은 또 한 번의 이례적인 모습을 연출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선수들과 손을 맞춘 후 벤치로 갔다. 애국가가 나올 때 한국 코치진과 함께 어깨동무를 하며 한 마음이 됐다. 외국인 감독으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슈틸리케 감독은 그렇게 했다.
이후 슈틸리케 감독은 단 한 번도 벤치에 앉지 않았다. 보통 감독들은 주로 벤치에 앉아 있다가 특별한 상황이 벌어지거나 지시가 필요할 때 일어선다. 골을 넣는다든가, 판정에 항의한다든가, 급한 작전 지시를 한다든가, 이런 상황이 아니라면 대부분 벤치에 앉아 있다.
그런데 슈틸리케 감독은 한 번도 벤치에 앉지 않았다. 전반전을 그렇게 서서 보냈고, 후반전에도 마찬가지였다. 90분 동안 슈틸리케 감독은 단 한 번도 앉지 않았다. 벤치 앞에 서서 선수들과 함께 호흡했다.
함께 뛰지는 못했지만 벤치 앞에 서서 박수치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고, 독려하고, 아쉬워하며, 때로는 양팔을 벌리며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기도 하면서 수장으로서 선수들과 한 마음이 됐다. 후반 조영철이 상대와 부딪혀 쓰려지자 슈틸리케 감독은 큰 제스처로 걱정을 대신하기도 했다.
90분 동안 단 한 번도 앉지 않고 서 있는다는 것은 젊은 사람들에게도 힘든 일이다. 그런데 60세가 넘은 슈틸리케 감독이 그렇게 했다. 권위를 벗어난, 따뜻한 카리스마를 품은 슈틸리케 감독이 데뷔전에서 이런저런 강렬한 인상을 남기면서 한국축구에 신선한 기운을 불어넣었다.
조이뉴스24 천안=최용재기자 indig80@joynews24.com 사진 박세완기자 park90900@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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