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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퀸' 최정원 "데뷔 26년만에 첫 영화, 운명적 만남"(인터뷰)


민병훈 감독 '사랑이 이긴다'로 스크린 데뷔

[정명화기자] 무대가 아닌 화면 안에서 만나는 최정원은 낯설다. 설마 처음이랴 싶었지만, 영화는 정말 처녀작이라고 했다. 화려하고 정열적인 뮤지컬 디바의 옷을 벗은 최정원은 신선하고 새로운 얼굴로 다가왔다.

민병훈 감독의 영화 '사랑이 이긴다'로 뮤지컬에서 스크린으로 무대를 옮긴 최정원은 중년 여배우 가뭄에 시달리는 영화계에 단비같은 인물이다. 영화에 꼭 필요한 캐릭터이긴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중년 여배우가 무게감 있게 그려지는 작품이 없다는 것도 아쉬운 일이다. 하지만 늘 새로운, 그렇지만 안정된 연기력의 얼굴을 원하는 영화계에 최정원은 여러모로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입시지옥의 대한민국 사회를 살아가는 동시대 가족의 모습을 그린 '사랑이 이긴다'는 지금 현재의 행복, 가족의 의미 등을 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민병훈 감독 특유의 서정적이고 시적인 연출과 영상, 여기에 함축적이고 상징적인 묘사로 이뤄진 이번 영화에서 최정원은 중년의 여자 '은아' 역을 맡았다.

의사인 남편(장현성 분)과 안정적인 재력, 지성미와 도회적인 감각을 가진 '은아'는 흔히 볼 수 있는 강남 학부모다. 고등학생인 딸 '수아'(오유진 분)를 무섭도록 채근하며 오로지 공부만을 강요하는 은아는 영화 초반, 냉기를 뿜어내며 딸을 서서히 질식하게 만든다.

무감정, 무표정으로 성적표를 받아온 딸에게 "너는 자존심도 없냐"며 건조하게 말하는 무서운 엄마. 열정적이고 카리스마 넘치는 무대로 익숙한 최정원에게는 예상치 못했던 정적인 면모이자 또 다른 얼굴이다. 화려한 무대 분장을 지우고 현실적인 모습으로 영화에 나타난 최정원은 새롭고 반가운 발견이다.

첫 영화, 첫 영화제, 첫 시사, 첫 관객과의 대화로 이어지는 최정원의 영화 첫 경험 릴레이는 그에게 몹시 떨리고 기대되는 일인 듯 했다. 이번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처음 공개된 '사랑이 이긴다'의 상영을 앞두고 최정원은 설레임을 감추지 못했다. 약 12회차, 적은 예산으로 완성된 '사랑이 이긴다'에 재능기부 형태로 참여한 최정원은 "앞으로도 불러주신다면 영화를 계속 하고 싶다"고 말했다.

연기 경력 26년이라는 긴 시간에도 불구하고 영화 데뷔가 늦어진 이유를 묻자 최정원은 "사람처럼 작품도 운명적인 만남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에게는 '사랑이 이긴다'가 운명같은 영화였나보다.

"평소 영화광이다. 영화 보는 걸 너무 좋아하고, 영화에 대한 관심도 많다. 그동안 영화 쪽에서 제의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그동안 인연이 안 닿았던 것 같다. 막연히 생각했던 건 철학적인 감동을 주는 작품, 예술성이 있는 영화를 하고 싶다는 거였다. 영화쪽에서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기다렸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에 민병훈 감독 작품이 그런 영화였던 것 같다. 그리고 스케줄 상으로도 잘 하면 촬영을 마칠 수 있을 것 같았고, 소재가 주는 공감도 있었다. 같은 또래 딸을 키우는 엄마이고 감독님이 아시고 쓴 것도 아닌데, 내 딸 이름과 극중 딸 이름이 같아서 재밌고 놀라웠다."

차갑고 냉정한 엄마 연기와는 달리 실제로는 방목형 엄마라는 최정원. 아이의 행복은 저축할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을 전햇다.

"무조건 공부만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자아와 자신에 대한 소중함,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게 부모의 역할인 것 같다. 1등 아니면 인생이 잘 못 된다고 생각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실제로 난 은아와는 정반대 엄마다. 공부보다는 인성과 배려, 아름다움을 갖춘 여자가 되라고 가르친다. 인생을 살아보니 공부 잘하는 친구보다는 그런 친구들이 훨씬 더 잘 사는 것 같다. 어찌보면 은아와는 정반대인 내가 이 역할을 한다는 게 도전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영화 쪽에서 섭외가 와도 내 얼굴이 스크린에 크게 비친다고 생각하면 못할 것 같았다. 무대는 매일매일 공연을 해가며 잘못된 부분을 고쳐갈 수 있지만, 영화는 한번 찍으면 그게 평생을 간다고 생각하니 무섭기도 했다. 그런데 '사랑이 이긴다'는 시나리오가 너무 와닿고, 동갑내기인 민병훈 감독도 적극적으로 권하고 하니 하고 싶어졌다. '고스트' 공연이 끝나고 촬영 시점이 시간적으로 잘 맞기도 했고."

최정원은 "나중에 대학가서 하고 싶은 거 하라며 아이들에게 지금의 즐거움, 행복은 접어두라 말하지만, 행복은 저축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우리 아이들이 지금 이 순간 행복하길 바란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도 영화를 찍는 것이 너무 즐겁고 행복했다고 돌이켰다. 영화의 12회차 촬영이 끝나는 날 최정원은 크랭크업이 너무 아쉬워 그 어떤 뮤지컬 공연의 종연보다도 더 슬펐다고 한다.

"영화는 디테일한 것을 잡아주니 재밌다. 웃고, 울고 변화하는 내 모습도 재밌었고. 뮤지컬 배우가 영화계로 와서 실패한다, 연기력 논란 이런 것만 없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나이든 모습을 보여주는 그런 배우가 되고 싶다. 항상 아쉬웠던 게 우리나라 배우는 연기는 참 잘하지만, 나이들면서 얼굴이 점점 부자연스러워진다는 거였다. 나이에 맞게 세월의 흔적이 드러나는 그런 얼굴로 스크린에 서고 싶다. 절대 성형은 하지 않을 생각이다."

뮤지컬 배우처럼 보인다는 평이 가장 걱정된다는 최정원은 "무대도 마찬가지지만 늘 변신이 가능한 영화도 계속 하고 싶다"며 "영화를 본 관객이 각자 해석의 여지가 많은 그런 작품에 출연하고 싶다"고 바람을 전했다.

조이뉴스24 정명화기자 some@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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