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근기자] 신해철은 향년 46세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유산은 찬란하다.
신해철이 27일 오후 8시 19분 별세했다. 지난 22일 오후 1시 병원에서 심정지로 쓰러져 심폐소생술을 받고, 서울 아산병원에서 3시간여 걸쳐 장내에 발생한 염증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지만 끝내 깨어나지 못했다.
고(故) 신해철은 지난 6월 솔로 앨범을 발표했고, 넥스트 컴백을 예고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던 중이었던 터라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그는 최근 앨범에서 1000개 이상의 녹음 트랙에서 순수한 자신의 목소리만을 중복 녹음하고 스스로 엔지니어링과 믹스까지 행한 원 맨 아카펠라 '아따'(A.D.D.A)를 선보여 '역시 신해철'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그의 음악인생 26년이 그랬다. 1988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밴드 무한궤도 보컬로 데뷔한 신해철은 1992년 새로운 밴드 넥스트(N.E.X.T)를 결성하고 실험적인 음악들을 들려줬다. 단순한 실험에 그치지 않고 평단과 대중을 모두 만족시켰다. 서태지와 함께 1990년대를 상징하는 뮤지션 중 한 명이었고, 그 파급력 또한 대단했다.
신해철은 국내 최초로 하우스 비트, 샘플링 사운드를 사용했고, 댄스 음악에 록 기타를 입혔다. 록, 프로그레시브 메탈, 아트록, 재즈, 리듬 앤 블루스, 테크노, 댄스, 펑크, 클래식 등 수많고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시도했다. 또 국악을 접목하는 등의 파격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의 스펙트럼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김동률의 전람회 데뷔 앨범 프로듀싱을 하는 등 그의 음악적 영역은 폭넓었다.
뮤지션 신해철은 음악에만 국한되지 않고 대중문화계, 그리고 사회적인 영향력을 갖춘 '소셜테이너'였다. MBC '100분 토론'에 출연하기도 했던 그는 사회 현상에 관심을 가지며 거침없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그는 자아성찰적인 그리고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아냈다.
뮤지션이자 마왕 그리고 소셜테이너였던 그는 수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국내 가요계에 큰 별이 졌다.
앞서 신해철은 지난 17일 서울 송파구 S병원에서 장협착 수술을 받았다. 이후 몸상태가 나빠져 지난 22일 오후 1시 병원에서 심정지로 쓰러져 심폐소생술을 받고, 서울 아산병원에서 3시간여 걸쳐 장내에 발생한 염증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신해철은 수술 후 의식을 찾지 못했고, 끝내 영원한 작별을 고했다. 신해철의 빈소는 28일 오전 10시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 23호실에 마련된다.
조이뉴스24 정병근기자 kafka@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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