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근기자] 고(故) 신해철은 마지막까지 '마왕' 다웠다.
2일 밤 종합편성채널 JTBC 예능프로그램 '속사정 쌀롱' 제1회가 방송됐다. 이날 방송은 신해철이 생전에 녹화한 마지막 방송이다. 10월9일 녹화됐지만 신해철이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며 편성 여부가 불투명했다. 그러다 제작진은 유가족과 소속사 측의 입장을 반영해 공개하기로 했다.
신해철은 이날 가수 겸 MC 윤종신, 문화평론가인 진중권 동양대 교수, 영화평론가 허지웅, 개그맨 장동민, 힙합그룹 '엠아이비(MIB)' 멤버 강남과 호흡을 맞추며 자신의 생각을 소신 있게 전달했다. 출연자들은 신해철과의 인연을 소개하기도 했다.
1990년 데뷔 첫 무대에서 신해철이 피처링한 '떠나갈 친구에게'를 불렀다는 윤종신은 고인 덕분에 용기를 냈던 경험을 떠올렸다. 무대를 등지고 노래를 불러 '무대 공포증'이 생겼는데 신해철 덕분에 이를 해소할 수 있었다는 것. 이에 신해철은 "전쟁터에서 죽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지만 등 뒤에 칼이 꽂히는 건 창피한 일이라고 말해줬다"고 했다.
독설가 이미지에 대해 "독설가는 아니다. 부드러운 말은 살과 같이 빨리 썩고 독설은 뼈처럼 오래 남더라"고 답한 신해철은 이날 방송에서도 소신 있는 말들을 이어갔다.
신해철은 "대가족에서 자라서 상대에게 맞추는 걸 어려워하거나 굴욕스러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강요하는 느낌은 참을 수 없다"며 "데뷔하고 처음 방송국에 갔는데 프로듀서들을 선생님이라고 부르더라. '나를 가르친 적이 없는 사람들인데 왜 선생님이라 불러야 하지'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연예인을 '쓴다'고 표현하는 것도 받아들이기 싫어 그 호칭으로 안 불렀다"고 했다.
이날 주제인 후광효과를 얘기할 때도 그의 언변은 빛났다. 신해철은 "제일 창피한 건 자기가 후광효과 덕분에 되고 있으면서도 자신은 모르는 것이다. 여우가 가는데 동물들이 다 길을 비켜서 으쓱했는데 알고 보니 그 뒤에 사자가 있었다는 동화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선천적인 경우는 태어나니 아빠가 누구더라는 것이고, 후천적인 건 자신의 노력으로 얻은 것"이라는 신해철은 "줄리언 레넌 같은 경우는 아빠가 비틀스 출신인 존 레넌이라는 사실이 얼마나 힘들었을까"라며 '후광효과'를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봤다.
생전 젊은이들의 '멘토' 역할도 했던 그의 면모는 이날도 이어졌다.
백수로 지내는 형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시청자의 사연에 대해 "운전하는 사람이 기름이 떨어졌을 때 보험사에서 최소한 주유소까지 갈 수 있는 기름을 넣어주듯 최악의 절망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게 복지"라면서 "충분한 사회, 환경적 여건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나쁘다고 몰아세우는 건 옳지 않다"고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시청자의 사연에 공감하고 자신의 생각을 진지하게 전달한 신해철. 그런 그는 자신을 소개하며 "취미는 란제리 홈쇼핑 방송 보기"라고 했다. 그러면서 해맑게 웃었다. 자신이 빛나는 곳보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에 있어 왔던 신해철은 여전히 자신을 내세워 뭔가를 보여주기보다는 꾸밈 없는 모습, 그리고 때론 개구진 모습으로 마지막 인사를 했다.
한편, 신해철의 시신은 3일 오전 10시 국과수로 인도돼 12시쯤 부검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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