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근기자] 2004년 K팝은 다양한 음악들의 춘추전국시대였다. 본격적인 아이돌의 시대의 태동기이기도 하다. 이후 10년은 'K팝=아이돌'로 규정할 수 있다. 2014년은 좀 다르다. 아이돌은 더 이상 K팝의 주인공이 아니다. 하나의 장르가 됐다. 대신 '레전드의 귀환'과 더불어 다양한 음악이 공존하고 사랑받았다. 2004년 그때처럼 2014년은 K팝의 새로운 전환기다.
◆'그땐 그랬지'…가요계 르네상스의 끝자락
2014년은 대형 가수들의 컴백이 특히 많았다. 플라이투더스카이, god가 다시 뭉쳤고, 이선희 서태지 김동률 엠씨더맥스 박효신 이소라 바비킴 임창정 등 가요계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많은 가수들이 오랜 공백을 깨고 컴백했다.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말처럼 이들의 음악은 팬들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이들이 북적거린 2014년은 어느 때보다 풍성했다.
10년 전에도 이들은 색깔이 분명한 음악으로 귀를 즐겁게 해줬다. 2004년엔 플라이투더스카이가 정규 4집, 서태지가 정규 7집, god가 정규 6집, 김동률이 정규 4집, 박효신이 정규 4집, 이소라가 정규 6집을 발표했다. 엠씨더맥스는 '사랑의 시', '행복하지 말아요'로 메가 히트를 기록했고, 바비킴은 '고래의 꿈'으로 대체 불가 소울보컬의 탄생을 알렸다.
당시 히트곡을 돌아보면 얼마나 다양한 음악이 사랑받았는지 단번에 알 수 있다.
조PD&인순이 '친구여', 이수영 '광화문 연가', 보아 '마이네임', 버즈 '모놀로그', 장나라 '그게 정말이니', 이승철 '긴 하루', 장윤정 '어머나', 비 '잇츠 레이닝', 럼블피쉬 '예감좋은 날', 박상민 '해바라기', 린 '사랑했잖아', 박효신 '눈의 꽃', 세븐 '열정', 신화 '브랜드 뉴' 등 장르가 다양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씨비매스로 활동했던 개코와 최자가 다이나믹듀오로 앨범을 발표해 '링 마이 벨'을 히트시키며 힙합 대중화에 앞섰다. 또 피플크루 멤버였던 MC몽이 첫 솔로 앨범을 발표해 '너에게 쓰는 편지' '180도'를 히트시키며 자리를 잡았다. 터보 이후 침체기였던 김종국은 '한 남자'로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황제' 이승기도 이 해에 '내 여자라니까'로 대중 앞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데뷔와 동시에 '타임리스' '사랑하길 정말 잘 했어요'를 히트시킨 SG워너비는 소몰이 창법을 유행시켰다. 테이의 데뷔곡 '사랑은...향기를 남기고' 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 K팝 10년 향방 가른 동방신기의 탄생
2004년은 이후 K팝이 아이돌그룹의 새 지평을 연 동방신기가 데뷔한 해다. 동방신기의 탄생과 성공으로 인해 수많은 아이돌그룹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이는 10년째 이어져오고 있다. 동방신기는 아이돌그룹 부흥기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1990년대 후반 H.O.T, 젝스키스를 시작으로 신화, S.E.S, 핑클 등이 있었지만 본격적인 아이돌 시대를 열어젖힌 건 동방신기다. '완성형 아이돌'로 평가받았던 동방신기는 국내를 넘어 일본에서도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국내외에서 동방신기의 기세는 거침이 없었고, 수많은 제작자들이 아이돌 제작에 뛰어들게 만들었다.
동방신기 이후 빅뱅, 슈퍼주니어, 원더걸스, 소녀시대, 샤이니, 2PM 등 국내 가요 기획사 빅3에서 데뷔한 아이돌그룹이 연이어 성공을 거뒀다.
2008년경부터는 데뷔하는 아이돌그룹의 숫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3~4년 정도 준비 기간을 거쳐 데뷔시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2010년 이후에는 한 해 50여 팀이 데뷔하기도 했다. 'K팝=아이돌'이라고 불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다른 장르의 가수들의 활동이 주춤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2010년경부터 아이돌 포화상태라는 말이 나왔지만 해외시장을 개척하며 살아남았고, 중소기획사에서 성공시킨 아이돌그룹들도 생겨났다.
비(非) 엔터테인먼트 출신인 걸스데이 소속사 이종석 대표는 조이뉴스24에 "아이돌 1세대가 지나면서 아이돌은 끝난 거 아닌가 했는데 2004년 동방신기가 나타나 가요 시장을 재편했다. 이어 원더걸스, 소녀시대 등도 성공을 거뒀다. 또 동방신기가 해외시장을 개척하는 모습을 보고 가능성이 있겠다 싶어 걸스데이를 기획하게 됐다"고 했다.
◆아이돌 시대의 종식, 그리고 K팝의 새판 짜기
폭발적으로 증가한 아이돌그룹의 이면에는 제대로 된 무대 한 번 서보지 못하고 사라지는 수많은 팀들이 있다. 치열한 경쟁 속에 신인 그룹을 성공시키기는 날이 갈수록 힘들어졌고, 지난해 엑소가 가요대상을 석권하기 전까지 수년간 대형 아이돌그룹은 등장하지 않았다.
2014년 히트곡들을 돌아보면 아이돌그룹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게 뚜렷해진다.
멜론 월간차트 1위를 살펴보면 1월 엠씨더맥스 '그대가 분다', 2월 '겨울왕국' OST '렛 잇 고', 3월 소유&정기고 '썸', 4월 박효신 '야생화', 5월 하이포&아이유 '봄 사랑 벚꽃 말고', 6월 정인&개리 '사람냄새', 7월 산이&레이나 '한여름밤의 꿀', 8월 씨스타 '터치 마이 바디', 9월 포스트맨 '신촌을 못가', 10월 김동률 '그게 나야'다.
1위뿐만이 아니라 한때 차트를 도배했던 아이돌의 이름은 현저하게 줄었다. 그렇다고 아이돌의 생명력이 끝난 건 아니다. 여전히 파급력이 높은 콘텐츠다.
윤종신은 조이뉴스24에 "요즘 아이돌은 완성도도 있고 훌륭하다. 이제 아이돌 음악이 별로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이젠 아이돌이 쏟아졌을 때의 초기 부작용이 다 사라졌다. 아이돌이 주류에서 밀려나는 과정이 아니라 특정 장르로 자리 잡았다고 본다. 아이돌은 한국 사람들이 세계에서 가장 잘 하는 것이기도 하고 여전히 가장 강한 콘텐츠"라고 말했다.
오랜만에 앨범을 발표해 사랑받은 엠씨더맥스, god, 플라이투더스카이, 김동률 등을 비롯해 올해 사랑받은 곡들을 살펴보면 가사와 멜로디 위주의 곡들이 많다. 윤종신은 "아이돌류의 음악들이 만연했을 때의 피로도가 다시 멜로디와 가사로 오는 것 같다"고 했다.
힙합은 최근 가요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고, 7080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통기타를 든 젊은 가수들이 사랑받고 있다. 아이돌 중심의 기획사들이 스타쉽엑스, 발전소 등의 레이블을 두고 인디 뮤지션들과의 협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도 다양성의 흐름에 발맞춘 행보다. 2014 K팝은 10년 만에 다시 한 번 르네상스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조이뉴스24 /정병근기자 kafka@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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