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숙기자] 넥센에 이전까지 한국시리즈를 경험한 선수는 이택근과 오재영뿐이었다. 이택근은 현대 시절이던 지난 2003년부터 2년 동안 8경기에 출장했고, 오재영은 2004년 3경기에 등판해 1승을 올린 게 전부였다. 한국시리즈 통산 최다 59경기 출장 신기록을 세운 진갑용, 10번째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는 박한이 등이 버티고 있는 삼성과 무게감부터 달랐다.
삼성 박한이는 한국시리즈 개막 전 미디어데이에서 "한두 번 치르는 한국시리즈가 아니다. 편하게 즐기겠다"는 말로 기선을 제압했다. 이에 이택근은 "삼성이 경험은 앞서지만 우리는 과감한 플레이가 장점이다. 긴 시간 끝에 한국시리즈에 왔다. 우리 팀에는 스토리가 있는 선수들이 많다"고 받아쳤다.
그러나 결국 넥센의 절실함은 삼성의 경험을 넘지 못했다. 시리즈 승부의 분수령이 됐던 5차전 당시 긴박했던 9회말. 넥센은 1-0으로 앞서 승리를 눈앞에 뒀으나 단 한 번의 실책으로 승패가 갈렸다. 삼성이 2-1로 짜릿한 끝내기 역전승을 거둔 이후 여유 있게 흐름을 탔고, 넥센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리고 넥센은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6차전은 이미 분위기가 기운 가운데 삼성이 11-1 대승을 거두며 4승2패로 넥센을 물리치고 통합우승 4연패의 위업을 달성했다. 넥센은 이번 가을 무대에서 경험의 차이를 여실히 드러냈다.
더불어 '해결사'도 없었다. 기대했던 박병호와 강정호 두 중심타자의 방망이는 끝내 터지지 않았다. '미친 선수'도 없었다. 가라앉은 분위기를 끌어올릴 기폭제가 부족했다. 희망을 잃은 넥센 덕아웃 분위기는 점점 무거워졌다.
플레이오프에서 타율 3할3푼3리(15타수 5안타), 5할3푼3리(15타수 8안타)를 기록했던 박병호와 강정호는 한국시리즈에서는 각각 1할4푼3리(21타수 3안타), 5푼(20타수 1안타)에 그쳤다. 기대했던 리드오프 서건창도 1할7푼4리(23타수 4안타)로 부진했다. 주전 선수 중 타율 3할을 넘긴 선수는 유한준(3할3푼3리)이 유일했다. 넥센이 삼성과 맞서 고전한 이유다.
절박했지만 폭발력이 없었다. 과감한 플레이도 보이지 않았다. 5차전에서 허무하게 승리를 빼앗긴 넥센은 마지막 6차전서 힘도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10점 차로 대패했다.
마운드 싸움은 예상 외로 대등했다. 밴헤켄과 소사, 오재영 등 선발진은 자기 몫을 충분히 해냈다. 불펜은 결정적인 고비를 넘기지 못했지만 그래도 마운드에 오르면 혼신의 피칭으로 삼성 강타선과 맞섰다. 그러나 타선은 9점을 뽑아낸 4차전을 제외하면 잠잠했다. 일찌감치 타선이 터져 분위기를 끌어올렸다면 투수들의 투구 내용도 달라졌을지 모른다. 맥을 못추는 방망이에 마운드도 힘을 잃었다.
넥센의 시리즈 팀 타율은 1할8푼. 삼성은 2할1푼6리를 기록했다. 삼성도 그리 좋은 타격 성적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우승을 가져갈 수 있었던 이유는 한 방이 있는 해결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홈런을 4방이나 터드리며 시리즈 MVP에 오른 나바로와 함께 주장 최형우가 타율 3할2푼(25타수 8안타)으로 타선을 이끌었다. 박한이와 이승엽은 존재만으로 상대에 위압감을 줬다. 박한이는 한국시리즈 통산 득점(36), 안타(51), 타점(27), 루타(73), 사사구(52) 부문에서 최다 기록을 세웠다. 이승엽은 팀의 정신적인 지주다. 진갑용은 59경기 출장 신기록을 새로 썼다. 넥센 투수들은 이들에게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꼈다.
이제 넥센도 경험을 쌓아가고 있다. 지난해 처음으로 포스트시즌 무대를 밟은 넥센은 올해 한국시리즈에 오르면서 심장을 키웠다. 패배 후 덕아웃에서 흘렸던 뜨거운 패자의 눈물을 잊지 말고 내년을 준비해야 한다. 우승컵은 놓쳤지만 넥센의 2014시즌은 누가 뭐래도 성공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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