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기자] 2015 아시안컵 조별리그가 종료됐다. 큰 이변 없이 승리를 얻을 자격이 있는 팀들이 실속을 챙기며 8강에 진출했다.
물론 쉬운 조별리그는 아니었다. 전반적으로 아시아 축구의 수준이 향상되면서 승패는 종이 한 장 차이로 갈리는 경우가 많았다. 이전 전술적으로 투박했던 팀들이 조금 더 유연해진 모습으로 등장했는가 하면, 세대교체를 앞세운 팀들이 힘으로 강팀을 몰아붙이는 경우도 있었다.
조별리그 24경기 전부 단 한 번의 무승부 없이 승패가 갈린 것은 약팀으로 분류됐던 이들이 강팀을 꺾어보기 위해 도전적인 축구를 시도한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물론 전력 열세의 팀이 '선 수비 후 역습'을 추구하다 정확도 부족으로 자멸하는 경우도 있었다.
한국을 상대했던 오만과 쿠웨이트의 경우가 그랬다. 호주에 4골씩 내주며 무너지기는 했지만 변화의 물결에 놓인 강팀을 상대로는 충분히 도전 가능함을 보여줬다. 경기 종료 직전까지 상대를 압박하는 끈기도 좋아졌다.
전술적으로는 경기를 조율하는 플레이메이커나 패스마스터들의 존재감이 강했던 팀들이 8강행 특급열차에 승차했다. 한국은 기성용(스완지시티)이라는 탁월한 조율사가 있었다. 일본 역시 노장이지만 볼 배급이 뛰어난 엔도 야스히토(감바 오사카)가 버티고 있었다.
이번 대회 최고의 스타로 거듭난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오마르 압둘라흐만(알 아인)의 활약도 대단했다. 골보다는 화려한 돌파로 상대의 수비를 와해시키는 그의 저돌성은 팬들의 눈을 사로잡을 만했다. 이라크의 야세르 카심(스윈던타운)과 중국의 정즈(광저우 에버그란데)도 중앙에서 중심축을 형성했다.
확실한 원톱 자원을 보유한 팀도 승리했다. 점유율에서 상대에 뒤졌어도 한 방으로 해결했던 이란이 대표적이다. 신성 사르다르 아즈문(루빈 카잔)과 레자 구차네자드(알 쿠웨이트)가 번갈아 가며 골을 넣어 카타르, UAE전 승리 수확에 이바지했다.
한국도 원톱 부재라는 약점을 극복하며 조영철(카타르SC), 이정협(상주 상무)이 각각 결승골을 넣어 2승을 수확했다. 일본은 오카자키 신지(마인츠05)가 매 경기 투혼을 불사르고 있고 호주는 팀 케이힐(뉴욕 레드불스), 이란은 노장 유니스 마흐무드(무적)가 건재했다.
과거와 달리 실점 후 경기를 포기하거나 거칠게 상대를 다뤄 피해를 준 팀들이 줄었다는 것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한국만 따로 놓고 보면 이청용(볼턴 원더러스), 구자철(마인츠05)이 상대의 파울로 부상을 당하면서 선수단에서 이탈하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매끄럽고 박진감 넘치는 경기가 많았다. 느긋한 중동팀들도 쉽게 와해되지 않았고 '쿵푸 축구'로 희화화됐던 중국 역시 알랑 페렝 감독의 지도 스타일이 효과적으로 녹아들며 유연한 축구를 구사하고 있다.
물론 점유율이나 공격 각 부문 지표에서 뒤지고도 먼저 골을 넣은 뒤 걸어잠그는 스타일도 여전히 유효했다. UAE에 극적으로 이긴 이란은 모든 공격 부문에서 열세였지만 특유의 끈끈한 축구로 승리를 챙겼다. 한국도 호주를 상대로 볼 점유율에서 32.8%-67.2%, 패스 시도 255회-515회로 크게 밀리고도 단 한 골로 재미를 봤다.
팀 스타일과 정체성이 확실하게 드러난 팀이 많지 않았다는 점은 아직도 아시아 축구가 해결해야 할 부분 중 하나다. 강팀에는 '선 수비 후 역습'으로 맞서고 비슷한 전력의 팀 간 경기에서는 엇비슷한 스타일로 경기를 하다 보니 서로를 압도하거나 세계적인 수준으로 발돋움하는 발전된 모습을 보이기에는 부족함이 엿보인다.
최순호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은 새 감독 체제로 팀을 바꿔나가고 있는 한국을 제외한 나머지 팀을 예로 들며 "일본은 어떤 축구를 구사하는지 확실하게 보인다. 나머지 팀들이 특정한 축구를 확실하게 구사했느냐는 물음에는 쉽게 대답하기 어렵다. 그만큼 부족하다는 이야기다. 다만 과거보다 세련되게 전술 운용을 하는 것 같더라"라고 이번 대회를 전반적으로 평했다.
한준희 KBS 해설위원은 "각 팀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나 리오넬 메시처럼 슈퍼스타가 없는 아시안컵에서는 실리적인 축구가 충분히 효과를 볼 수 있다. 수준 높은 공격수를 보유하고 결정력까지 겸비했다면 더 그렇다. 최전방에서 해결지은 팀들이 8강에 진출했다고 보면 된다"라고 분석했다.
이어 한 위원은 "수비가 조직적으로 좋은 팀은 1골 승부에서 효과를 봤다. 기복이 있는 팀들도 없고 전반전으로 모든 팀이 열심히 경기에 나서면서 승부가 짜릿하게 갈리는 경우가 많았다"라고 전했다.
8강전은 더욱 흥미로울 전망이다. 한국-우즈베키스탄은 '지한파'의 활약과 봉쇄 여부, 호주-중국은 팬들의 응원 싸움과 킬러 대결, 이란-이라크는 역사적 배경이 녹은 라이벌의 정신력 승부, 일본-UAE는 화려한 기술 축구의 대결로 압축된다. 조별리그에서 유효했던 승리 요인들이 그대로 이어질 지도 지켜볼 일이다.
조이뉴스24 이성필기자 elephant1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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