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기자] "꼭 우승하고 싶어요."
한국 축구대표팀은 22일(한국시간)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우즈베키스탄과의 2015 호주 아시안컵 8강전에 2-0 승리를 거뒀다. 4강 진출을 확정지은 뒤 중앙수비수 곽태휘(34, 알 힐랄)는 후배들을 한 명씩 안아주며 기쁨을 만끽했다.
곽태휘는 이번 아시안컵대표팀에서 차두리(35, FC서울)와 함께 최선참이다. 조용한 성격이지만 해야 할 말은 확실히 하고 넘어간다. 주장 기성용(26, 스완지시티)을 소리없이 보좌하는 아버지같은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다.
조별리그 1, 2차전 오만, 쿠웨이트전에서 한국은 모두 1-0으로 승리했지만, 수비 불안에 대해 우려가 계속 쏟아졌다. 장현수(광저우 부리), 김영권(광저우 에버그란데)이 책임진 중앙 수비는 실점을 하지는 않았지만 눈에 띄는 실수를 저질러 위축될 법했다.
여기저기서 곽태휘를 넣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그는 나서지 못했다. 오만전을 앞둔 훈련 중 동료와 부딪혀 엉덩이 근육 부상을 당했기 때문이다. 곽태휘는 황인우 재활트레이너 팀장과 묵묵히 회복에 집중했다. 경기에 못 나서는 대신 그는 후배 장현수와 김영권에게 흔들리지 말라며 독려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몸 상태가 회복된 곽태휘를 호주전에 내보냈다. 186㎝의 장신인 그는 공중볼 장악과 일대일 방어 능력이 탁월해 피지컬이 좋은 호주 선수들과 힘 싸움에서 밀리지 않을 것으로 기대됐다. 감독의 기대대로 곽태휘는 수비진을 이끌고 호주의 거센 공격을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한국의 1-0 승리에 공헌했다.
우즈벡과의 8강전에도 선발 출전한 곽태휘는 연장전까지 치른 혈전에서 120분 풀타임을 소화했다. 경기 중에는 눈에 띄는 장면도 있었다. 세트피스에서 키커로 누가 나설 것인가를 놓고 선수들이 혼란을 겪을 때 기성용, 손흥민과 상의해 상황을 정리했다. 기성용은 세트피스 전문 키커로서의 능력을 발휘하고 싶었고, 손흥민은 골에 대한 목마름을 해소하고 싶었다. 미묘한 상황이 곽태휘의 말 한마디로 끝난 것이다.
전술적 훈련과 지시는 감독이 하지만 그라운드에서 순간의 선택은 선수들이 자율적으로 해야 한다. 곽태휘는 풍부한 경험을 앞세워 이런 상황을 정리하며 기성용과 손흥민의 심적 부담을 줄여줬다.
곽태휘는 수비만 열심히 한 것이 아니라 상대 골지역으로 파고들어 우즈벡 수비와 경합하며 골 사냥에도 열을 올렸다.
이날 우즈벡전에서 곽태휘는 1, 2차전을 뛰지 못한 데 대한 미안함을 안고 희생정신과 투혼을 발휘하며 온 몸을 던졌다. 곽태휘는 경기 최우수선수(Player of the match)로 선정됐다. 그의 활약 덕분에 한국은 네 경기 무실점 기록을 이어가면서 4강에 올랐다.
곽태휘는 2014 브라질월드컵 대표팀에 뽑혔으나 한 경기도 나서지 못한 채 조별리그 탈락을 맛보고 조용히 돌아왔다. 실망감에 사로잡힌 축구팬들에게 한국 축구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이번 아시안컵을 좋은 기회로 삼은 이유다.
이전 출전했던 아시안컵만 생각하면 진한 아쉬움이 남는 것도 곽태휘의 집중력을 높이는 요인이다. 2011년 카타르 대회의 아픔을 털고 싶어 그렇다. 당시 곽태휘는 바레인과의 1차전에서 어이없게 퇴장을 당했다. 한국은 그가 없이 치른 호주와의 2차전을 1-1로 비겼고 결국 조 2위로 밀려났다. 이란과 8강에서 연장 혈전을 벌인 끝에 4강에 진출했다. 만약 곽태휘가 호주전에 출전해 좋은 활약을 펼쳐 한국이 조 1위를 차지했다면 한결 수월하게 결승에 갈 수 있었다.
당시의 아픔을 가슴에 담고 4년을 기다린 곽태휘는 우즈벡전 승리 뒤 국내에서 응원하던 지인에게 "꼭 우승하고 싶다"라는 짧고 굵은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너의 믿음대로 될 것이다"라는 답문을 받은 곽태휘는 아직 완전하지 않은 엉덩이 근육 회복을 위해 찜질, 마사지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하며 조용히 4강전을 준비할 생각이다. 과연 4년을 기다린 곽태휘의 우승 갈증은 호주에서 해소될 수 있을까.
조이뉴스24 이성필기자 elephant1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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