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기자] 2015 호주 아시안컵에 출전한 한국 축구대표팀은 위기의 연속이었다.
부상 이탈자는 가장 큰 걱정거리였다. 이미 대회 시작 전 엔트리 구성에서부터 고민에 빠졌다. 원톱 공격수 이동국(전북 현대)과 김신욱(울산 현대)의 부상으로 공격진 구성에 골머리를 싸맸다.
울리 슈틸리케(61) 감독은 지난해 12월 초 K리그 대상 시상식에 참석해 이동국에게 직접 몸 상태를 묻는 등 원톱 자원 확보에 발품을 아끼지 않았다. 대표팀의 간판 공격수라 할 수 있는 박주영(알 샤밥)도 소속팀에서 데뷔전 데뷔골을 제외하면 좋은 컨디션이 아니어서 슈틸리케 감독의 고민은 깊어졌다.
결국, 슈틸리케 감독의 선택은 무명 이정협(상주 상무)의 깜짝 발탁이었다. 상주의 경기를 다섯 차례나 직접 관전한 뒤 최종 선택을 했다. 186㎝의 신장을 앞세워 상대 수비에 부담을 주는 몸싸움과 중앙선 아래까진 내려와 수비에 가담하는 능력 등 그의 헌신적인 플레이를 좋게 평가했다.
결과적으로 이정협의 대표 발탁은 대성공이었다. 이정협은 국제대회 경험 부족이라는 결점을 골 결정력으로 지웠다. 오만과의 예선리그 1차전에서 역습 중 상대 골키퍼와 1대1로 맞서는 상황에서 슈팅 대신 반대편의 동료에게 패스하는 작은 실수를 저질렀지만, 특유의 성실함으로 호주와의 3차전 결승골을 넣으며 한국을 조 1위로 8강에 진출시켰다.
이라크와의 4강전에서는 신장의 우위를 이용해 헤딩 결승골을 터뜨렸다. 세트피스 상황에서 얻은 대회 첫 득점이라는 상징까지 더해져 더욱 돋보였다.
공격 2선의 선수들은 최전방을 지원하기 위해 무한 위치 이동으로 어려움을 극복했다. 오만전서 이청용(볼턴 원더러스), 예선 3차전 호주전서 구자철(마인츠05)이 경기 중 부상으로 실려 나가 다시는 대회를 치를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슈틸리케 감독은 상황에 따른 위치 이동이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이 역시 성공적이었다. 우즈베키스탄과의 8강전이 좋은 예였다. 공격적인 경기 운영을 위해 기성용을 왼쪽 날개로 이동시키고 손흥민에게 원톱 역할을 맡기는 등 상대의 허를 찌르는 이동으로 연장전 2-0 승리를 거뒀다. 기성용의 제안을 슈틸리케 감독이 유연하게 수용한 결과이기도 했지만, 상대를 철저하게 분석하지 않았다면 시도할 수 없는 전술이었다. 동시에 멀티플레이어 능력이 있는 선수를 중점적으로 선발한 슈틸리케 감독의 혜안이기도 했다.
호주와의 결승전에서는 상대의 거센 압박과 오른쪽 측면 돌파에 대응하기 위해 박주호를 좌측 윙백으로 배치하는 파격적인 포지션 파괴를 선보이기도 했다. 또 선제골을 내주고 패배 위기에 몰리자 중앙 수비수 곽태휘를 최전방 공격수로 끌어올리는 놀라운 위치 변경 전략을 펼치기도 했다.
기성용의 포지션 파트너 논란도 종식시켰다. 왼쪽 풀백으로 주도 뛰던 박주호를 중앙 미드필더로 이동시켜 뛰게 해 가능성을 충분히 확인했다. 경기를 치르면 치를수록 나아지는 그의 플레이는 인상적이었다. 기성용이 공격형 미드필더로 올라서면 교체 투입된 장현수(광저우 부리)와 역할을 나눠 뛰며 상대의 공격을 철저하게 차단하는 전략도 구사했다.
감기몸살로 베스트 멤버 구성에 애를 먹자 과감하게 선수를 바꿔 내보내는 결단력도 보여줬다. 기회를 얻은 선수들이 스스로 경쟁력을 보여주기를 바란 것이다. 매 경기 선발진이 같았던 적이 없었지만, 한국은 끈적한 축구로 승승장구하며 결승까지 올라서는 저력을 보여줬다. "한국에는 능력이 좋은 선수가 많다"고 말한 슈틸리케 감독은 자신의 느낌을 그대로 대표팀 운영에 녹여 치밀한 위기 대처 능력으로 놀랄 만한 성과를 거뒀다.
한국은 호주와 결승전에서 연장까지 접전을 벌이고도 아쉽게 1-2로 패배, 55년 만의 우승 꿈을 접었다. 하지만 슈틸리케 감독이 이번 대회에서 보여준 유연한 위기관리 능력은 앞으로 대표팀의 경기력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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