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의기자] 인천 전자랜드의 '캡틴' 포웰은 농구인생 최고의 순간에도 활짝 웃을 수 없었다. 형제같은 팀동료들과 함께 걷는 길의 마지막에는 이별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포웰은 전자랜드의 기적을 이끌었다. 정규시즌 6위 전자랜드가 서울 SK에게 3연승을 거두며 4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수 있었던 결정적 역할을 해낸 것이다. 13일 열린 6강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포웰은 27득점 9리바운드 9어시스트를 기록하는 트리플더블급 활약을 펼치며 전자랜드의 91-88 승리를 이끌었다.
언제나 그렇듯 포웰의 활약은 결정적인 순간 나왔다. 4쿼터에서만 12득점(3점슛 2개)을 올리며 SK 쪽으로 거의 넘어갔던 승부를 연장으로 돌렸고, 연장에서도 8득점(3점슛 2개)으로 SK를 탈락시켰다. 27득점 가운데 4쿼터와 연장에서만 20득점이 나온 것이다.
경기 후 포웰은 코트 안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눈물을 보이기까지 했다. 스타 플레이어 없이 객관적인 전력의 열세 속에서도 팀원들이 하나가 돼 짜릿한 승리를 거둔 것에 대한 감동의 눈물이었다. 포웰은 "당연히 지금이 내 농구인생 최고의 순간"이라고도 말했다.
하지만 포웰은 감격의 눈물 뒤 웃음을 보이지 않았다. 승리의 기쁨에서 벗어나 원주 동부와의 4강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가 있었다. 포웰은 이번 플레이오프가 끝나는 시점에서 정든 전자랜드를 떠나야 한다. KBL의 제도 때문이다.
포웰은 "당연히 지금이 내 농구인생 최고의 순간"이라며 "경기가 끝나고 구단주가 라커룸에 들어와 '어린 선수들을 잘 이끌고 여기까지 와줘 고맙다'고 말해줬다. 전자랜드는 차바위, 김지완처럼 신인 때부터 만난 선수들이 성장해가는 모습을 지켜봤던 팀이다. 그런데 KBL의 제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굿바이해야 한다"고 말했다.
포웰의 말에는 진한 아쉬움이 묻어 있었다. 그는 "끔찍한(terrible) 제도"라는 말을 강조했다. 포웰이 말하는 제도는 외국인 선수 선발과 관련된 규정. 다음 시즌부터는 외국인 선수 2명이 동시에 출전할 수 있게 되는데, 현재 10개 구단의 외국인 선수들은 원 소속팀과 재계약을 할 수 없다. 다시 트라이아웃과 드래프트를 거쳐야 하는 상황이다.
물론 전자랜드가 드래프트에 나온 포웰을 지명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전자랜드 입장에서 큰 위험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선택일 수밖에 없다. 2명의 외국인 선수를 장신(193㎝ 이상), 단신(193㎝ 이하)으로 나눠 선택해야 하기 때문.
포웰의 신장은 196㎝. 장신자로 분류되는 포웰을 선택하면 나머지 한 명은 단신자로 뽑아야 한다. 이는 곧 포웰을 뽑는 팀은 높이의 열세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상 포웰과 같은 어중간한(?) 신장의 선수들이 다음 시즌 KBL리그에서 뛰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 전망이다.
전자랜드팬 뿐만이 아니라 전체 농구팬들이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외국인 선수 제도에 대한 불만이다. 전자랜드의 플레잉코치 이현호는 "포웰은 우리가 형제처럼 지낼 수 있게 해준다. 외국인 선수가 그러기 쉽지 않다"고 포웰의 존재감을 설명했다. 그런 포웰이 '끔찍한 제도'의 희생양이 될 처지에 놓였다.
조이뉴스24 정명의기자 doctorj@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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