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기자] '수원병(病)'은 더 이상 없다. 경쟁이 수원 삼성을 일으키고 있다.
수원이 FC서울과의 슈퍼매치에서 완승을 거두며 환하게 웃었다. 18일 두 팀의 올 시즌 첫 만남에서 수원이 5-1 대승을 거뒀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대승이다. 1999년 수퍼컵에서 당시 안양(FC서울의 전신격)을 5-1로 이긴 뒤 17년 만에 같은 점수의 대승이 나왔다. 서울 최용수 감독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패배"라며 완패를 인정했다.
양 팀 모두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를 병행해 선수들이 지쳐 있는 상황에서 만났다. 수원은 광양, 울산으로 이어지는 원정 2연전을 치르고 엿새 만에 홈으로 돌아와 피로가 컸다. 서울도 웨스턴 시드니(호주) 원정을 다녀왔지만 이후 인천과 서울에서 두 경기를 치러 그나마 조금이라도 체력을 아낄 수 있었다.
수원은 지난달 14일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클래식 2라운드를 시작으로 8경기 무패를 달리고 있다. A매치 휴식기 이후 치른 5경기에서 12골을 넣고 5실점을 하며 공수의 균형을 맞춰가고 있다.
이날 서울전은 수원의 폭발력을 확인하는 무대였다. 정대세가 2골 2도움으로 에이스 놀이를 했고 이상호가 2골, 염기훈이 1골 2도움으로 공격진의 완벽한 호흡을 과시했다.
수원의 눈에 띄는 변화는 모든 플레이에 이타적인 자세가 녹아 있다는 점이다. 정대세가 그 정점에 있다. 정대세는 슈팅 기회에서도 좋은 위치의 동료를 먼저 보며 패스로 도우미 역할을 했다. 이전까지의 정대세는 경기 외적인 화제에 휩쓸려 온전히 축구에 적응하기가 어려웠다.
정대세는 동계 훈련 내내 눈과 귀를 막고 패스 연습 등 기량 연마에 공을 들였다. 상대 수비를 등진 상황에서 무리하게 슈팅하지 않고 주변의 움직임을 본 뒤 패스를 하는 능력이 좋아졌다. 서울전이 "인생 경기"라고 표현한 말이 괜한 것이 아니었다. 카이오라는 팀내 경쟁자가 나타난데다 염기훈을 제로톱으로 활용하는 훈련까지 했다. 멀티포지션 소화라는 서정원 감독의 전략에 따른 것이지만 그 누구도 주전을 보장받지 못한 것이 간절함으로 이어지면서 효과를 보고 있다.
염기훈도 마찬가지. 고액 연봉자 정리 분위기에 따라 사실상 팀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수원과 1년 재계약을 하고 배수의 진을 쳤다. 바닥까지 내려와 절실함을 느낀 그였다. 1년 뒤 자신의 진가를 보여주며 계약을 새로 해 영원히 수원맨으로 남고 싶은 그의 의지는 '미친 왼발'이라는 결실로 이어졌다.
수원의 각 포지션에는 두 배수 이상의 자원들이 포진해 있다. 염기훈이 결장했던 지난 15일 울산 현대전에서는 새내기 장현수가 데뷔전을 치렀다. 서정원 감독은 "올림픽대표팀 주전 아닙니까"라며 장현수가 얼마든지 선발 멤버에 들 자격이 있음을 강조했다. 염기훈이 빠져도 대체 자원은 충분하다는 이야기였다.
중앙 미드필더 역시 경쟁의 천국이다. 김은선-권창훈 듀오라고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백지훈-오범석, 백지훈-조지훈 등 다양한 조합이 기다리고 있다. 몇 경기 주전으로 뛰었다고 안주했다가는 큰일이 날 수밖에 없다. 오른쪽 측면도 서정진-고차원-레오 등이 삼중 경쟁 중이다. 처진 공격수에는 산토스-이상호의 경쟁이 계속되고 있다.
특정 선수 한두 명이 빠져도 전체 전력에 큰 변화는 없다. 틀이 깨지지 않는 상태로 다양한 조합과 멀티포지션 소화를 통해 위기 대처 능력을 키웠다. 자만은 서정원 감독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다. 스타 의식은 팀이라는 틀 안에서 무용지물이다. 염기훈의 말마따나 "슈퍼매치는 등 뒤의 이름이 아닌 가슴팍 엠블럼의 무게로 뛰는 것"이다. '개인'이 사라진 수원에는 이타적 플레이에 의한 '팀이'라는 꽃이 활짝 피었다.
조이뉴스24 이성필기자 elephant1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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