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의기자] LG 트윈스가 비난의 중심에 섰다. 팀 성적도 나쁜 상황에서 불필요한 논란에까지 휘말린 모양새다.
비난과 논란의 이유는 지난달 31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나온 이승엽의 볼넷 때문이다. LG는 3-9로 뒤지던 9회초 2사 2루에서 이승엽을 고의성 짙은 볼넷으로 내보냈다. 이어 박해민을 유격수 뜬공으로 잡아내며 이닝을 끝냈다.
이승엽은 KBO리그 최초의 통산 400홈런이라는 대기록까지 홈런 1개만을 남겨놓은 상태다. 때문에 이날 경기 이승엽이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관중석은 혹시 나올 지 모를 대기록의 가능성에 평소보다 많은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앞선 4타석(2루타, 실책, 삼진, 사구)에서 홈런을 때려내지 못한 이승엽에게 9회초 다섯 번째 타격 기회가 돌아왔다. 6점 차로 삼성이 앞서 이미 승부가 기운 분위기였기 때문에 이승엽도 부담없이 홈런을 노려볼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결과는 볼넷. 그것도 바깥쪽으로 빠지는 볼만 연속으로 4개가 들어간 스트레이트 볼넷이었다.
충분히 LG 벤치가 이승엽을 고의로 걸렀다고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포수 유강남은 완전히 바깥쪽으로 빠져 앉아 있었고, 투수 신승현의 공도 정면 승부할 의사가 없는 것처럼 스트라이크존을 크게 벗어나게 제구됐다. 그렇게 이승엽은 1루로 걸어나갔고, LG는 후속 타자를 범타로 잡아내며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이승엽의 대기록을 바랐던 팬들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LG가 정정당당한 승부를 피했다는 비난의 목소리도 높아졌다. 특히 이날 경기 전 양상문 LG 감독이 "(이승엽과) 정상적인 승부를 할 것"이라고 공언한 터라 논란이 더욱 가열됐다.
그러나 LG 입장에서 이같은 논란이 억울할 수밖에 없다. 연패에 빠져 있는 가운데 6점 차로 뒤진 9회초 수비. 점수차가 크긴 하지만 어떻게든 더 이상 점수 차가 벌어지는 것을 막고 9회말 마지막 공격에 기대를 걸어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만약 9회초 추가실점을 한다면 마지막 추격 의지마저 꺾일 수밖에 없었다.
이미 승패가 기울었기 때문에 LG가 정면승부를 했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이는 최근 프로야구에 자주 등장하는 '불문율 논란'에서 나오는 '끝까지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논리와 모순된다. 이기고 있는 팀이 마지막까지 점수를 내기 위해 노력하듯, 뒤지고 있는 팀도 마지막까지 실점하지 않기 위해 최선의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이승엽은 2사 2루에서 타석에 들어섰다. LG 입장에서는 1루가 비어 있는 상황에서 상대 중심타자를 맞은 것이다. 더욱이 이승엽은 이날 첫 타석 큼지막한 2루타, 직전 타석인 4번째 타석에서도 폴대를 살짝 빗나가는 파울 홈런을 때려내며 좋은 타격감을 자랑하고 있었다. 1루가 비어 있는데 컨디션이 좋은 타자와 굳이 승부할 이유는 없었다.
LG의 투수가 좌타자에게 약한 유형인 사이드암 신승현이었다는 점도 이승엽과의 승부를 어렵게 만든 요인으로 볼 수 있다. 다음 타자 박해민 역시 좌타자였지만 이승엽처럼 한 방 능력을 갖춘 상대는 아니었다.
포수 유강남은 이승엽의 타석에서 바깥쪽 코스의 공만을 유도했다. '기록의 희생양이 되지 않기 위해 볼넷으로 거르자'가 아닌 '1루가 비었으니까 볼넷이 돼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경기 중 나올 수 있는 지극히 정상적인 볼배합이다.
양상문 감독의 경기 전 인터뷰도 오해의 소지가 있다. 분명 양 감독은 "정상적인 승부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양 감독에게는 스스로의 말을 뒤집었다는 비난이 뒤따랐다. 하지만 그 뒤에 덧붙인 말도 있다. 양 감독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투수에게는 (이승엽과의 대결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 승부를 하다 제구가 안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볼넷이 됐다고 해도 비난할 일은 아니다. 상황에 따라 고의4구가 나올 수도 있다."
양 감독은 정상적인 승부를 하겠다고도 말했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볼넷을 내줄 수 있다고도 했다. 적어도 양 감독은 거짓말쟁이라는 비난을 받을 만한 말을 하지 않았다.
프로야구 팬들, 삼성의 팬들, 이승엽의 팬들은 LG가 이승엽의 마지막 타석에서 정면승부를 피한 듯한 모습에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다. 그러나 LG는 LG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대기록이 걸려 있다고 해서 상황에 맞지 않게 의식적으로 정면승부를 펼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당사자인 이승엽도 전혀 아쉬움이 없어 보였다. 경기 후 만난 이승엽은 오히려 "상대도 이유가 있을 것"이라며 마지막 타석 볼넷에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보인 뒤 "홈에서 (400번째 홈런을) 치는 것이 더 의미있을 것 같다"고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이승엽은 오는 2일부터 삼성의 제2 홈구장인 포항구장에서 열리는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다시 한 번 대기록에 도전한다.
LG는 최악의 5월을 보내며 9위 자리가 익숙해져가고 있다. 성적도 좋지 않은데 생각지 않은 논란에까지 휩싸이며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때론 억울한 비난이 숨겨져 있던 힘을 끌어내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LG가 이번 논란을 딛고 6월 반등에 성공하길 기대해 본다.
조이뉴스24 정명의기자 doctorj@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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