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한준기자] "따져보니 이승엽과 8 이라는 시간을 보냈네요."(박흥식 KIA 타격코치)
이승엽(삼성 라이온즈)이 마침내 KBO리그 최초로 개인 통산 400홈런 고지를 밟았다. 그는 3일 포항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 홈경기에서 400호 홈런을 기록했다. 지난 1995년 5월 2일 광주 무등구장에서 열린 해태(현 KIA 타이거즈)와 경기에서 이강철(현 넥센 히어로즈 수석코치)을 상대로 프로 데뷔 첫 홈런을 쏘아 올린 이후 19년 만에 대기록을 달성한 것이다.
400홈런을 친 후 인터뷰에서 이승엽은 류중일 삼성 감독과 김성근 한화 이글스 감독 등의 이름을 언급하며 "훌룡한 지도자를 만난 게 내겐 행운이고 도움"이라고 했다. 그리고 또 한 명의 고마운 지도자를 언급했다. 박흥식 KIA 타격코치가 그 주인공이다.
박 코치는 지난 1995년 11월 이승엽과 처음 만났다. 그는 당시 백인천 감독의 이끌던 삼성의 코칭스태프에 합류했다. 그리고 마무리 훈련에 참가한 이승엽을 만났다. 박 코치는 이승엽의 첫 인상에 대해 "지금과 달리 호리호리했다"고 기억했다.
그는 "(이)승엽이가 내게 도움을 받은 게 아니다"라며 "오히려 내가 고맙다. 승엽이 덕분에 주변에서 인정도 받았다"고 웃었다. 박 코치는 이승엽이 '국민타자'로 자리잡고 홈런 기록에 수많은 이정표를 남긴 선수로 거듭난 원인에 대해 "성실한 자세와 절실함"을 꼽으면서 "현재 이승엽이라는 선수를 만든 원동력"이라고 강조했다.
이승엽과 경산 볼파크
박 코치가 처음 봤던 이승엽은 전형적인 장거리 타자가 아니었다. 타격재능은 뛰어나다고 판단을 내렸지만 오히려 가능성을 더 높게 본 선수는 따로 있었다.
이승엽과 삼성 입단 동기인 김승관(현 롯데 3군 타격코치)이다. 류 감독도 같은 얘기를 했다. 박 코치는 "승엽이가 일찍 자리를 잘 잡은 건 당시 팀이 세대교체로 들어갈 때와 잘 맞은 것"이라며 "이만수 전 SK 와이번스 감독, 김성래, 이종두 삼성 코치 등이 주전자리를 후배들에게 물려주는 시기였다"고 했다.
삼성 유니폼을 입은 박 코치는 경산 볼파크에서 이승엽과 동고동락했다. 류 감독도 "예전보다는 덜해졌지만 지금도 선수단 내규에 따라 고졸 신인의 경우 5년, 대졸 신인의 경우 3년을 경산 숙소에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박 코치는 "하루 24시간 중에서 잠을 자고 식사하는 걸 빼고 온종일 연습에 매달렸다"며 "1군 경기가 끝난 뒤 숙소에 돌아와서도 언제나 연습이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승엽이는 홈런 기록도 대단하지만 자세가 정말 남다른 선수"라며 "보통 선수들이 야구가 잘 되고 그러면 우쭐해지고 하는 그런 면이 있기 마련이다.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다. 하지만 이승엽은 그런 부분에서 철저했다. 당시 승엽이는 내게 '코치님, 제 행동이나 자세가 바뀌면 꼭 말을 해달라'고 했다. 선후배 등 팀원들을 배려하고 그런 면에서도 승엽이는 최고였다"고 강조했다.
박 코치도 겸손에 대해 항상 얘기했다. 이승엽은 지도자의 말을 잘 따랐고 실제로도 그렇게 행동했다.
홈런타자로 거듭나게 한 IMF
이승엽은 프로 데뷔 시즌 두 자릿수 홈런(13개)을 기록했으나 2년차에는 시즌 9홈런에 그쳤다. 하지만 3년차 시즌이던 1997년 32홈런을 기록하며 첫 홈런왕 타이틀을 차지했다.
박 코치는 "승엽이가 야구선수 그리고 홈런타자로 눈을 뜨기 시작한 건 IMF 영향도 있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국은 1997년 겨울 국제통화기금(IMF)에 금융 구제를 요청하게 된다. 경제 전반이 흔들렸다.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 개인사업체 등이 줄도산 위기에 처했다.
당시 건설업을 운영하던 이승엽의 아버지도 힘든 시기를 보냈다. 이승엽은 박 코치와 대화를 나누다 집안 사정을 얘기했다. 박 코치는 "승엽이가 하루는 '아버지의 사업이 많이 어려워졌다'며 고민을 털어놨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박 코치는 이승엽에게 부모님과 집안을 도울 길은 딱 하나라고 조언했다. 바로 KBO리그 최고의 타자가 되라는 것이었다.
박 코치는 "최고의 타자가 되면 그만큼 연봉을 많이 받을 수 있다. 경제적인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지름길이자 해답이었다"며 "IMF 전후를 비교한다면 승엽이가 야구에 집중하는 정도가 달랐다"고 했다. 그는 "책임감과 함께 절실함도 오늘의 승엽이를 만든 원동력"이라며 "선수가 어떤 고정된 툴을 깨고 그 이상 레벨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절실함이 필요하다. 승엽이도 그랬다"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박 코치는 2003년까지 이승엽과 함께 삼성 유니폼을 입었다. 이승엽이 일본프로야구로 진출하기 전까지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시간은 흘렀고 두 사람이 입고 있는 유니폼은 달라졌다. 이승엽은 일본 지바롯데, 요미우리, 오릭스를 거쳐 지난 2012년 삼성으로 돌아왔다. 박 코치는 삼성을 떠나 넥센 히어로즈와 롯데를 거쳐 KIA로 와 '제2의 이승엽'이 될 재목들을 키우고 있다.
박 코치는 "승엽이라고 해서 항상 성공만 한 건 아니다. 그동안 여러 과정에서 숱한 좌절과 실패도 경험했다"며 "홈런 기록은 거기에 대한 합당한 보상이라고 본다"고 얘기했다. 박 코치 역시 "일본에 진출하지 않았다면 승엽이는 600홈런은 너끈하게 넘겼을 것"이라고 껄껄 웃었다. 그는 "기록도 기록이지만 성실함과 야구를 대하는 자세가 남달랐던 선수로 오래오래 팬들의 기억에 남았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조이뉴스24 류한준기자 hantaeng@joynews24.com 사진 박세완 기자 park90900@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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