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기자] 맥없는 경기력으로 일관하던 곰이 벤치클리어링 사건으로 번쩍 정신을 차렸다. 결과는 짜릿한 역전승이었다.
1일 잠실구장. 3-3 동점이던 3회말 갑자기 양팀 선수들이 모두 그라운드로 뛰어나와 맞서는 일촉즉발 사태가 벌어졌다. 발단은 빈볼시비였다. 2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좌타석의 오재원은 상대 선발 우규민과 풀카운트까지 맞섰다.
7구째 우규민이 던진 공은 오재원의 등 뒤로 치솟았고, 화들짝 놀란 오재원은 본능적으로 상체를 숙이며 간신히 공을 피했다. 오재원은 볼넷으로 걸어나갔지만 자칫 맞을 뻔했던 충격이 쉽게 가시지 않는 듯 불쾌한 기색으로 우규민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특히 손가락 2개를 펴면서 마치 '이번이 2번째'라며 항의하는 듯한 모습도 목격됐다.
이에 맞서 우규민도 지지 않고 걸어나가자 잠실구장엔 순식간에 긴장된 분위기가 가득했다. 이들이 마운드와 1루 베이스 사이에서 충돌하려는 순간 뛰쳐나온 포수 최경철이 오재원의 몸을 밀치면서 이들의 사이를 떼어냈고, 순간 양팀 덕아웃에선 모든 선수들이 달려나와 일촉즉발의 상황이 벌어졌다. 양팀 팬들 또한 오재원과 우규민의 이름을 연호하면서 또 다른 '응원전'을 펼치기 시작했다.
다행히 큰 불상사 없이 상황은 곧바로 종료됐다. 두 선수를 말리는 데 주력한 선수들은 곧바로 각자 덕아웃으로 들어갔고, 오재원과 우규민도 더 이상의 옥신각신은 자제했다. 곧바로 경기는 속개됐다.
그러나 이 벤치클리어링을 계기로 두산 선수들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3-3 동점이던 4회 선두 김재환의 좌측 2루타 찬스를 내리 3타자 아웃으로 살리지 못했지만 5회 기어이 로메로의 좌전 적시타로 역전에 성공한 것.
기가 산 두산은 6회에도 1사 1,3루에서 상대 2번째 투수 임정우의 폭투, 김현수의 좌중간 2루타, 로메로의 중전안타로 3점을 추가해 순식간에 승기를 잡았다.
벤치클리어링의 효과는 마운드에도 톡톡히 발휘됐다. 첫 3이닝 동안 매 이닝 1실점씩 기록하며 고전하던 선발 앤서니 스와잭이 이후 무섭게 고조된 집중력으로 급속히 안정된 것. 4회부터 마운드를 지킨 6회까지 안타 2개만 허용하면서 무실점으로 틀어막아 승리투수 자격을 확보했다. 7회부터 스와잭을 구원한 불펜 또한 리드를 착실히 지키면서 팀에 귀중한 승리를 굳혀줬다.
여기에 첫 3회까지 3개의 실책을 범하며 맥없는 플레이로 일관하던 수비진도 이후 급속히 안정되면서 중반 뒤집기의 필요조건을 만들어줬다.
반면 LG는 3회 벤치클리어링 이후 투수들의 투구 리듬이 끊어진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 역전패의 빌미를 제공했다. 초반 활발했던 타격도 7회 1점을 얻었을 뿐 중반 이후 침묵에 빠지면서 덕아웃을 애태우게 했다.
이날 두산의 8-4 역전승이 오로지 3회의 벤치클리어링 하나 때문이었다고 설명하기에는 분명히 무리가 있다. 하지만 당시의 일촉즉발 상황 이후 나사가 풀린 듯하던 투타가 완전히 달라졌다는 점에서 선수들의 승부욕을 자극한 점만은 분명해 보였다. 짜릿한 역전극을 완성한 두산은 올 시즌 LG와의 상대전적 6승4패로 우위를 유지했다.
조이뉴스24 잠실=김형태기자 tam@joynews24.com 사진 박세완기자 park90900@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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