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기자] "평화의 상징이 되고 싶었다"
수원 삼성 정대세는 북한 국가대표로 활약하면서 K리그 수원 삼성에서 2년 6개월을 뛴 재일 조선인(자이니치)'이다. 한국인 아버지와 해방 이전 조선 국적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조선학교에서 공부와 축구를 배운 뒤 성인이 되어 북한 여권을 받았다.
경계인의 신분에서 뛴 정대세는 8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수원 신분으로 홈 고별전을 치렀다. 12일 부산 아이파크와 원정 경기가 그의 K리그 최종전이지만 홈 고별전은 의미가 남달랐다.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팬들의 부름에 응답한 정대세는 "오늘 내 경기력은 아쉬웠지만, 승리로 끝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더는 빅버드(수원월드경기장 애칭)에서 경기를 뛸 수 없다는 것이 아쉽지만 좋은 마무리를 하겠다"라고 말했다.
2013년 3년 계약으로 수원 유니폼을 입은 정대세는 계약 만료를 앞두고 일본 시미즈 에스펄스로 이적했다. 더 많은 연봉을 주기 어려운 수원의 사정과 좋은 조건의 제의가 온 것에 대한 정대세의 반응을 프로답게 철저히 실리적으로 움직였다.
그는 "수원에 오기 전 가와사키에서 좋은 경기력 보였는데 지금은 또 다른 축구 선수로서 경기력을 보여줬다고 본다. 새로운 축구에 눈을 떴다는 말이 어울린다"라고 전했다.
이길 수 있는 팀에서의 행복감을 잘 알고 있다는 정대세는 "팀을 떠나기가 서운하다. 되도록 끝날 때까지 함께 하고 싶었다. 3년 계약을 하면서 마지막 6개월 남았는데 연장을 해야 하는 과정에서 좋은 제안이 왔다. 정말 남고 싶었지만 내 축구 인생도 생각해야 했다"라며 솔직한 마음을 드러냈다.
FC서울과의 슈퍼매치는 단연 기억에 남는 경기다. 그는 "슈퍼매치에서 골 넣으니 많은 관심 받았다. 독일 FC쾰른에서 공식 경기 한 골도 넣지 못하다 K리그에서 첫 골 넣었는데 그렇게 맛이 나는 골은 없었다. 또, 오래 못 이긴 포항 원정에서 골을 넣은 것도 기억난다"라고 설명했다.
한국에서 결혼하고 아들을 낳는 등 가정을 꾸린 정대세의 축구 인생이 달라진 부분도 새로운 축구로의 전환이었다. 그는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니 삶이 근본적으로 바뀌더라. 물론 일본의 가족에게도 내 경기를 보여주고 싶었다"라며 시미즈행의 이유를 말했다.
쾰른 시절 서정원 감독의 전화 통화가 입단의 결정적인 계기였다는 정대세는 "연예인과 통화하는 느낌이었다. 같더라. 한국에 올 때 일본 J리그와 북한 대표팀에서 뛰었다. 한국에서도 뛸 수 있는 존재는 없지 않으냐. 평화의 상징이 되고 싶어 한국에 온 것도 이유도 있다"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조이뉴스24 수원=이성필기자 elephant1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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