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기자] 화려했던 선수 시절과 달리 뚜렷한 성과가 없었던 지도자 인생에 전환점을 만든 중요한 우승이었다.
한국 축구대표팀은 9일 중국 우한에서 끝난 2015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동아시안컵에서 1승 2무(승점 5점), 3득점 1실점의 성적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2008년 이후 7년 만이자 통산 세 번째 대회 우승이다.
무엇보다 슈틸리케호 출범 후 처음으로 우승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는 점이 중요했다. 지난해 9월 한국 대표팀 사령탑으로 부임한 슈틸리케 감독은 2018 러시아월드컵 본선까지 계약을 맺었다. 그는 한국 축구를 서서히 바꿔보겠다며 점진적인 변화를 예고했다.
슈틸리케 감독의 취임 일성 중에서 특히 주목이 가는 부분은 실리적인 경기 운영이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공격적으로 해서 이기는 경우도 있어야 하고 수비로 이기는 경기도 있어야 한다"라며 경기의 성격이나 상대 팀에 따른 상황별 맞춤 대응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현역 시절 레알 마드리드(스페인)의 명 중앙 미드필더와 스위퍼로 활약했다. 독일 국가대표로도 뛰며 숱한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지도자 입문 후에는 운이 따르지 않았다. 스위스, 코트디부아르 성인대표팀, 독일 21세 이하(U-21) 대표팀을 맡았지만 특별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유럽 클럽팀에서의 실패로 아시아로 눈을 돌려 카타르의 알 아라비SC 등을 거쳤지만, 역시 확실한 인상을 주지는 못했다.
특히 중동에서는 성적이 나지 않으면 파리 목숨보다 가볍게 감독을 경질하는 문화에 희생양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 이용수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과 만나 한국 축구와 인연을 맺게 됐다.
이 위원장은 확실한 임기 보장으로 슈틸리케 감독에게 대표팀의 전권을 부여했다. 선수 선발에 힘을 실어줬다. 슈틸리케 감독은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선수를 찾아다녔다. K리그 클래식부터 챌린지(2부리그)는 물론 대학리그, 유소년까지 가능성을 볼 수 있다면 두루 발품을 팔았다.
K리그에 대한 고언도 잊지 않았다. 이기려는 경기 스타일에서 벗어나 선진적인 경기 운영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과거 대표팀에서 중용했던 중동파에 대해서는 "(중동리그에서 뛰는 것이)기량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며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며 대표팀에서 제외하기도 했다.
한국 축구는 대표팀 지도자가 바뀔 때마다 선수들이 새 감독의 지도 스타일에 맞춰야 하는 어려움을 겪어왔다. 그러나 슈틸리케 감독은 강요 대신 서서히 적응하기를 바랐다. 점유율 축구라는 그만의 철학을 선수들은 스펀치처럼 흡수했다.
지난 1월 호주 아시안컵은 슈틸리케 감독의 특징을 볼 수 있는 대회였다. 지켜야 하는 순간에는 철저히 지켰다. 한국 축구의 고질적인 문제인 수비력 강화에 집중했다. 그 결과 한국은 동아시안컵까지 치른 14번의 A매치에서 11경기를 무실점으로 마치는 놀라운 수비력을 보여줬다. 공격 완성이 아직은 미진한 상황이지만 수비벽은 완벽하게 구축했다.
동아시안컵에서도 한국의 탄탄한 수비는 우승의 초석이 됐다. 3경기 1실점으로 슈틸리케가 원하는 축구에 한 발 더 다가섰다. 북한과의 최종전에서 비겨 자력이 아닌 일본의 도움을 받아 일군 우승이라고는 하지만 철저하게 슈틸리케 감독 고유의 스타일을 지킨 결과였다.
한국은 9월 2018 러시아월드컵 2차 예선 3, 4차전을 치른다. 라오스와 홈 경기를 치른 뒤 레바논 원정을 떠난다. 동아시안컵 우승으로 슈틸리케 감독이 더욱 자신 있게 월드컵으로 향하는 계기가 마련됐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지도력을 곧추 세우는 힘도 얻었다. 한국 축구와 함께 성장의 길을 걷는 슈틸리케 감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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