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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김유정, 소녀는 자란다(인터뷰)


"영화는 나의 멘토…일주일 내내 한 편의 영화 곱씹어"

[권혜림기자] 소녀는 자라고 있었다. 젖살이 빠지기 시작한 얼굴에선 아이의 천진함 대신 생각 많은 숙녀의 진중함이 읽혔다.

지난 2014년 봄, 영화 '우아한 거짓말'(감독 이한)로 첫 대면했던 때를 떠올리니 '비밀'로 스크린에 돌아온 김유정의 성장은 더 놀랍게 느껴졌다. 아직 어린 티가 짙었던 당시와는 또 다른 분위기로 영화와 연기, 아역 배우로서의 삶에 대해 풀어놨다. "영화 한 편을 보면 일주일 내내 장면과 대사를 떠올리고, 인물을 이해하려 노력한다"는 그는 어느새 사랑스럽기만 한 아역 스타가 아닌, 다음이 더 기대되는 여배우로 자라있었다.

15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영화 '비밀'(감독 박은경, 이동하, 제작 영화사도로시)의 개봉을 앞둔 배우 김유정의 라운드 인터뷰가 진행됐다. 만나서는 안될 세 사람, 살인자의 딸과 그녀를 키운 형사, 비밀을 쥐고 나타난 의문의 남자가 10년 뒤 재회하며 벌어지는 미스터리를 그린 '비밀'에서 김유정은 사건의 중심에 있는 여고생 정현으로 분했다.

한 사건으로 부모를 잃고 혼자가 된 정현은 형사 상원(성동일 분)의 가족으로 새 삶을 살아가는 인물이다. 어느 날 그의 앞에 새로운 담임 교사 철웅(손호준 분)이 나타나고, 정현은 철웅에게 알 수 없는 친근감을 느끼게 된다.

그간 발랄하고 심성 착한 여동생의 이미지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김유정은 영화 '우아한 거짓말'과 MBC 드라마 '앵그리맘' 등을 통해 감춰왔던 다른 얼굴을 꺼내보인 바 있다. '비밀'은 어린 시절부터 연기를 해 온 김유정이 자신의 확고한 의지로 출연을 결심한 첫 번째 작품이다. 감출 수밖에 없는 속사정을 품은 정현을 연기하며 어느 때보다 깊은 고민에 빠져들었고, 그로 인해 한 뼘 더 자랄 수 있었다.

"'앵그리맘'도 그랬지만, '비밀'은 제가 굉장히 원했던 작품이었어요. 배우로서 또 다른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를 맡아보고 싶었거든요. 연기를 하며 전에는 못 느꼈던 감정들을 경험해 볼 수 있었어요. 물론 힘든 점도 있었죠. '비밀'과 '앵그리맘'의 촬영 기간이 겹쳤는데, 찍을 땐 정신이 없었지만 끝나고 그 친구들을 떠나보내려니 두렵고 무서웠거든요. 제가 그 친구들의 모습을 조금씩 깎아서 가져가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감정을 처음 느꼈어요."

밝은 역할을 주로 연기하다 어두운 내면을 감춘 배역으로 분하니 전에는 느끼지 못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었다는 것이 김유정의 설명이다. 그는 "그간은 촬영이 끝나면 밀려 있는 수행 평가와 시험 준비들이 밀려 있어 미처 그런 감정을 느낀 적이 없었는데, 이번엔 그런 마음이 들었다"며 "잘 판단하고 이겨야 할 숙제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돌이켰다. 1999년생, 만 16세 소녀 배우의 작업기는 이렇게나 깊고 진지했다.

"'비밀'의 정현을 연기하게 되면서, 인물을 어떻게 해석할지 몰라 굉장히 힘들었어요. 사실 아직도 잘 몰라요.(웃음) 혼자 방에서 커튼을 닫아 놓고 그냥 누워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어요. 나에 대한 생각만 하며 집중했더니 '내 예전 성격이 어땠지?' 싶을 정도로 제가 한없이 어두워져 있더라고요. 심지어 그 우울이 편하게 느껴졌어요. 여러 생각을 많이 한 시기였죠."

'비밀'을 통해 호흡한 배우 성동일은 영화의 공식 행사 자리에서 김유정을 며느리감으로 점 찍어 화제가 됐다. 담임 교사 철웅으로 분한 손호준과 연기를 펼친 소감도 궁금했다. 김유정은 "손호준 오빠는 현장에서 배역에 굉장히 깊게 몰입하는 스타일"이라고 입을 열었다.

"저는 '액션!' 하면 그 때 몰입하는 편인데 호준 오빠는 한참 전부터 극에 몰입해 있어요. 그래서 무섭기도 했고, '나를 싫어하나?' 싶기도 했죠.(웃음) 리딩을 하고 회식을 할 때는 제게 잘 해줬는데, 촬영에 들어가고 나선 이야기를 안 하더라고요. 저는 촬영을 하며 점점 친해지는 성향인데 말이에요. 이야기를 거의 못 나눠 무서웠어요. 극 중 철웅과 정현 사이에 무거운 감정이 있는 장면들이 많아 더 그렇게 느꼈던 것 같아요. 촬영 후엔 다시 잘 해주시더라고요.(웃음)"

형사 상원 역의 성동일은 넘치는 재치로 팀의 분위기 메이커가 됐다. 김유정은 성동일을 극 중에서처럼 '아빠'로 부르며 "성동일 아빠는 호준 오빠와 정 반대였다"며 "재밌게 행동하다가도 연기에 바로 몰입하셨고, '커트' 소리와 함께 다시 돌아오시곤 했다. 영화가 어두워 촬영 현장도 그럴 수 있었는데, 성동일 아빠가 현장의 분위기와 촬영 속도를 빠르게 이끌어 주셨다"고 웃으며 말했다.

고등학교 1학년생인 김유정은 아역 배우들이 성인 연기자로 거듭나며 흔히 겪는 과도기적 고민에 대해서도 소신 있는 답변을 내놨다. 그는 "과도기를 걱정하지 않는 이유는, 꼭 '잘 할 수 있어'라고 생각하기보다 시간이 흐르는대로 받아들이면 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학생 역은 지금 밖에 할 수 없는 배역이잖아요. 최대한 지금 즐길 수 있는 연기를 하고 싶어요. 물론 20세가 넘어서도 제가 어려 보인다면, 그 때도 학생 연기를 할 수 있겠죠. 자연스럽게, 최대한 연연하지 않고, 하고 싶은 역할이 들어오면 연기하고 싶어요. '억지로 나를 바꾸려고는 하지 말아야겠다' 생각하죠."

지난 2003년 CF로 데뷔한 김유정의 '기억 속 첫 영화'는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다. 극 중 백 선생(최민식 분)에게 유괴된 아이로 분했던 그는 당시 최민식을 처음 봤던 때를 떠올리며 "그 때는 누군지 몰랐지만 너무 무서웠던 기억이 난다"고 말해 취재진을 웃게 했다.

"당시는 삼촌이 저를 데리고 다니셨던 시절이에요. 대사를 다 외워 갔던 기억, 폐건물에서 촬영했던 기억이 생생해요. 나중에야 들었지만 앞에 최민식 선배님과 박찬욱 감독님이 계셨다고 해요. 누군지는 모르겠는데 (최민식이) 너무 무서운 거예요. 그 감정이 아직도 생각나요. 대사도 못 하고 엉엉 울었죠. 엄마에게 '다 외웠는데 왜 못했니'라며 혼이 났었어요.(웃음)"

누군가는 16세 김유정을 두고 여전히 '어린 배우'라 생각하겠지만, 그는 벌써 10년 전 출연작의 촬영 현장을 떠올리며 깔깔 웃을 수 있는 베테랑이 됐다. 인터뷰 내내 김유정은 잘 정돈된, 그러면서도 억지스런 꾸밈은 없는 진솔한 대답들을 내놨다. 마치 그의 머릿속을 차분히 들여다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미리 질문지를 만들어 보낸 것도 아닌데다 여러 기자들과 함께 진행한 만큼 질문의 방향과 소재도 결코 일관되지 않았지만, 김유정은 매 질문 차분하고 매끄럽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10대 소녀의 것이라곤 믿기 어려울 만큼 단단하고 진중한 태도가 기자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고민 많은 시기 옆에서 도움을 준 존재가 있는지 물었다. 김유정은 "영화가 나의 멘토인 것 같다"고 답했다. "배움과 깨달음을 주는 것이 영화"라며 "2~3시간이 되는 영화를 본 뒤 일주일 간 그 영화를 깊게 생각하는 편"이라고도 말했다.

"내가 이 사람이었다면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 왜 이 상황과 저 상황이 연결되는지를 끊임없이 생각해요. 처음에는 스토리를, 두 번째로는 장면들을, 세 번째로 감정을 떠올리죠. 심지어 악역까지도 이해하려 노력해요. '우아한 거짓말'에서 악역 아닌 악역을 맡았었는데, 그 때 저는 화연이라는 캐릭터를 관객에게 이해시켜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한 영화를 깊이 파고드는 과정을 통해 굉장히 많이 배워요. 영화가 저의 멘토인 것 같아요."

한편 '비밀'은 오는 15일 개봉한다.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정소희기자 ss082@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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