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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은퇴 차두리, "서울에서는 아버지보다 더 위대한 선수"


세 번째 은퇴 기자회견 "유럽서 축구 배우면서 한국에 도움 줄 생각하겠다"

[이성필기자] '차미네이터' 차두리(35, FC서울)의 세 번째 은퇴 기자회견은 길었다. 하지만,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들을 모두 꺼내며 후련하게 떠났다.

차두리는 7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5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36라운드 수원 삼성전 하프타임에 은퇴식을 갖고 현역 생활을 끝냈다.

지난달 31일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FA컵 결승전에서 서울이 우승을 차지한 뒤 잔여 경기를 뛰지 않겠다며 은퇴를 선언했던 차두리는 이날 서울 최용수 감독, 아버지 차범근 전 감독 등의 격려를 받으며 자신의 현역 마지막 인사를 했다.

지난 3월 뉴질랜드와의 평가전에서 눈물을 쏟아내며 국가대표 은퇴를 했던 차두리는 소속팀 서울에서도 은퇴식을 치르며 더 이상은 그라운드에서 뛰는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것을 확인시켜줬다.

뉴질랜드전, FA컵 결승전에 이어 이날 세 번째 은퇴 기자회견이라며 웃은 차두리는 가슴속에 담아뒀던 모든 것을 쏟아냈다. 넘을 수 없는 벽이나 마찬가지였던 한국 축구 영웅 차범근과의 부자관계부터 K리그 복귀, 축구 인생 등을 정리했다.

차두리는 논리있게 말을 끌어내는 선수로 잘 알려져 있다. 자신의 의견도 솔직하게 말하는 편이다. 아버지 차범근에 대해서는 '그 사람'이라는 표현을 쓰며 "나이가 들수록 대단한 사람이라 느껴지더라. 유럽에 나가보니 이 사람이 정말 축구를 잘했구나를 깨닳았다"라는 말을 남겼다.

다음은 차두리와의 일문일답

-이제 진짜 은퇴다. 소감이 남다를 것 같다.

"은퇴 관련 기자회견을 몇 번씩 하는 것 같다. 마지막이라고 해놓고 계속 볼을 찼다. 이제는 진짜 끝인 것 같다. 시원섭섭하다. 이제야 비로소 진짜 마지막이라는 것이 실감이 난다. 새로운 삶에 대한 기쁨도 있지만 다시는 그라운드에 설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슬프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다. 더 잘할 수 있었는데 하는 후회도 든다. 많은 생각들이 지나간다. 하지만 열심히 하려 노력했고 열심히 했다. 후회 없이 뛰었다."

-과거 자신의 축구 인생을 3-5 패배로 규정한 바 있는데.

"내 축구인생의 기준은 늘 차범근이었다. 그 사람을 넘고 싶었고 더 잘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축구를 하면 할수록 아버지가 얼마나 대단한 축구선수였는지 느꼈다. 차범근은 축구적인 면에서는 근처에도 못갈 선수 생활을 했기 때문에 졌다고 표현했다. 그래도 나는 월드컵 16강과 4강에도 갔다. 내가 분데스리가에 간 것이 아버지가 차붐이라 갈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아버지가 펠레나 프란츠 베켄바우어라도 본인이 능력이 안되면 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 10년간 최고의 클럽에 가서 큰 빛을 본다면 좋겠지만 세계 각국에서 모든 축구를 하면서 10년이라는 시간을 버틴 것은 축구 하면서 큰 수확이라고 본다."

-2002 한일월드컵 세대가 거의 떠나간다.

"(2002 월드컵 때) 나와 (이)천수가 막내였다. 막내들의 은퇴는 팀 자체가 나이가 많았다는 것이다. 그래도 (김)병지 형님이랑 (현)영민이 형이 아직 뛴다. 2002 한일월드컵 맴버가 국민에 기쁨을 준 것은 사실이다. 그 덕에 선수들이 사랑 받았다. 형님들이 감독도 하고 서로 다른 분야에서 잊혀지지 않고 사랑 받고 있다. 이제는 그 세대가 현역으로 뛸 수 없지만 대단했고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 밖에서는 그 사랑과 관심을 다른 좋은 일로 돌려주는 것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감독님이 된 분도 있고, 항상 책임감 가지고 다음 일을 준비하려고 한다."

-향후 행보에 대한 궁금증이 많은데.

"아직은 모르겠다. 감독이 되기 위한 지도자 자격증 따는 것은 맞다. 축구를 세부적으로 배우게 될 것이다. 그라운드 안팎으로 얻는 지식도 많을 것 같다. 배우는 과정에서 뭐가 맞는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유럽에서 좋은 것 배우면서 한국에 어떻게 도움을 줄 지를 생각해 보고 싶다. 지금 당장 지도자나 행정가 등은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래도 중요한 것은 그라운드 가까이에서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 그것은 감독인데 그 직업이 결코 쉬운게 아니라는 것은 아버지를 통해 배웠다. 섣불리 도전했다가 많은 것 잃을 수 있다는 것도 안다."

-처음 한국으로 올 때 걱정이 많았다고 했었는데.

"지난 3년은 영화같다. 분명한 것은 복받은 사람인 것은 맞다. 선수 생활 마무리를 이렇게 할 사람 몇이나 될까 싶다. 정말로 소속팀, 대표팀에서까지 많은 사람이 사랑해주고 박수 받고 꿈같은 일이다. 서울에 올 때 반신반의의 목소리가 있었다. 처음 6개월 적응은 힘들었고 경기력이 좋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우려와 반대 목소리도 컸다. 개인적으로 힘들었는데 바닥에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늘 유럽에만 있어서 한국 축구팬들에게 인정 받고 싶었다. 결국 마지막에는 박수 받고 모든 축구 선수가 꿈꾸는 마무리를 할 수 있어 행복하다. 처음부터 햇살이 비추는 날씨가 아니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서 정상의 자리에 왔다."

-은퇴를 생각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무엇인가.

"정말 힘들었다. 한 번씩 공격에 가담했다가 내려 오면 숨이 차더라. 정신적으로 경기 준비하는데 있어서 100% 쏟지 않으면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올해도 아시안컵 이후 마인드 컨트롤 등 준비가 쉽지 않았다. 100% 준비되지 않으면 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생각했고 에너지가 없다고 판단했다."

-아버지 차범근의 벽을 언제 느꼈나.

"20대 중반이 됐을 때 차범근이라는 사람은 정말 대단하구나를 느꼈다. 독일에서 뛰면서 강등도 맛보고 새삼 아버지의 대단함 느꼈다. 벽을 넘을 수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모든 선수가 차범근처럼 축구를 잘해야 하는 것은 아니더라. 왜 안될까가 아니라 나는 왜 이렇게 많이 가졌나 하는 감사한 마음 가지고 운동을 했다. 누구 말대로 태어나니 아버지가 차범근이더라. 축구를 하니 월드컵 4강 가 있고 또 지나보니 분데스리가에서 뛰더라. 그것을 잊고 살지 않았나 싶다. 가진 것만큼 돌려주고 해야 한다."

-아버지가 수원 감독이었는데 서울 선수로 뛰는 묘한 관계였다.

"서울 팬들에게 차범근은 적장이자 미운 존재였을 것이다. 2008년 수원과 챔피언결정전에서 만나 준우승을 했는데 어떻게 좋아하겠나. 그런 의미에서 나 역시 수원 팬들이 나를 향해 야유를 보내고 사랑하지 않는 것에 대해 불만은 없었다. 한국 축구를 위해 아버지가 많은 것 하셨고 박수도 받을 만하다. 일단 서울팬 사이에서는 내가 더 위대한 선수로 남았으면 좋겠다. 서울을 선택한 이유는 최용수 감독이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내가 많은 사람에게 박수를 받고 떠나지만 최 감독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힘들 때도 뒤에서 등 두들겨 주시고 걱정말라고 한 사람이 최 감독이다. (최)용수 형하고 소주 한 잔 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대표팀 후계자를 꼽아달라.

"어려운 문제다. 대표팀 오른쪽이 고민된다는 보도를 많이 봤다. K리그에 오른쪽 측면 수비수에 좋다고 생각했던 선수들이 모두 군대에 있더라. 신광훈, 박진포, 이용이 그렇다. 지금 울산의 정동호도 좌우를 오가고 일본에 있는 김창수도 꾸준히 잘한다. 내가 지목을 한다고 잘하는 것은 아니다. 후배들이 조금 더 욕심을 가지고 경기장 나가거나 대표에 선발됐을 때 책임감을 가졌으면 좋겠다. 이 자리는 내 자리라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다른 사람도 있는데'라는 마음 가지면 안된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더 높은 곳이다. 누구든 선택이 되면 이 자리는 내게 온 것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조이뉴스24 상암=이성필기자 elephant14@joynews24.com 사진 정소희기자 ss082@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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