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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필]강등 아픔 부산, 성지 구덕서 새출발 어떨까?


아시아드주경기장 비해 관중 동원력 뛰어나, 주변 상권 살리기에도 그만

[이성필기자] "이게 뭡니까! 부산 정신 안 차릴래."

"강등이라니, 너희가 그러고도 프로 선수냐!"

관중석에서는 흥분과 분노 가득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남쪽 원정 응원 관중석에서는 수원FC의 흥겨운 클래식 승격 자축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지만, 나머지 관중석에는 싸늘한 찬바람만 불었다. 그라운드에는 물병도 날아들었다. 관중석에 부착되어 있던 'Pride of Pusan'이라는 현수막은 그라운드에 나뒹굴었다.

지난 5일, 부산 축구의 성지 부산 구덕운동장의 풍경은 싸늘하다 못해 냉소에 분노 등이 넘쳐났다. 부산의 강등이 결정된 뒤 일렬로 선 선수들에게 격려의 악수를 하는 구단주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이날은 대한축구협회 회장 자격이 아닌 부산 구단주로 참석했다)을 향해서도 비판을 넘은 비난의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기업구단 최초의 강등 풍경은 이처럼 살벌했다. 기자가 취재했던, 이전 시도민구단들의 강등 당시 팬들의 분노보다 더 거칠었다. K리그 초창기 명문이었던 부산 대우 로얄즈를 계승한 구단이 부산 아이파크라는 점에서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고 생각한 팬들의 분노는 상상 이상이었다. 부산 선수들은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버스를 가로막은 팬들 앞에서 사과를 해야 했다. 같이 눈물을 흘리며 강등의 아픔을 나눴던 이전 대전 시티즌, 대구FC, 광주FC와는 많이 달랐다.

왜 그렇게 부산 팬들은 분노했을까. 관중들은 특히 부산 축구의 메카라 할 수 있는 구덕운동장에서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무기력한 패배로 강등이 결정된 부분에 격한 반응을 보였다. 윤명덕(부산 문현동) 씨는 "내 오늘 구덕에서 축구를 한다길래 간만에 구경 왔다. 로얄즈 시절에 많이 봤던 사람이다. 그런데 이런 형편없는 축구를 보여주려고 무료입장을 시켰느냐"라며 상기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 2000년 현대산업개발이 로얄즈를 인수해 부산 아이콘스로 팀명을 바꿨다. 2005년 모기업 아파트 브랜드명에 맞춰 부산 아이파크로 한 번 더 이름을 바꿨다. 윤 씨는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는 팀명은 변함이 없는데 왜 축구는 계속 달라졌나. 인수했어도 로얄즈라는 명칭을 썼다면 좋았을 것이다"라며 아쉽게 생각하는 부분을 얘기했다.

비단 윤 씨의 인식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부산은 2002 한일월드컵을 위해 건립된 사직동 아시아드주경기장으로 홈구장을 옮기며 구덕과의 인연을 끊었다. 가끔 이벤트 경기 등으로 찾아왔고 올해는 승강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좋은 기운을 받고자 구덕에서 경기를 치렀지만, 소용이 없었다. 자연스럽게 부산 남서부 지역 주민들과 프로축구의 인연은 멀어졌다.

구덕운동장 주변 상권도 예전만 못할 수밖에 없었다. 구장 인근에서 20년 가까이 슈퍼마켓을 운영하다 편의점으로 전환했다는 점주 안광택(부산 서대신동) 씨는 "1990년대는 대단했다. 경기장으로 향하는 길에 차 밀리는 것이나 파란색 옷을 입고 가는 사람들만 봐도 '아 오늘 축구 하는 날이구나'라고 알 수 있었다. 맥주와 소주도 정말 잘 팔렸다. 경기 중에도 나와서 술을 사 가는 사람이 있었다. 그 때가 호시절이 아니었나 싶다"라고 기억했다.

안 씨의 편의점 근처에서 갈빗집을 운영한다는 한 점주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그는 "경기 날에는 돈이 잘 돌았다. 결과를 떠나서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축구 대화를 나눴다. 구덕운동장 주변 상권이 생기가 돌았다. 가게도 더 좋은 음식을 내놓으니 경기가 없는 날에도 찾아오는 팬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상권 자체가 죽어버리고 사직동에 다 뺏겼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경기장이 애물단지가 됐다"라고 말했다.

물론 구덕운동장에서는 계속 축구 경기가 열리고 있다. 실업축구 내셔널리그(3부리그격) 부산교통공사의 홈구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클래식이 다르고 챌린지가 다르듯, 내셔널리그 팀 경기에 대한 관심도는 더욱 미미하다. 관중동원력도 없고 프로 경기가 아니니 경기장 주변 발걸음이 뚝 떨어졌다.

부산시도 구덕운동장 주변 개발 계획은 어느 정도 마친 상황이다. 주경기장은 역사성을 위해서라도 원형을 남겨놓고 나머지는 체육공원처럼 꾸미는 방안이다. 그렇지만 1973년 건립된 주경기장 안전도는 C등급을 받아 개선이 필요하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서병수 시장이 당선될 당시 구덕운동장 재개발을 공약으로 내걸면서 분위기는 달라졌다. 또, 서구가 지역구인 유기준 새누리당 의원도 구덕운동장 활용 방안을 놓고 10일 정책토론회를 벌인다. 유 의원은 이미 지난 2014년에도 토론회를 벌여 구덕운동장 재생이 지역의 현안이라는 것을 인식했다.

부산시는 부산 구단에 구덕운동장 개발에 대한 묘안을 내주기를 바랐다. 구덕운동장을 개발하게 될 경우 모기업 현대산업개발이 참여해주기를 바라는 의사를 올해도 구단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 구단도 고민하며 해결 방안을 찾는데 몰두하고 있다. 지난달 22일 전남 드래곤즈와의 37라운드 홈 최종전을 구덕에서 치르며 가능성을 타진했다. 2011년 10월 2일 경남FC전 이후 4년 만의 프로 경기가 열렸고 관중 동원력도 나쁘지 않았다. 전남전에서 6천79명을 모았고 수원FC와의 PO 2차전에도 6천135명의 관중이 찾았다. 1만2천석의 절반을 메웠다. 올 시즌 부산이 경기당 평균 3천339명의 관중을 모은 것을 생각하면 놀라운 수치다. 종합경기장이지만 관전 시야도 아시아드보다 훨씬 좋다.

하지만 현대산업개발이 구덕운동장에 선뜻 거액을 들이기는 어렵다. 부산시는 국비나 사기업의 비용으로 구덕운동장을 재건축한 뒤 기부채납을 받는 방안을 꿈꾸고 있다. 시로서는 가장 바람직한 방향이겠지만 구단 입장에서는 모기업의 막대한 비용이 투입된다는 점에서 부정적이다. 부산발전연구원의 타당성 조사에서도 5천억 원 이상의 건설 비용이 들어가는 것으로 예상됐다. 경기장은 물론 주변 전체 개발 비용이라는 점을 고려해도 쉽지 않은 일이다. 1년에 100억 원 안팎의 구단 운영비를 지원하는 현대산업개발 입장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부산시 체육국 관계자는 "시책이라 쉽게 말하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부산 스포츠의 쏠림 현상을 막기 위해서라도 프로축구가 구덕 쪽으로 와서 지역 재생에 함께 해줬으면 하는 생각은 있다. 문제는 비용인데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모두가 지혜를 짜내야 하는 상황이다"라고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절대 쉬운 상황은 아니지만, 챌린지로 강등된 부산의 새출발과 재도약을 위해서는 구덕이라는 축구 성지를 활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아시아드주경기장은 규모가 너무 커 챌린지 경기 수준에 맞지 않는다. 그렇지 않아도 관중 없이 썰렁하게 10년 가까이 지냈는데 이런 느낌을 그대로 챌린지까지 가져간다면 승격은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 부산을 상징하는 프로 스포츠 팀으로 롯데 자이언츠 야구단이 자리 잡고 있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 과감한 선택이 필요한 시점이다.

부산교통공사와의 경기 일정 조율을 적절히 한다면 부산 아이파크가 구덕운동장을 함께 사용하기에도 큰 불편함은 없다. 오히려 성지에서의 부활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다시 태어나겠다고 외친다면 팬들도 더 많이 이해하고 응원해줄 수 있다. 광복동, 중앙동 등 원도심과도 멀지 않고 지하철 서대신, 동대신역에 인근해 관중들의 접근 편의성도 좋다.

프로축구연맹의 승인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기는 하지만 아시아드에 갇혀 있지 말고 구덕 개발과 팀 부활이라는 명제를 모두 잡을 수 있는 묘책을 모색해볼 만하다. 챌린지로 떨어지자마자 경영 효율화를 앞세우며 사무국 인원부터 줄이는 구태를 답습할 것이 아니라, 구단이 다시 태어날 방안과 팬심에 더 가깝게 다가가기 위한 연구가 절실하게 필요한 부산이다.

350만 인구의 부산을 연고지로 하는 프로축구단이 큰 시장을 그냥 버리거나 방치할 수는 없지 않은가.

조이뉴스24 이성필기자 elephant1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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