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기자] 리우 올림픽의 해가 밝았다. 한국 축구는 오는 12일 카타르 도하에서 개막하는 2016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U-23) 챔피언십 겸 리우 올림픽 예선으로 새해 첫 발걸음을 힘차게 내딛는다. 2012년 런던 올림픽 동메달 영광을 리우에서도 이어가야 한다. 올림픽 대표팀이라 불리는 U-23 대표팀을 이끄는 '난놈' 신태용(46) 감독은 4년 전 올림픽 성적을 뛰어넘고 싶다며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참 어려운 자리입니다."
신태용 올림픽 축구대표팀 감독은 지난해 1월 갑작스럽게 백혈병 진단을 받은 이광종 전 감독의 뒤를 이어 지휘봉을 잡았다. A대표팀 코치를 맡고 있던 상황에서 예기치 못한 기회가 왔고 정신없이 1년을 흘려보냈다. 자신의 스타일로 팀을 바꾸는 데 애를 먹으면서도 다양한 선수를 실험하며 옥석 고르기를 한 뒤 지난해말 최종 명단을 구성해 올림픽 예선에 나선다.
올림픽 예선에 대비하기 위해 전지훈련지인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로 들어가기 전인 지난해 12월 짬을 내 만난 신 감독은 "처음 지휘봉을 잡고서는 이 연령대 친구들을 정말 몰랐는데 지금은 많은 선수를 알게 됐다. 재능이 있는 친구들이 참 많더라"라고 웃었다.
물론 대표선수 고르기는 쉽지 않았다. 신 감독은 직접 표현하지 않았지만, 그와의 '연줄'을 내세우는 과시용 인맥에 시달렸다. 신 감독은 "요즘에도 이런저런 전화가 온다. 아마 '내가 신 감독을 잘 아는데'라며 전화해서 선수 한 번 봐달라는 부탁일 것이다. 울리 슈틸리케 A대표팀 감독님이야 학연, 지연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만 나는 쉽지 않다. 그렇지만 나 역시 선수들을 실력으로만 평가하고 있다. 슈틸리케 감독이 이미 A대표팀에서 보여주지 않았는가"라며 선수 선발에 있어 단호한 원칙으로 무장했음을 강조했다.
대표팀은 지난해 3월 U-23 챔피언십 지역 예선을 거쳐 5월 프랑스, 튀니지와 평가전을 치르면서 달라졌다. 특히 프랑스, 튀니지 원정 평가전이 신태용호에게는 일종의 분기점이었다. 경기 결과와 상관없이 대표 후보군 선수들을 두루 보고 싶었던 신 감독 입장에서는 프랑스와 비기고 튀니지를 이기면서 선수 구성에 대한 열정이 생겼다.
그는 "활용이 가능한 선수를 확인하려 프랑스, 튀니지 원정을 치렀는데 희망이 생기더라. 프랑스랑은 질 것으로 생각했다. 선수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로 나섰으니 두 골 차 패배 정도를 예상했는데 1-1로 비겼다. (문)창진이가 페널티킥만 넣었다면 이겼을 것이다. 튀니지전도 마찬가지다. 공격적으로 시도해서 이겼다. '아! 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내게도 자신감이 생긴 경기였다"라고 돌아봤다.
신 감독은 성남 일화 감독 시절 이른바 '신공(신나는 공격)' 축구로 바람을 일으켰다. U-23 대표팀 취임 일성도 '전진'이었다. 공격 앞으로를 지향하겠다는 것이었다. 그가 임시로 A대표팀을 이끌었던 2014년 9월 우루과이와의 친선경기가 그랬다. 기성용(스완지시티)을 최종 수비로 내리는 등 나름 파격을 시도하면서도 공격 축구를 시도했다.
토너먼트 대회에서는 자칫 공격적인 축구가 큰 위험으로 작용할 수 있다. 아시아 예선의 경우 상대는 뻔한 밀집수비로 나서게 되고 한국은 이를 풀려고 애쓰다가 역습 한 방에 무너지는 경우도 있다. 조별리그를 지나 8강, 4강 등 단판 승부로 가면 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신 감독은 자신감이 넘쳤다. 그는 "우리가 하고 싶은 플레이만 하면 된다. 상대가 수비적이라도 우리가 가진 스타일인 공격으로 풀겠다는 의지를 그대로 옮긴다면 무엇이 어렵겠는가. 토너먼트는 9대1의 압도적인 공격을 하다가도 1골을 내주고 무너질 수 있는데, 그런 경기는 많이 경험해 봤다"라며 자신감을 숨기지 않았다.
'공격 앞으로'는 이같은 맥락에서 나왔다. 신 감독은 "선수들은 볼을 잡고 다음을 생각하지 않는다. 동료에게 안전하게 배달하는 게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백패스로 경기를 풀다가는 상대가 이미 수비 형태를 갖추고 대항하게 된다. 이것은 정말 안전한 축구가 아닌가. 템포를 빨리 끌어 올려야 상대도 우리 스타일에 말려들게 될 것이다"라고 빠른 템포의 공격을 강조했다.
기대하지 않은 선수들로 좋은 결과물을 만드는 것도 신 감독이 내심 바라는 부분이다. 2012년 런던 올림픽 멤버와 비교해 A대표팀에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선수도 거의 없고 소속팀에서도 완벽하게 입지를 구축한 자원도 많지 않다. 지난해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많은 선수들이 병역 혜택을 받으면서 중간층이 사라졌다. 이번 올림픽 대표팀을 두고 '골짜기 세대'라 부르는 이유다.
이런 점을 잘 알고 있는 신 감독은 "선수들을 만나기 전까지는 뭐랄까, 약간의 오해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막상 가르쳐보니 정말 습득 속도가 빠르다. 경기를 치르면 좋은 선수가 한두 명씩은 등장하니까 신기하고 재미있더라. 남들이 기대하지 않는데 상관없다. 나 역시 이들과 성장하고 있는 것 같다"라며 현 대표팀과 함께 성장해가는 것이 즐거운 시간이라고 설명했다.
신 감독은 선수들과 잘 어울리는 감독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성남 시절에도 선수들과 함께 사우나를 하며 대화를 나누면서 민원(?)을 받기도 했다. 올림픽대표팀에서도 마찬가지다. 사우나 토크에서 이런저런 것들을 많이 얻었다. 사령탑 부임 초 선수들에게 "커피전문점인 스타벅스에 가면 사람들이 시끄럽게 대화를 하듯이 여기서도 떠들라"고 한 바 있다.
그는 "상대팀 선수들이 한국말을 얼마나 알겠나. 우리끼리 경기 하면서 대화로 풀어가면 된다. 그래서 더 시끄러워지라고 했다. 지금은 정말 선수들이 말을 많이 한다. 떠들지 않으면 벌금을 부과하겠다고 강제성을 부여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정말 자연스럽다"며 편안하게 의사 소통을 하는 대표팀이 됐다고 말했다.
신 감독의 말대로 대표팀에는 수다쟁이들이 많아졌고 선후배 구분없이 의사 표현도 자유롭다. 지난해 12월 제주도 전지훈련 중 족구로 단결력을 다지는 시간에는 선수 교체와 판정을 놓고 그들끼리의 격한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모두 유쾌하게 팀을 만드는 과정 중 하나였다.
지난해 신 감독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결단력을 강조했다. 즉, 아시아 챔핑언십 3위까지 주어지는 올림픽 티켓을 확보하지 못하면 A대표팀 코치까지도 관두겠다는 것이다. 책임질 상황이 되면 인정하고 물러나겠다는 뜻이다. A대표팀 코치를 겸하는 신 감독은 슈틸리케 감독과 선수단의 가교 구실도 하고 있다. A대표팀에서도 꼭 필요한 코칭스태프인데 꼭 벼랑 끝 결단을 해야 할까? 이미 한국 축구는 브라질월드컵 실패 직후 태풍처럼 몰아친 책임론에 좋은 경력을 쌓아온 지도자를 잃었던 경험이 있다.
신 감독의 생각은 확고했다.
<②편에 계속…>
조이뉴스24 이성필기자 elephant1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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