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혜림기자] 배우 이성민이 영화를 통해 대구의 아픔을 기억했다. 대구 뿐 아니라 전국민을 충격과 슬픔에 젖게 했던 지난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는 그의 새 영화 '로봇, 소리'의 중요한 사건이다. 대구에서 청년기를 보내고 그 곳의 연극 무대를 통해 연기 기반을 다졌던 이성민에게 이 영화는 남다를 수밖에 없는 작품이었다.
20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영화 '로봇, 소리'(감독 이호재, 제작 영화사좋은날, 디씨지플러스)의 개봉을 앞둔 배우 이성민의 라운드 인터뷰가 진행됐다.
'로봇, 소리'는 하나 뿐인 딸 유주를 잃어버린 남자 해관(이성민 분)의 이야기다. 아무런 증거도 단서도 없이 사라진 딸의 흔적을 찾기 위해 해관은 10년 동안 전국을 찾아 헤맨다. 모두가 이제 그만 포기하라며 해관을 말리던 그 때, 해관은 세상의 모든 소리를 기억하는 로봇 '소리'를 만난다.
대구지하철참사는 '로봇, 소리'의 사전 마케팅에선 꽁꽁 감춰져 있던 소재다. 모두에게 여전히 비극의 기억으로 남아있는 대구지하철참사를 홍보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도의적으로 적절치 않은 일이었다. 아버지와 딸 사이의 이야기, 후회와 미련이 덧입혀진 해관의 부성애가 영화의 주요 감정선인 만큼 특정 사건을 내세우는 것이 불필요하다는 판단도 있었을 법하다. 사건과 별개로, '로봇, 소리'는 딸을 찾아 헤매는 아버지의 모습을 불쑥 나타난 로봇 '소리'와 해관의 만남을 통해 따뜻하게 풀어낸 영화임에 분명하다.
"조심스러웠죠. 아픔을 가진 분들에게 피해가 될까봐서도, 그 일을 잊고 있는데 끄집어내는 것이 될까봐서도 그랬어요. 이 영화는, (사건을) 아직 잊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해요. 사건이 영화의 전면에 드러나지는 않고, 이야기의 시작이 그 사건이었을 뿐이죠. 조심스럽게 찍었고, (사건을 회상하는) 플래시백은 최대한 적게 넣었더라고요."
실제로 '로봇, 소리'는 지하철 화재 당시를 재현한 장면들을 최소화했다. 자극적 연출 대신, 그 여백을 관객의 상상에 맡기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 감독의 의도였다. 이성민은 "언론 배급 시사 날 영화를 제대로 보려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관람했는데, 그 사건이 나오며 뒷통수를 맞는 느낌이 들었다"며 "충격이 크다고 생각했다. 다른 충격이 아니라, '잊고 있었던 부분이 컸구나'라는 데서 온 충격이었다"고 고백했다.
한국 영화에서 쉽게 만날 수 없었던 로봇이라는 소재가 극의 중심에 있다는 점은 이 영화에 출연을 제안받았을 때부터 이성민에게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는 "영화의 내용도 모른 채 시나리오와 이미지 컷을 봤다"며 "(감독은) 이미지 컷을 보기 전에 먼저 시나리오를 봐 달라고 했었다"고 돌이켰다.
"아마 선입견을 가질까봐 그랬겠죠. 시나리오를 본 뒤 그림을 보면 이해가 더 쉽지 않겠냐는 의미였을 거예요. 많이 따뜻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이미지컷 속) 소리와 내가 나란히 서 있는 장면의 뒷배경에 있는 타워가 남산타워가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아니까.(웃음) 비슷하게 생긴 대구에 있는 83타워였거든요. 그런 점에서 더 확 끌렸던 것 같아요."
이성민에게 '로봇, 소리'는 처음으로 단독 주연에 나선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내 이름이 (크레딧의) 제일 앞에 나오는 경험이 처음"이라고 입을 연 이성민은 "그 전에 앞에 다른 이름들이 있을 때는 기댈 수도, 책임을 전가할 수도 있었다. 앞 사람을 믿고 뒤에서 신나게 놀 수도 있었다"며 "이제 잘 못하면 큰일이 나는 입장이 됐다"고 답했다.
"막상 (이름이) 앞에 오니, 전체적인 밸런스를 맞춰야 하는 일, 개봉에 맞춰 홍보를 하고 영화의 성패를 책임져야 하는 일이 부담스럽네요. 어제도 잠을 잘 못 잤어요.(웃음) 밥을 먹고도 소화제를 먹곤 해요. 평소엔 긴장을 잘 안하는데 요즘은 매일 기사를 보고 리뷰와 반응을 검색해요. 한국영화에서 로봇이 나온다고 하니 낯설어하는 분들이 있을텐데, '생각보다 괜찮다' '생각보다 재밌다' '생각보다 슬픈 영화다'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영화는 오는 27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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