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영기자] "'응답하라' 시리즈의 저주요? 신경 안 써요.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요."
박보검은 '응답하라 1988'로 '대세 배우'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실제로 '응팔' 전후의 나날들이 많이 달라졌다. 불과 몇 달 전 지하철을 타고 다녀도 알아보는 이가 많지 않았다는 박보검은 공항에서 수 백여 명의 팬들에게 에워싸였고, 팬클럽 회원수는 10배 넘게 뛰었다. 3천5백여 팬들과 생애 첫 팬미팅을 하던 날, 그는 "제가 뭐라고 이렇게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시고…"라며 끝내 눈물을 쏟았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과 '꽃보다 청춘' 아프리카 편 촬영까지, 숨가쁘게 몇 달을 달려온 박보검을 만났다. 빡빡한 일정에 지칠 법도 한데, 표정이 밝았다. 카메라 앞에 선 그는 한껏 멋진 포즈를 취하다가 민망한 듯 소리내어 웃기도 했다. "봐줄만 했는데 새까매져서 이밖에 안 보인다"라며 심심한 농담을 건네고, 겸손하지만 자신의 생각을 조목조목 밝히기도 했다. 박보검은 택과 참 닮았다.
'응답하라' 시리즈의 애청자였다는 박보검은 '응팔' 캐스팅을 "가문의 영광"이라고 표현했다. 부담감보다 "누를 끼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부터 했다. 수많은 선배 연기자들과 함께 하면서 배움의 기회를 잡게 된 것도 감사했다.
박보검은 서너번의 오디션을 거치며 최택 역에 낙점됐다. 처음부터 캐릭터가 정해져 있었던 건 아니었다. '응답하라 1994' 유연석이 공중전화로 엄마에게 전화하는 신을 연기하기도 했다. 짠한 마음에 눈물을 흘렸다. 박보검은 "잘 울어서 캐스팅 된 것 같다"라며 "상대방의 마음을 쉽게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있는 것 같다"라며 수줍게 웃었다.
박보검은 친구들에게는 '등신'으로 불리는 어리숙한 소년, 어색한 욕이 귀여운 순진무구한 소년, 그러나 천재 바둑기사의 날카로운 카리스마와 어른스러움이 깃든 반전 매력의 택으로 여심을 어택했다. 무엇보다 사랑의 승부사 택은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이었다. 박보검은 최택과 실제 성격이 비슷한 부분이 많다고 했다.
"한가지에 집중하는 건 비슷한 것 같아요. 연애를 하면 푹 빠지는 스타일인 것도 비슷해요. 저도 한사람에만 집중하는 편이예요. 일할 때도 연애나 취미 생활 같은 다른 일은 잘 못 해요. 그래서인지 연예인 되고 난 후에 연애한 적은 없어요. 다른 점은 택이처럼 바둑을 잘 두진 못 한다는 거요. 그리고 택이처럼 누군가 챙겨줘야 할 정도는 아니에요. 신발끈도 묶을 줄 알아요."(웃음)
극중 '사랑의 승부사'였던 택은 드라마의 뜨거운 관심사였던 덕선(혜리 분)의 남편이었다. 박보검 스스로도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고 털어놨다. 그 팽팽했던 삼각관계의 균형이 깨졌던 순간에도 '반전'을 예상했단다.
"감독님이 드라마 시작하기 전부터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다 너희다. 한 사람 한 사람 다 주인공이니까 (남편찾기에) 연연해하지 말라'고 했어요. 전 '응답' 시리즈 애청자였고, '응팔'에 출연하게 된 것도 영광이라고 생각했어요. 누가 남편이 되더라도 연연해하지 않고 좋은 사람들과 작품하는 걸 감사하면서 촬영해야겠다는 마음이 컸어요."
"전 택이가 남편이라는 걸 19화에서 알았어요. 혜리는 감독님에게 여쭤보고 15화쯤 눈치를 챘다고 했는데 전 몰랐어요. '어남류'일줄 알았죠. 19회를 보고도 '반전'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마지막 대본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정환일거야'라고 생각했어요. 같은 남자가 봐도 너무 멋있고 설레는 장면들이 많았죠. 제가 남편이라는 걸 알고는 기분이 얼떨떨 했고 신기했어요. 사실 전 '꿈결 키스'도 진짜 꿈인줄로만 알았거든요. 뭔가 더 숨기고 반전이 있을 거라고만 생각했어요."
혜리와의 키스신 이야기가 나오자 수줍은 웃음을 머금었다. '응팔' 택이와 덕선의 첫키스처럼, 혜리와 박보검 역시 '응팔'로 첫 드라마 키스신을 찍었다.
"쑥스러웠어요. 혜리도 그렇고 저도 키스신은 처음이었잖아요. 혜리는 제가 덤덤하다고 했는데, 덤덤한 척 한 거였어요. 키스신은 남자가 잘해줘야 한다, 리드를 해야한다고 했던 게 어렴풋이 기억 났어요. 너무 진했다고요? 스물다섯, 어른 택이의 키스신이니까요. 저도 남자입니다.(웃음)"
박보검은 '응팔'로 인해 스타덤에 올랐다. 지금의 인기가 무섭지 않냐고 묻자 "이렇게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아도 되는 건지 쑥스럽고 신기하고 감사하다"라며 "이럴수록 행동에 더 조심해야 하는 것 같다. 깊게, 신중하게 생각하려고 한다"고도 말했다.
'응답시리즈'의 저주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응답' 시리즈로 스타 반열에 오른 배우들이 그 이후 고전하면서 네티즌들은 이를 '응답의 저주'라고 표현했다. 최근 tvN 토크쇼 '택시'에 출연한 이동휘는 자신의 인기를 보름, 박보검과 류준열의 인기를 '3개월용'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신원호 PD께서도 이야기 해줬어요. '응답의 저주'라고 해서 너희들에게 피해를 주는게 아닌가 싶어 미안한 면이 있다고 하셨어요.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아요. 제가 하고 싶은 연기를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해요."
박보검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건, 그가 단순히 '응팔' 하나로 반짝스타가 된 게 아니었기 때문. '응팔'에서 보여준 박보검이 전부는 아니었다. 자신의 꿈을 우직하게 쫓아왔고, '응팔'의 행운을 기회로 만들었다.
싱어송라이터가 꿈이었던 그는 수십여 개의 기획사에 데모테이프를 돌렸고, 가장 먼저 연락이 왔던 지금의 소속사와 인연을 맺고 연기를 시작했다. 영화 '블라인드'와 '명량', '차이나타운', 드라마 '참 좋은 시절'과 '내일도 칸타빌레' 등을 통해 차근차근 얼굴을 알렸다. 지난해 방영된 '너를 기억해'에서는 사이코패스로 섬뜩한 연기를 펼치며 연말 시상식에서 수상도 했다.
많은 이들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응팔'을 박보검의 '인생작'이라 표현하지만, 박보검은 "인생작이라는 표현 자체가 너무 쑥스럽다"고 말했다.
"한 작품 한 작품 최선을 다했고, 그 때 만큼은 제게 큰 역할 큰 작품이었다. 모든 작품이 소중해요. 작품을 하면서 배우는 것도 참 많았어요. '너를 기억해' 하면서는 직접 변호사를 찾아갔고, '응팔'에서는 바둑을 배웠고, '내일도 칸타빌레' 할 때는 첼로를 했죠. '명량' 할 때는 액션과 노 젓는 것을 배웠어요. 저에겐 다 득이 되는 작품이에요."
누군가의 성장을 지켜보는 일은 참 기분 좋은 일이다. 박보검의 내일을 지켜보는 일도 기분이 참 좋을 것만 같다.
조이뉴스24 이미영기자 mycuzmy@joynews24.com 사진 이영훈기자 rok6658@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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